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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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코리아 또는 WWW-KR은 1995년 5월[1]대한민국의 웹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든 비영리 단체이다. 당시 급속도로 팽창, 발전하기 시작하고 있던 월드 와이드 웹 연구의 조직화 및 개발자 간 소통 확대를 통한 인터넷의 보급 및 인터넷 문화 형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등장 배경[편집 | 원본 편집]

하이퍼링크로 정보를 쉽게 열람할 수 있게 만든 월드 와이드 웹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90년대 초반에는 대학 및 기업 사이에서 월드 와이드 웹의 토대를 세우기 위한 기술 및 그 활용에 대한 토의가 점차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도 1993년부터 인터넷에 대한 회의인 KRnet이 열리는 등 서서히 인터넷에 대한 토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최우형 박사가 1994년 7월[2]에 인터넷에 대해 토의하기 위해 WWW-Forum이라는 메일링리스트를 만들었고, 이 메일링리스트를 기반으로 웹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인터넷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기 시작했다.

이 때 1994년 11월 경 ETRI의 최준혁 박사가 미국에서 최초의 웹 브라우저 모자이크(Mosaic)와 웹에 대한 책을 사 왔는데 이를 알게 된 메일링 리스트의 사람들이 그 책 좀 복사해서 같이 보자는 난감한 요청(...)을 해온다. 잠깐, 저작권은요? 이런 요청은 "배운 사람이 어찌 그러냐?"는 포항공과대학교의 김기태 교수의 당연한 일침 한 방에 쑥 가라앉게 된다.

이후 우리도 한 번 같이 힘을 모아서 저런 책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메일링리스트에 올라왔고, 이에 공감한 22명의 필자들이 각자 자신이 잘 아는 인터넷의 분야에 대해 책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1994년 12월부터 시작된 인터넷 기술서 집필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바로 1995년 2월에 등장한 《가자, 웹의 세계로》라는 이름의 대한민국 최초의 인터넷 기술서이다. 이 책은 파일의 형태로 메일링리스트에 올라와 무료 배포되었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법, 웹 브라우저 등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한 기초적인 기술적 지식을 제공하는 입문서로써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이러한 반응에 고무된 메일링 리스트의 사람들은 한층 더 나아가서 각자 잘 아는 분야의 지식에 대해 공유하는 공개 세미나를 열자는 제안을 한다. 이 제안은 1995년 3월에 충남대학교에서 제1회 WWW 워크샵이 열리면서 현실화된다. 개최 전에는 100명 정도 모일 것이라 예상과는 다르게 약 6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모이면서 참석자들은 인터넷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을 느끼게 되었고, WWW 워크샵의 주최자와 메일링 리스트의 주요 활등 인물들은 인터넷에 대한 정보 공유와 인터넷 보급을 목표로 하는 단체인 웹코리아를 설립한다.

등장 이후 활동[편집 | 원본 편집]

웹코리아는 설립 이후 다음과 같이 웹 기술의 보급 및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웹 기술 보급을 위한 집필 활동[편집 | 원본 편집]

잡지 등 각종 매체에 인터넷에 대한 각종 글을 기고하면서 인터넷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활동했다. 집필 활동 중 대표적인 예시로는 대한민국 최초의 인터넷 잡지인 '월간 인터넷'의 창간호에 웹에 대한 특집 글을 쓴 것이 있다. 웹코리아 설립 직전 내놓은 인터넷 기술서 '가자, 웹의 세계로'도 더 쉽게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개정 작업을 거친 후 1995년 11월에 무료 배포하고 종이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3] 이 개정본은 웹코리아의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더 쉽게 썼는데 책 분량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는 불편한 진실

오프라인 워크샵 개최[편집 | 원본 편집]

웹코리아 설립 직전에 연 제1회 WWW 워크샵을 이은 워크샵도 1년에 두 번 정도로 정기적으로 열었다.

제1회 WWW 워크샵 (참고자료)
  • 시행일: 1995년 3월 25일
  • 주제: WWW의 정의 및 기본적인 이해, WWW를 사용하는 방법, HTML에 대한 설명과 서버 설치법, 보안, CGI의 소개, WWW의 발전 방향
제2회 WWW 워크샵 (참고자료)
  • 시행일: 1995년 10월 31일
  • 주제: 제 1회 워크샵에서 다룬 내용 이외에도 WWW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현황과 전망도 다뤘다. 이런 내용 이외에도 전문 기술인력을 대상으로 한 모임도 따로 열어 Java, 검색 엔진, HTML 3.0, 암호화 기술 등 전문적인 기술에 대한 토의도 했다.
중앙일보와 웹코리아가 공동으로 주관했다. 이때는 제1회 워크샵에 몰린 인원의 약 두 배가 모였다.
제3회 WWW 워크샵 (참고자료)
  • 시행일: 1996년 3월 22일
  • 주제: 제2회 워크샵에서 다룬 내용 이외에도 데이터베이스 게이트웨이, WWW을 이용한 가상현실, 전자화폐의 사용 등 더 폭넓은 주제를 다뤘다.
제4회 WWW 워크샵 (참고자료)
제5회 WWW 워크샵 (참고자료)
  • 시행일: 1997년 5월 16일
  • 주제: JavaScript, CSS, PNG, 인터넷을 이용한 실시간 멀티미디어 등 당시 막 등장한 인터넷의 신기술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각종 주제에 대한 워킹그룹 형성[편집 | 원본 편집]

공식적인 세미나의 성격을 지닌 워크샵 말고도 더 세부적인 정보 교환 및 토의를 목적으로 하는 워킹그룹도 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 부산, 대구, 대전에 워킹그룹을 열었고, 따로 워킹그룹이 형성된 세부적인 주제에는 인트라넷, 인터넷 보안, 독도는 우리땅(...)[4], XML, 모질라 한국 프로젝트, 웹 서비스 정책 등이 있다.[5]

해외 웹 기술 도입[편집 | 원본 편집]

웹코리아는 해외 웹 표준화 단체인 W3C의 일원으로 가입했고, 해외의 웹 표준 및 기술을 국내에 들여오는 역할을 했다.

해체[편집 | 원본 편집]

1998년 경 대한민국의 웹페이지 수가 폭증하고 각종 인터넷 관련 전문 서적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해서 수익을 내려는 업체들 역시 폭증하게 된다. 이에 웹코리아는 본래의 목적인 대한민국의 인터넷 보급 및 문화 형성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판단하여 자진해체한다.

의의[편집 | 원본 편집]

웹코리아는 월드 와이드 웹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이전인 1990년대 중후반에 웹 기술에 대한 열띤 소통과 토론의 장을 마련했고, 대한민국 최초로 인터넷 기본서를 집필해서 무료 배포하는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웹코리아는 대한민국에 인터넷이 더 빨리 퍼질 수 있게 도움을 주었고, 인터넷의 보급, 활성화, 발전을 앞당기는데 기여했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과거 웹코리아의 핵심 일원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이후 대부분 대한민국 IT계의 거물로 활약했다. 대부분 IT 관련 주요 기업의 CTO나 팀장으로서 재직했다.
  • 까치네를 개발한 김성훈은 과거 웹코리아의 핵심 일원 중 한 명이었다.
  • 현재 비슷하거나 거의 같은 이름으로 영업하고 있는 인터넷 마케팅 업체들과는 아무 관계없다. 애초에 웹코리아는 비영리 단체이다.

관련 사이트[편집 | 원본 편집]

참고자료[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1995년 6월 26일 동아일보
  2. 제1회 WWW 워크샵
  3. 1995년 11월 9일 경향신문
  4. 반달농담이 아니고, 진짜 이런 주제의 워킹그룹이 있었다.
  5. WWW-KR: History of Web in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