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명

석주명(石宙明, 1908년 11월 13일~1950년 10월 6일)은 대한민국의 생물학자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8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18세가 되던 1926년, 개성의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의 가고시마고등농림학교에서 3년 동안 농학과 생물학을 공부한 뒤 1929년 귀국하여, 함흥의 영생고등보통학교에 박물교사로 지내다가 이듬해 모교인 송도고등보통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업적[편집 | 원본 편집]

1931년부터 방학을 이용해 전국을 돌며 나비 채집을 시작했고, 학생들에게도 방학 숙제로 나비를 잡아오게끔 시켰다(...) .

이렇게 모은 방대한 자료들을 이용해 배추흰나비라는 종의 특성에 관한 논문을 펴내고[1], 일본의 곤충학자들이 대충 연구하여 900여 종으로 정리한 나비를 250종으로 다시 분류하는 등의 작업도 했다. 직접 해당 학자에게 편지를 보낼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고.

국내의 여러 나비들도 발견했으며, 그래서 도시처녀나비 등은 학명에 'Seok(석)'이 들어간다. 다만 그가 활동한 시기가 일제 강점기이다 보니 일본식 발음인 'Seoki'가 들어간 예도 있다. 전국을 돌며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나비 분포도도 만들었고, 아시아 전체의 나비를 연구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던 듯 하다. 허망하게 목숨을 잃으며 실현하지 못했지만.

그 밖에 에스페란토로 논문을 내고 제주 방언을 연구하는 등 언어학적인 활동도 했다고.

죽음[편집 | 원본 편집]

6.25 전쟁 중에 '반공 청년단'을 자칭하는 불량 청년들에 의해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어이없이 살해당했다. 그가 세웠던 방대한 연구 계획들 역시 덩달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각주

  1. 이 논문을 위해 관찰한 나비가 16만 마리가 넘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