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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해 해전'''은 2차 세계대전기 [[태평양]]전선에서 일어난 미 해군과 일본해군과의 해전이다.
'''필리핀 해 해전'''({{영어|Battle of the Philippine Sea}})[[제2차 세계 대전]]기 [[태평양]] 전선에서 일어난 미 해군과 일본 해군 사이에서 벌어진 [[해전]]이다. 달리 마리아나 해전, 필리핀 해전이라고 하며,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The Mariana Turkey Shoot)이라는 별명으로도 윤명하다.


흔히 말하는 마리아나 해전,필리핀 해전도 전투를 말하는 것이며 가장 잘 알려진 이름으론 위대한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 있다.
이 해전은 일본 해군 최후의 발악으로 마지막 남은 최후의 항공 전력을 모아 결전을 벌였지만, 막강한 미 해군 앞에 최후의 일본 해군 항공대는 말 그대로 '''학살'''당했다. 전투의 패배로 일본의 패망이 결정되었고 일본 해군은 더 이상 미군에 대해 공세를 펼칠 수 없게 되었다.


이 해전은 일본 해군 최후의 발악으로 마지막 남은 최후의 항공 전력을 모아 결전을 벌였지만, 막강한 미 해군 앞에 최후의 일본 해군 항공대는 말 그대로 '''학살'''당했다.
==배경==
전투의 패배로 일본의 패망이 결정되었고 일본 해군은 더이상 미군에 대해 공세를 펼칠수 없게 되었다.
[[과달카날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은, 슬슬 제 힘을 내기 시작하는 막강한 미군의 공세 아래 중태평양에서 처참히 뭉개지며 밀리고 있었다. 중태평양의 일본군 점령하의 섬들을 하나둘씩 점령하며 마침내 일본의 절대국방선인 마리아나 해까지 진격해 나간다.
 
공세를 취하며 최종적으로 일본을 굴복시켜야 하는 미군으로선 절대국방선을 돌파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고 이 선이 뚫리면 패배가 확실해지는 일본으로선 반드시 모든 힘을 다해 막아야 하는 처지였다. 당시 미군은 신형 [[항공모함]]에([[에식스급 항공모함]]) 일본이 보유한 어떤 전투기보다 강력한 [[F6F 헬캣]]으로 무장한 미 해군은 일본 해군을 압도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전세는 이미 미군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배경==
==전투의 경과==
==전투의 경과==
==결과==
==결과==
미군 1,500명 전사
일본군 10,000명 전사
==여담==


[[분류:태평양 전쟁]]
[[분류:태평양 전쟁]]
[[분류:일본제국]]
[[분류:미국의 사건]]
[[분류:해전]]
[[분류:1944년 분쟁]]

2022년 3월 6일 (일) 01:31 기준 최신판

필리핀 해 해전(영어: Battle of the Philippine Sea)은 제2차 세계 대전태평양 전선에서 일어난 미 해군과 일본 해군 사이에서 벌어진 해전이다. 달리 마리아나 해전, 필리핀 해전이라고 하며,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The Mariana Turkey Shoot)이라는 별명으로도 윤명하다.

이 해전은 일본 해군 최후의 발악으로 마지막 남은 최후의 항공 전력을 모아 결전을 벌였지만, 막강한 미 해군 앞에 최후의 일본 해군 항공대는 말 그대로 학살당했다. 이 전투의 패배로 일본의 패망이 결정되었고 일본 해군은 더 이상 미군에 대해 공세를 펼칠 수 없게 되었다.

배경[편집 | 원본 편집]

과달카날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은, 슬슬 제 힘을 내기 시작하는 막강한 미군의 공세 아래 중태평양에서 처참히 뭉개지며 밀리고 있었다. 중태평양의 일본군 점령하의 섬들을 하나둘씩 점령하며 마침내 일본의 절대국방선인 마리아나 해까지 진격해 나간다.

공세를 취하며 최종적으로 일본을 굴복시켜야 하는 미군으로선 이 절대국방선을 돌파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고 이 선이 뚫리면 패배가 확실해지는 일본으로선 반드시 모든 힘을 다해 막아야 하는 처지였다. 당시 미군은 신형 항공모함에(에식스급 항공모함) 일본이 보유한 어떤 전투기보다 강력한 F6F 헬캣으로 무장한 미 해군은 일본 해군을 압도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전세는 이미 미군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전투의 경과[편집 | 원본 편집]

결과[편집 | 원본 편집]

미군 1,500명 전사 일본군 10,000명 전사

여담[편집 | 원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