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방화수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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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수류정
화성 방화수류정.JPG
건축물 정보
주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소유 국유
문화재 정보
종목 보물 제1709호
지정일 2011년 3월 3일
  •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수원 화성의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은 군사용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조성된 건물이다.

수원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의 시(詩) “운담풍경오천(雲淡風經午天), 방화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으며, 편액은 조윤형(曺允亨1725~1799)의 글씨이다.

평면은 “ㄱ”자형을 기본으로 북측과 동측은 “凸”형으로 돌출되게 조영하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꾸몄으며, 조선 헌종 14년(1848)에 중수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되었다.

주변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정자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고, 다른 정자에서 보이지 않는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의 특이성이 인정되어서 2011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실제 방화수류정의 목적은 화성의 동북쪽 방위를 담당하는 지휘초소의 역할이었으며, 이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각루의 아래쪽에는 온돌시설을 갖추어 놓아 병력이 상시 상주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물론 이쪽 방위의 경치가 경치인지라 군사용으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국가나 지역의 행사가 있을 때 이 시설물을 종종 이용하기도 하였다.

기타 이야깃거리[편집 | 원본 편집]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성지측에서는 이 방화수류정을 수원 화성의 설계를 맡았던 정약용이 자신의 천주교 신앙의 상징인 십자가를 여기저기에 넣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근거로 방화수류정 내부에서 천장을 올려다 보면 십자가 모양의 단청이 보이고, 벽면에도 십자가 문양이 86개가 박혀 있는 것을 들고 있다. 다만 이 설은 사실이 아니며, 정약용의 집안 자체가 순교자의 집안이어서 그런 해석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약용이 제출한 화성의 기초 설계도인 "성설"에는 방화수류정 시설은 존재하지 않았던 시설이며, 화성의 건설 당시 정약용은 암행어사로 활동중이어서 막상 화성의 건설에는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방화수류정은 바로 서편에 있는 화홍문과 더불어 수원 화성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손꼽히며 수원 8경에 해당하기도 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