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가하라 전투(일본어:
경과[편집 | 원본 편집]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말년에 오대로[1]와 오봉행[2]을 제도화하여 자신의 사후에 정무를 유력 다이묘나 장수들에게 맡기려고 했다. 그러나 도요토미 정권 아래 히데요시의 측근으로서 정무를 담당했던 이시다 미츠나리 세력(이른바 문치파)과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쿠로다 나가마사, 호소카와 다다오키 세력(이른바 무단파) 사이에는 갈등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들의 대립의 배경으로는 가모 우지사토의 사망에 따른 가모 가문 상속 문제, 오다와라 정벌 전후 시기 다테 마사무네에 대한 처우 문제, 센노 리큐 할복 사건, 도요토미 히데쓰구 사건, 임진왜란에서의 처우 등이 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싸운 두 파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총대장으로 한 동군과, 모리 데루모토를 총대장으로 하고 이시다 미츠나리를 중심으로 한 서군이다. 동군과 서군의 무장들은 대부분 도요토미의 은혜를 입은 무장들이었다. 따라서 이 전투에 대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가문의 가신끼리의 성패전[3]이라는 명분을 취했고, 도요토미 가문은 조용히 지켜보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 전투는 실질적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패권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