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중동전쟁

Schadenfreude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5월 3일 (일) 04:17 판

1967년 6월 5일에서 6월 10일사이에 벌여진 전쟁으로 6일만에 끝난 전쟁이라서 6일 전쟁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중간에 전쟁 중단을 압박 당해 일찍 끝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승리로 평화건 협정이건 뭐건 순식간에 끝나버려서 유명하다.

개요 및 배경

수에즈 전쟁에서 패전을 겪었지만 결과적으론 승리한 나세르는 자칭, 근데 실제로도 그런 이미지이긴 했다아랍 국가주의의 리더답게 이스라엘에게 복수하기 위해 소련의 군사고문단이나 최신 장비를 받고,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후원하였다. 이런 식으로 서로 간의 긴장감이 웃돌았었다.

이 때 시리아에서도 이스라엘과 여러가지 충돌이 있었던 차인데 시리아 정부가 더 극적인 바흐티스트 정부로 바뀌자,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극에 달하기 시작하고, 이집트의 나세르는 시리아를 지키기 위해 상호방어조약을 맺게 된다. 그 이후로도 사무라는 마을이 이스라엘 (IDF)에게 습격당하고, 실제로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싸워서 시리아의 MiG Fighter 6대가 파괴되는 등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나세르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약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렇게 전쟁 없이 그냥 지나갔으면 오히려 좋았겠지만... 위기는 엉뚱하게도 소련에서 내려온다. 1967년 5월 13일, 소련은 사다트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공격하려한다고 오보했다. (정확히 말하면 차후에 소련의 정보가 거짓이라는 것이 판명 되었고, 왜 이런 짓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그저 일부에선 시리아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소련이 벌인 일이라고는 한다.) 그리하여 나세르는 5월 14일 10만 군사를 시나이 반도에 배치하고, 티란 해협에 주둔하고있던 UNEF, UN 군사들에게 당장 자기 나라는 자기들이 지킬테니, 이집트에서 나가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UNEF는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 쪽에 주둔하여 전쟁 막이 될 수 없겠냐고 했지만...거절당했다 멍청이가 아니면 솔직히 이 쯤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어야하지만....

전황

1967년 6월 5일 아침 7시, 이스라엘 공군이 들이닥쳤고, 단 3시간만에 이집트 공군 전체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한 말할 것도 없이, 한 국가의 공군을 완전히 파괴하기에는 원래 3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려야 정상이다. 근데 이 3시간안에 이집트 공군만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도 아니고 시리아와 요르단이 공격 당하여 뜬금없이 공격당하는 요르단. 공군에 큰 타격을 입혀졌다. 시나이 반도를 공격한 이스라엘 공군은 이집트가 막으려 온갖 힘을 다 썻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시나이 반도를 거쳐 거의 수에즈 운하까지 진격한다. 또한 웨스트 뱅크 (요르단의 입장에서 웨스트 뱅크, 이스라엘 입장에선 이스트 (동쪽) 뱅크)를 공격하여 요르단 강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 3나라는 당연히 반격도 하였다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가 반항하기를(을) 썼읍니다! 효과는 극히 미미했다!

이를 두고 UN 안전 보장 이사회 (Security Council)은 전쟁을 즉히 멈추라고 명했으나 아랍측에서 거절하였다. 무슨 판단이냐. 이는 아직도 전쟁에 이길 확률이 꽤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

이후는 진짜 안습이다. 아카바 만과 티란 해협을 차지한 6일에는 이집트가 공세를 멈춰다라고 빌었고, 이스라엘은 당연히 이를 무시했다. 7일 부터는 요르단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동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요르단 강까지 진격하자 요르단의 후세인 왕 또한 공세를 멈춰달라고 부탁한다. {{ㅊ|공격의 포커스를 바꾸자 1일 만에 전쟁이 끝났어요}]. 시리아 군은 이때까지도 전황을 제대로 모르고 이집트와 요르단이 잘 싸우고 있는 줄 알고 소극적인 공격 및 기습을 골란 고원 쪽에서부터 행하였으니... 다옌 장군이 1967년 6월 9일에 시리아 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하루 뒤인 6월 10일, 시리아는 공세를 멈추라고 부탁한다. 공세를 멈춰달라고 쓰고, 항복이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