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식

Battlehistory2122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2월 14일 (월) 10:30 판

柳元植.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2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

1887년생이며,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 출신이다. 그는 개신교 신자로, 1919년 3월 8일 장련읍 예수교 교회에서 독립선언서 약 500매를 기독교계 숭실학교 교사 김창덕(金昌德)에게 전달하여 신도들에게 배포했다. 이후 일도면 누리 예수교회의 임국승(林國承), 정재염(鄭在炎) 등 교회 인사와 박경준(朴景雋)·오윤화(吳允和)·최태영(崔泰永) 등 청년·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그리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했다. 3월 12일 장련 장터에서 장꾼들이 모인 틈을 타 독립만세시위를 이끌다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1심과 2심에서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받자, 이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상고취의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본인은 지난 3월 1일 손병희 이하 33인이 발포한 조선독립선언서를 펴 보고 그 후 12일 본 동리 시장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주장한 사실에 대하여 지방법원 및 복심법원에서 본인을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8개월에 처한바 이러한 소송 사태는 부정당한 판결이 어디에 있는가. 만국강화회의에 민족자결문제가 조건으로 제출된 결과로 세계 각 영토 및 속지의 민족 등은 다시 독립하는 일은 한 두 번밖에 없는 명확한 사실이라 본인도 조선민족의 한 사람이다. 고로 자국의 독립을 희망하는 생각이 간절하여도 기회가 없어 한스러울 뿐이었는데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의 때가 와서 민족자결주의로 독립정신을 발표하기 위해 우리 "조선독립만세"를 열심히 주창하였으나 보안법 위반이라고 하고 어떻게 판결될 수 있는가. 하촉 후 세계적 광명정대한 법률에 대조하여 판결하기를 바라고 이에 상고한다.

그러나 1919년 9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면서 옥고를 치렀다.[1]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장련청년회(長連靑年會)에서 집행위원, 회장 등의 직책을 맡아 활동했으며,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1년 유원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외부 링크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