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 클라시커

Der Klassiker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분데스리가의 강호 FC 바이에른 뮌헨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대결을 가리키며 현재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인기있는 매치업 중 하나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엄밀히 말하면 두 팀의 연고지가 다르기 때문에 더비가 아니다.[1] 그렇다고 인근 국가의 엘 클라시코르 클라시크, 노스웨스트 더비처럼 지역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경쟁관계에서 비롯된 라이벌리를 더비로 분류하고 있을 뿐이다.[2] 지역색이 강한 독일인지라 분데스리가에 더비가 많기는 많지만 더비를 이루는 팀들의 전성기가 따로 놀아 정작 리그 흥행에 도움이 되는 더비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유명한 게 레비어 더비북독 더비, 그리고 라인 더비 뿐이며 그래서 역사 있는 더비매치보다 최근 경쟁하고 있는 두 팀의 라이벌 대결이 더 주목받는 것.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애초에 전통적인 대립관계가 아니라 순위경쟁에서 생긴만큼 역사도 짧다. 심지어 '데어 클라시커' 문서를 위키백과에서 찾아도 영어로 된 문서는 존재하지만 정작 독어로 된 문서는 없을 정도로 족보 없는 싸움인 셈. 그렇다고 두 팀의 대립이 세간의 인식처럼 마리오 괴체의 이적으로 시작된 건 아니고 90년대까지는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언은 60년대 이래 전통적인 독일의 강자였고, 도르트문트는 분데스리가 출범 직후에 우승경쟁을 벌인 뒤로는 한물 간 명문 신세였다. 심지어 70년대에 분데스리가 기록인 12:0의 참패를 당하며 팀의 이니셜인 BVB를 따와 BVB012로 놀림받기도 했었다. 그러던 팀이 80년대 후반부터 상승세를 타더니 스위스에서 건너온 오트마 히츠펠트[3]의 지휘 아래 분데스리가 최초의 우승을 차지하고 분데스리가 4번째로 2연패까지 성공한다.[4][5] 이 무렵 두 팀의 대립관계가 싹트기 시작한다.

1996/97시즌 도르트문트는 바이언에게 가로막혀 3연패에 실패하고 3위로 떨어졌는데 우승경쟁이 치열하던 후반기 맞대결에서 로타 마테우스안드레아스 묄러가 싸우기도 했다.[6][7] 그러나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클럽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는데 하필 이 결승 장소가 바이언의 홈구장이었던 뮌헨 올림피아슈타디온이었다. 바이언도 1976년의 3번째 우승 이후 준우승만 2번이었던지라 빅이어에 목마른 상태였는데 도르트문트가 제대로 불을 지른 것. 더군다나 다음 시즌에 도르트문트가 부진에 빠지게 되는데[8] 감독생활을 쉬고 싶다고 단장으로 물러난 히츠펠트가 부진에 빠진 팀을 수습하기 위해 감독으로 돌아오기는 커녕 바이언의 감독으로 스카웃되어 양팀의 관계는 복잡해져갔다.

그러다 2001년에 바이언이 노리던 토마스 로시츠키를 도르트문트가 영입하면서 이적시장의 전쟁이 불을 뿜었고, 바이언과 가계약 상태였던 제바스티안 켈[9]마저 도르트문트가 데려가자 양팀의 관계는 극단으로 치닿는다. 여기에 도르트문트가 연거푸 이적료 신기록을 세우며 해외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수집하고 바이언이 도전했던 분데스리가 최초의 4연패마저 저지하는 등 누가 봐도 손색 없는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그러나 도르트문트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조기탈락과 홈구장 확장공사, 이적시장의 무리한 투자 등으로 인해 순식간에 재무구조가 악화되어 몰락의 길을 걸었고, 천문학적인 부채와 함께 선수들의 급료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정도의 나락으로 빠진다.[10] 이후 2000년대 중반에는 브레멘, 샬케 등이 바이언과 우승경쟁을 벌이면서 도르트문트의 존재감은 약해졌고, 두팀의 대립관계도 약해져갔다.

그러다 도르트문트가 인고의 시간을 이겨내고 위르겐 클롭의 지휘 아래 분데스리가 2연패에 성공하며 화려하게 복귀하자 두 팀의 대립관계가 다시 격화됐다. 도르트문트는 최고 승점기록을 갈아치우며 새로운 역사를 썼고, 2011/12시즌 DFB-포칼 결승전에서 바이언을 5-2로 완파하기까지 한다. 이후 도르트문트의 스타플레이어 마리오 괴체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바이언으로 떠나며 두 팀은 수십년된 앙숙처럼 으르렁대는 사이가 됐다. 두 선수의 이적과정에 대해서는 항목 참조.

각주

  1. 바이언은 남부의 바이에른, 도르트문트는 서부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 연고지가 있어 거리가 꽤 있다.
  2. 도르트문트가 프로이센을 계승하기 때문에 바이언과 사이가 나쁘다는 얘기가 있는데 헛소리다. 도르트문트는 19세기가 되어서야 프로이센에 편입되었고 서부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정치적 중심지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팀명에 들어간 보루시아는 프로이센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지역 양조장의 이름이다.
  3. 스위스 대표팀 감독도 오래 해서 스위스인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스위스와의 접경지에서 태어난 독일인이다. 다만 스위스에서 프로선수가 되었고 독일에서 뛰다가 말년에 스위스로 돌아가 감독생활도 거기서 시작했다.
  4.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에는 3번의 우승이 있었다. 도르트문트가 8회 우승이라고 하는 건 이 3번의 우승을 포함한 것이다.
  5. 이후 2연패에 성공한 새로운 클럽은 없다.
  6. 묄러는 도르트문트가 첫 우승을 차지한 2년 전에 다이빙으로 페널티킥을 얻어 '우는 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있었는데, 이 경기에서 묄러가 자신이 반칙을 당했다고 심판에게 항의하자 마테우스가 징징대지 말라고 묄러 앞에서 우는 시늉을 한 것.
  7. 여담으로 묄러가 페널티킥을 얻어낸 건 경기 종료 15분 전이었고, 그때까지 칼스루에가 이기고 있었다. 이 페널티킥으로 동점이 되었고 결국 도르트문트가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만약 이 경기에서 도르트문트가 졌다면 우승팀은 베르더 브레멘이었다.
  8. 리그 한정. 챔피언스리그는 4강까지 갔다.
  9. 도르트문트의 주장으로 은퇴한 그 켈이다.
  10. 이때 바이언이 돈을 빌려준 적이 있는데 나중에 이걸로 심리전을 걸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