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봉

朴今奉.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4년 1월 1일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 황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무렵 부여군 세도면 사립 창영학교에서 교사로서 재직하고 있었다. 그러던 1919년 3월 6일, 엄창섭이 그를 찾아와 독립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이를 기꺼이 수락하고 고상준, 추병갑(秋炳甲)·김종갑(金鍾甲) 등과 함께 3월 10일 강경읍 장날에 만세 시위할 것을 계획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9일 김종갑(金鍾甲)·추성배(秋聖培) 등의 협조를 받아 10일 아침까지 태극기 200개를 만들었다. 가마니에 넣은 태극기는 서삼종(徐三鍾)이 강경면 옥녀봉에 운반하였다.

오후 3시 박금봉·정기섭(鄭沂燮) 등은 옥녀봉에 모여 태극기를 꺼내 모여든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들은 태극기를 높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깃발도 들고 ‘독립만세’를 연호하면서 옥녀봉을 내려와 강경시장에 이르러 그 곳의 군중과 합세하여 가두행진을 하면서 만세를 불렀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형 90도에 처해졌다.[1] 이후 논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1년 4월 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박금봉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21년 4월 1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유해를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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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