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준

강기준(姜祺俊, 1890년 5월 24일~1954년 9월 12일)은 대한민국독립운동가다.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0년 5월 24일 강원도 철원군 내문면 독검리에서 출생했다. 1919년 4월 철원군 내문면 독검리에서 천도교 신자인 최재명, 최재청, 박용득, 윤태병 등과 함께 내문면 독검리 구장 윤선삼을 앞세워 마을 주민들에게 통문을 돌렸고, 오동리의 윤상만과 마방리의 서당 훈장 이홍달에게도 통문을 보내 내문면 전체의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1919년 4월 8일 독검리 주민들을 이끌고 북창리에 있던 면사무소로 향했다. 행진 도중에 오동리를 비롯한 원운리, 반석리, 내문리, 마방리 등지의 주민들이 합세하면서 700명으로 불어났다. 오후 1시경, 시위대는 북창리에 도착하여 대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면사무소에 태극기를 게양하였고, 면서기 최병건에게 독립만세를 외치도록 하였다. 석교리 헌병 파견대에서 출동한 일본 헌병대가 해산 명령을 내렸으나 강기준 등이 이를 거부하고 시위를 이어갔다. 하지만 헌병대가 총을 쏘며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시위대는 부득이 해산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1] 이에 불복해 공소하였으나 1919년 6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2] 1954년 9월 12일 철원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강기준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