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 전차 판터

두루치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9월 30일 (금) 07:45 판
5호 전차 판터
Bundesarchiv Bild 183-H26258, Panzer V "Panther".jpg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되는 D형 판터
차량 정보
종류 중형 전차
제조사 만(MAN)
헨쉘
다임러 밴츠
디자이너 독일 육군병기국/만(MAN)
생산연도 1943~1945
생산량 6,000여대
정원 4명
제원
엔진 마이바흐 12기통 가솔린 엔진
주무장 75mm Kwk.42L/70 대전차포
보조무장 76mm MG 34 기관총 2정
장갑 100mm/110mm(포탑 전면/포방패 포함)
80mm 경사장갑(차체 전면)
전장 6.87m
전폭 3.27m
전고 2.99m
무게 44.8톤

5호 전차 (Panzerkamfwageon 5)는 나치 독일의 중형 전차다.

독일 전차의 완성이자 독일 전차부대의 양익으로, 6호 전차 티거와 함께 독일 전차의 대표격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전차이기도 하다. 흔히 ‘판터 전차’라고 부르기도 하며 강력한 성능으로 대전기 많은 활약을 남겨 연합군 전차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개발

배경

베르사유 조약으로 전차 보유가 제한되었던 독일은 1934년 재무장에 들어가면서 늦은 전차 개발을 시도하였는데, 전간기 전차 기술을 상실한 독일이 재무장 이후 처음 개발한 전차는 1호 전차와 2호 전차라는 다소 조잡한 물건이었다.

당연히 여기에 만족할 독일이 아니었다. 1~2호 전차를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3호 전차와 4호 전차를 개발해 배치하기 시작해 비로소 주변국과 견줄 만한 전차 전력을 갖출 수 있었지만 3~4호 역시 교두보 성격이 강한 물건이었고 독일은 보다 더 앞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3~4호 전차가 폴란드, 프랑스 침공과 그 뒤이어 진행된 침략전에서 선전하자 독일은 3~4호 전차에 만족하고 이를 개량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사실 여기까지만 이라면 3~4호 전차로도 충분했겠지만 느닷없이 소련 침공으로 시작된 독소전쟁은 3~4호 전차들의 한계를 드러나게 했다. 무엇보다도 소련군의 주력 전차였던. T-34는 독일이 투입했던 3~4호 전차 초기형보다 우세했다.

그나마 갖은 실전으로 단련된 독일 전차병들의 실력과 고성능 통신장비를 이용한 유기적 작전, 거기에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유능한 장교단들이 박살난 상황에서 독일 전차부대들은 초반 선전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이 재정비하여 반격하거나 하는 상황뿐만 아니라 독일이 유리한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전차들을 손실하고 있어, 이에 대응할 신형 전차로 진즉 기억 저편에 날려버렸던 신형 중형전차 계획인 VK.20.01을 다시 꺼내오는 계기가 되었다.

VK.20.01은 본래 4호 전차를 이어 계획된 중형 전차 계획이었지만 예상 외의 활약에 이미 신뢰성이 입증된 전차들 위주로 안주하려던 독일군은 신형 전차 계획이었던 VK.20.01을 3~4호의 최종개량형으로 수립해 갔으나 결국 한계를 인정하고 02계획으로 선회한다. 이 과정에서 독일 육군 병기국과 개발사들은 이 신형 전차가 상대해야 할 주적인 T-34의 특성을 반영하여 계획을 진행해 나가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사장갑의 채용이었다.

진행

활약

초반

판터가 처음 투입된 실전은 독소전의 분수령으로 알려진 성채 작전으로, 그 유명한 쿠르스크 전투에 출전한다. 특히 최대의 전차전이였던 쿠르스크 전투이기에 독일의 심혈을 기울인 기대작인 만큼 독일 수뇌부는 소련 전차들을 압도하며 종횡무진 전진하는 판터를...

...바랬겠지만 쿠르스크 전투에서 판터의 성적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이틀만에 전투에 투입된 184대 중 1/3도 안 되는 40대만이 운용이 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고 이들 상당수는 전투에서 손실된게 아니라 구동 계통 등 안정성의 문제로 전선에서 조기 이탈한 비전투 손실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D형 판터도 문제가 있긴 했지만 완전히 성능 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판터를 무리하게 전선 투입한 수뇌부들의 실책이긴 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긴 했다.

하지만 쿠르스크 전투가 끝나고 판터를 노획한 소련군은 판터의 주포와 장갑이 자신들의 T-34보다 우세하다는 것을 알아냈고 쉽지 않은 상대임을 직감했다.

한창 소련군이 판터를 상대로 많은 피해를 입고 있을 무렵 서부전선에서 연합군도 이탈리아 안지오에서 처음으로 판터와 조우한다. 안지오 해안에 상륙한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된 헤르만 괴링 기갑사단 소속 판터 전차들은 안지오 동부에 방어선을 형성하여 연합군의 진격을 막았다. 연합군은 직접 판터의 강력한 성능을 확인했지만 투입된 신형 전차들은 얼마 양산되지 못했을거란 오판을 하였고 안지오 상륙전 이후 개시된 노르망디 상륙전에서 연합군은 큰 대비를 하진 않는다.

전장의 표범

소련군의 직감대로 D형을 이어 양산된 A,F,G형은 초기형 D형의 추태를 재현하지 않고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6호 전차와 마찬가지로 당시 대부분의 연합군 전차 장갑을 관통 가능했던 판터는 심지어 티거처럼 잘 격파되지도 않는 전차로, 티거와 함께 독일 전차의 악명을 떨쳤다. 동부전선에서 판터는 장포신 75mm 주포를 이용해 원거리에서도 1~2km 밖에서 저격하듯 소련군의 주력이었던 T-34를 격파하며 많은 피해를 강요했고 소련군에게 판터에 대한 대응책을 고뇌하게 만든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형성된 서부전선에서 연합군 전차노르망디 전투에서 방어군으로 배치된 SS와 기갑교도단의 판터 전차들이 연합군을 맞이하면서 압도적인 스펙으로 연합군 기갑 부대(주로 셔먼)에 큰 타격을 입힌다. 대표적인 전투인 캉 전투에서 SS 9기갑사단의 판터 부대는 노르망디 라우리에서 영국군 8기갑여단이 점령한 라우리에 공세를 진행했지만 영국 보병부대의 반격으로 실패한다.

독일군은 노르망디에서 600여대의 판터를 투입해 300여대를 손실했고 이 중 절반은 비전투 손실로 독일군이 유기한 전차들이 많았다.

전쟁 막바지

이 시기 유명한 전투로는 쾰른 대성당 전차전이 있다. 판터와 퍼싱의 조우전인 해당 전투에서 셔먼을 격파한 판터는 곧 퍼싱과 조우하였고 셔먼과는 다른 퍼싱의 외형 때문에 아군 판터로 착각한 판터 전차장이 공격을 주저한 사이 퍼싱은 사격을 가해 판터를 격파했고 승무원들이 탈출한 이후에도 여러번 확인사격을 가해 해당 판터를 완파시켰다.

전후

설계 및 성능

공격력

판터의 주포는 표준 교전거리에서 대부분의 연합군 전차의 전면 장갑을 관통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판터의 주포로 전용된 Kwk.42 L/70 75mm 대전차포는 초속 935m 라는 고속의 포구 속도로 중거리 이상에서도 안정적인 탄도를 유지하며 높은 명중률을 보여준데다 빠른 속도는 곧 관통력과 비례하기 때문에 철갑유탄 사격 시 교전거리인 1~2km 에서 90~112mm 의 장갑판을, 철갑탄의 경우엔 이보다 높은 100~140mm대 관통력을 냈다. 이는 근거리에선 티거의 관통력을 앞서는 것으로 타국의 중형전차에 비해 강력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IS-2 같은 중전차를 상대로 우세를 점하기도 했다.

방어력

포탑의 장갑은 전면 기준 100mm, 포방패와 겹쳐진 부분은 최대 110mm에 달했고 형태도 반달 모양의 곡면(D형)으로 입사각이 좋지 않았다. 거기에다 차체 전면도 60도 각을 준 80mm 두께 장갑으로 보호받아, 수직 장갑으로 치환 시 약 120~140mm의 장갑 두께와 맞먹는 방어력을 자랑했다.

이렇듯 중전차 급의 전면장갑을 보유한 판터는 단거리에서도 주적인 T-34-76의 철갑탄을 막아내며 포화를 주고받았고 85mm 포를 장착한 T-34-85 형에게도 중거리 이상(1km 내외)에서 유효한 방어력을 유지한 채 적 전차와 교전할 수 있었다. 이는 서부전선에서 서방연합군의 전차들 역시 처해있던 상황으로, 기존 75mm 단포신을 단 셔먼 전차로는 교전거리에서 관통이 (사실상)불가능했고 대전차용인 76mm 주포로도 의미있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나마 셔먼 파이어플라이의 17파운더 주포는 표준거리에서 판터의 전면을 뚫을 순 있었지만 장갑은 셔먼 시절 그대로라 정면에서 공방을 벌이기에는 무리였다.

그러나 측면과 후면 장갑의 경우 30도 경사를 준 40~ 50mm 장갑으로 두터운 전면 장갑과 달리 당시 연합군 중형 전차와 큰 차이가 없는 두께였고 근거리에선 고폭탄에도 손쉽게 관통되는 취약점이었다. 그런 이유로 방어측 입장에서 몰려오는 적 기갑세력을 정면에서 저격하는 데는 유리했지만 실전 사례에서도 보여지듯이 우회기동으로 정면대결을 회피하면 판터에게 불리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기동력

사실상 중전차에 가까운 중량에도 불구하고 기동성은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험지 기동에 있어서는 셔먼보다 낫다는 일선의 평도 있었다.

넓은 광폭 궤도와 함께 겹쳐진 형태의 보기륜은 지면에 닫는 압력을 줄여주는 구조로, 험지에서 유연한 기동성을 제공하며 판터보다 가벼운 편인 중형전차들 대비 우수한 험지 돌파능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우수한 조항장치 및 조종성으로 제자리 선회같은 다양한 전술 기동을 수행할 수 있었다.

평가

판터는 강력한 화력과 방어력이 기동성과 잘 맞물리는, 전술적으로 균형잡힌 전차로서 대전차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임무에 투입되는 다목적 운용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쳐 현대 주력 전차의 시조라는 평가까지 존재한다.

그러나 많은 독일제 병기가 그러하였듯, 낮은 신뢰성은 판터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었으며 짧은 수명과 잦은 고장으로 야전에서 운용하는 병력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변형

D형 처음 생산되어 양산된 사항이다.

A형

G형

개발 취소된 판터2의 영향을 받았다. 판터의 여러 사항들 중 가장 많이 생산된 형식으로 대전기 말 독일 국방군의 주력 전차로 운용되었다. 외형적인 변화는 반원형 포방패에서 샷 트랩을 방지하기 위한 턱이 추가된 것이며 친 형식 포방패가 적용되며 이전 형식들과 구별이 가능하다. 부족했던 측면 방어력 강화를 위해 차체 측면의 장갑을 비스듬한 일직선으로 변경해 단순화하고 두께를 50mm로 상향하여 측면 방호력을 높힌 한편, 포탑 측면 상부 역시 40mm 에서 50mm로 강화되었다. 대신 60mm 였던 하부 장갑을 50mm로 덜어 중량 증가를 최대한 억제하였다. 여기에 차체 전면의 조종수용 관측창을 폐지하고 조종석 상면에 회전식 잠망경으로 통일하였으며 조종수와 무전수의 탈출이 용이하도록 해치의 개량이 이루어졌다.

F형

판터 최후의 형식으로 새로운 포탑이 적용됨에 따라 이전 형식들과 비교시 외형적인 차이를 보인다. 슈말트룸(좁은 포탑)이라는 이름의 이 축소 포탑은, 전면 반달모양의 포방패를 자우코프 형식의 포방패로 변경하며 포탑 전면이 대폭 줄어들었고 작아진 내부 용적에 따라 위력은 동일하나 크기만 축소된 7.5 cm KwK 44/1 L/70 주포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장갑은 증대되었는데, 기존 D형 판터 기준으로 두께 100mm 정도였던 포탑 전면 장갑은 120mm로 향상되었고 상면과 측면의 장갑도 보강되었다.

파생형

판터2

야크트 판터

판터의 차체를 이용한 구축전차로 판터의 주포는 유지되었다.

운용자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