시민사회

정의[편집 | 원본 편집]

정부와 독립적으로 시민들에 의해 형성된 연결망, 자발적 결사체, 기업, 사교단체, 조직, 가족 등으로 구성된 사회 영역.
— 앤서니 기든스, 필립 W. 서튼(2015), 김봉석 역, 『사회학의 핵심 개념들』.

시민사회에 무엇이 포함되는지는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 정부가 제외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이들이 동의하지만, 가족 및 친족집단을 포함할 것인지, 또한 기업을 포함할 것인지는 보다 심한 논란거리이다. 경제적으로는 국가, 시장이 아닌 사회적 경제(제3섹터)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기원[편집 | 원본 편집]

근대적인 시민사회 개념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시민적 결사체' 개념에서 기원한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수천개의 자선 단체, 종교 단체, 지역 단체(타운홀 미팅 etc.) 등의 시민적 결사체들이 지탱하고 있다고 보았다.

시민사회의 진보성 논쟁[편집 | 원본 편집]

강력한 시민사회는 국가 및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균형추이자, 적극적 시민권의 표출 공간으로서,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강화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반면, 전통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시민사회는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지배를 확산시키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단, 안토니오 그람시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지배가 결코 완전치 않으며 시민사회는 반문화적인 도전을 위한 진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공산권이 붕괴하고, 여러 지역에서 국민국가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성공적이지 않았음이 분명해지자 많은 이들은 그 대안으로 시민사회를 주목하였다. 시민사회의 강화는 포괄적인 자발적 결사체와 네트워크의 구성을 통해 정부 활동을 넘어선 강력한 사회적 기초의 구축에 기여할 수 있고, 이는 여러 분쟁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울리히 벡 등은 인터넷 등 지구적 커뮤니케이션이 일반화함에 따라 전지구적인 시민사회가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스마트폰은 정보 격차 문제에 대한 중요한 기술적 해결책이 되었다. 세계시민주의자들에게 전지구적 시민사회 개념은 진보적 세계시민주의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제공해준다.

반면, 자발적 결사체들이 중심이 된 시민사회가 꼭 진보적일 이유가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자발적 결사체는 사회운동단체나 시민단체만을 포함하지 않으며, 이익단체이거나 상황에 따라 이익단체화할 수 있는 단체들도 포함한다. 또한, 일부 자발적 결사체들은 높은 수준의 사회 자본을 향유하면서 정부와 연결되어 다른 집단에 비해 보다 많은 권력을 가짐으로써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민사회가 '진보적'이더라도 전체 사회를 놓고볼 때 '반동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안드레아 무엘레박은 복지영역에서 국가가 후퇴하고 "시민적 연대"라는 미명하에 무임노동(자원봉사), 종교적 자선, 호혜성 등을 기반으로 한 시민사회가 그 일을 담당하게 된 것은 '도덕적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전지구적 시민사회 역시 학계, 부유한 국제적 엘리트, 서구 운동가 등을 넘어선 많은 이들에게 확산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는 국가, 종족, 종교, 지역공동체 등이 정체성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런 지역에서 시민사회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네오콘이 민주적 국민국가를 건설하려고 시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단선적인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실패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초기에는 오픈 소스 운동 등 전지구적 시민사회의 가치에 동참하며, 진보적인 성격을 띄었던 인터넷 역시 현재는 시민사회와 기업, 정부의 이해관계 간의 권력투쟁의 장이 되고 있으며 많은 부분 기업화되고 있다(John Naughton 2001).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하면서 확증편향이 강해지고, 오히려 사회적 연대가 약화되는 효과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사회는 쇠퇴하고 있는가?[편집 | 원본 편집]

로버트 퍼트남은 미국 내 시민적 결사체의 시민적 유대와 멤버십이 실제로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학부모-교사단체(PTA), 전미여성단체연합, 적십자, 여성유권자연맹 등의 회원수가 60년대에 비해 2000년대에 거의 절반으로 감소하였다. 사회적 신뢰의 경우에도 1964년에 정점에 도달하였다가 이후 장기적 하락세로 돌입하였다. 소수의 응답자만이 이웃을 통해 사회화되었거나 이웃을 신뢰한다고 응답하였다. 퍼트남은 시민사회의 쇠퇴. 즉 시민적 참여(civic engagement) 감소를 여러차원에서 분석했는데, 이에 따르면 여가 시간의 감소, 경제적 곤란, 고용 등은 시민사회가 쇠퇴한 주요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TV시청증가, 도시 팽창으로 인한 통근시간의 증가, 시간과 돈 문제는 주요변인은 아니지만 시민사회 쇠퇴와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분석하였다. 더해 퍼트남은 세대간 경험의 차이가 시민적 참여의 하락을 불러왔으며 쇠퇴의 주요변인은 세대교체라고 분석한다.[1] [2] 이러한 경향은 영국과 호주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스웨덴, 네덜란드, 일본에서는 사회적 연결망이 안정적이거나 수준이 높아졌다. 한국의 경우 박상훈 박사 등이 한국 사회에는 정치적으로 국가와 개인을 매개할 시민적 결사체가 극도로 미약한 상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각주

  1. Putnam, Robert D. (2000) "Bowling alone :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 NewYork:Touchstone.
  2. 다만 1995년 Bowling alone: America's declining social capital을 출간한지 15년 후인 2010년 퍼트남은 Still bowling alone? The post-9/11 split을 통해 9.11 테러 이후 청소년층에서 사회참여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역시 세대교체가 주요변인 이라는 점에서 1995년 논문과 맥락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