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마산병원

신축 본관

국립마산병원(國立馬山病院, Masan National Tuberculosis Hospital)은 결핵 치료를 중점으로 하는 국책병원으로 경상남도 창원시에 소재한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국립마산병원이 소재한 월영동·가포동 일원은 일제강점기부터 군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접수하고, 6.25 이후 1946년에 "국군마산통합병원"과 "국립마산결핵요양원"으로 갈라지게 된다. 이 중 국군마산통합병원은 90년대 주택단지 조성사업으로 진전면으로 이전 후 폐원했고, 결핵요양원만 남아 현재에 이르게 된다.

대한민국 최초의 결핵전문 의료기관으로 1949년 "국립중앙결핵요양소", 1951년 "국립마산결핵요양소", 1959년 "국립마산병원", 1970년 "국립마산결핵병원", 2002년 "국립마산병원"으로 개칭했으며 국내에서 결핵 관련 임상경험이 가장 많은 병원이다.

질병관리본부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되면서 국립결핵병원(마산·목포)이 보건복지부 산하에서 질병관리청 산하로 조정되었다.

시설[편집 | 원본 편집]

  • 본관
    외래병동 및 균음성 환자 병동이 있던 자리로 2017년 통합병동을 신축하면서 음압병동을 갖추어 별관에서 요양하던 균양성 환자를 본관으로 이송했다. 벧엘교회 터가 정면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 별관
    외국 자선단체 도움으로 조성한 100병상 소아병동을 토대로 4층 건물로 확장하여 2017년 본관이 신축되기 전까지 균양성 입원환자를 격리수용했다. 본관 신축 이후로는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다.
  • 국제결핵연구소
    한·미 결핵연구사업을 위해 미국 국립보건원과 한국 보건복지부가 MOU를 맺고 2005년 "국제결핵연구센터"를 설립했으며, 이는 2009년 "국제결핵연구소"로 개편되었다.

지역과 갈등[편집 | 원본 편집]

재건축 이전 풍경[1]

90년대 이전까지는 국군병원과 함께 주재했고 민가는 가포동에 한 줌 있는 게 전부여서 문제가 별로 없었는 데, 70년대 압축성장시대를 지나면서 병원 인근까지 대형 택지지구가 밀고 들어와 갈등이 시작되었다.[2] 병원을 진전면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지역반발로 흐지부지 되었다.[3]

이전 문제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병원시설의 현대화가 시급하여[4] 병원을 옮기던지, 그 자리에서 새로 다시 짓던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진전면 이전안이 흐지부지해지자 마산시와 보건 부처 사이의 줄다리기 끝에 2009년 실시협약을 맺고 현재의 별관 터에 재건축 후 본관 터를 마산시에 반환하기로 했는 데,[5] 다음 해 통합창원시가 출범하고 관련 사업인 가포 뒷산 개발 사업이 보류되면서 이전 사업도 전면 보류되었다.[6] 결국 재건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자 보건복지부가 BTL 사업으로 전환하여 본관을 허물고 지금의 신축 병동을 마련한 것이다.[7]

국립마산병원이 민간병원에서 잘 받지 않는 결핵 환자를 중점으로 다룬다는 점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기피하고 있다. 거기에 월영동에서 가포동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사이로 본관·별관 부지가 자리하고 있는 탓에 도로 선형이 좋지 않고, 왕복 2차선 수준으로 머무르고 있다. 가포택지지구가 조성되었지만 이 문제 때문에 병원 앞의 도로를 확장하는 대신 가포신항터널(드림베이대로)을 개통했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숲 속에 있는 게 병원부지로, 왼쪽부터 별관, 본관, 국제결핵연구소다.
  2. 馬山시내 교도소 등 이전 추진, 연합뉴스, 1993.03.13.
  3. 마산 결핵병원 이전에 주민 반발, 연합뉴스, 2002.10.19.
  4. 국립마산병원 운영체계 질타 外, 부산일보, 2008.10.17.
  5. 국립마산병원 '이전준비 끝', 뉴시스, 2009.07.23.
  6. 창원시, 11개 대형사업·9개 산업단지 수정·보류, CBS노컷뉴스, 2010.11.16.
  7. '국립마산병원 이전사업' 갈등, 부산일보, 2015.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