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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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괴 ==
== 붕괴 ==
{{인용문|1층 중앙로비 가운데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 당시 생존자 정복실 씨의 증언}}
{{인용문|1층 중앙로비 가운데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어요.|당시 생존자 정복실 씨의 증언}}


사고 당시 백화점 안에는 고객 1000여명과 직원 500여명이 있었다.<ref>http://m.asiatoday.co.kr/kn/view.php?r=articles/20150629001142103</ref> 붕괴 직전, 간부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도 종업원과 고객을 대피시키지 않았으며, 그저 5층만 폐쇄하였다.<ref>4,5층 폐쇄라는 기사도 있다. 진위 여부 확인 바람.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7691394</ref> 그리고 자신들은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결국 직원들과 고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백화점 내부에 있었으나 결국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경 삼풍백화점 A동 전체가 약 20초 만에 붕괴되었다.<ref>http://www.vop.co.kr/A00000904155.html</ref>
사고 당시 백화점 안에는 고객 1000여명과 직원 500여명이 있었다.<ref>http://m.asiatoday.co.kr/kn/view.php?r=articles/20150629001142103</ref> 붕괴 직전, 간부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도 종업원과 고객을 대피시키지 않았으며, 그저 5층만 폐쇄하였다.<ref>4,5층 폐쇄라는 기사도 있다. 진위 여부 확인 바람.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7691394</ref> 그리고 자신들은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결국 직원들과 고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백화점 내부에 있었으나 결국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경 삼풍백화점 A동 전체가 약 20초 만에 붕괴되었다.<ref>http://www.vop.co.kr/A00000904155.html</ref>

2015년 6월 29일 (월) 15:20 판

개요

건국 이래 최악의 참사[1]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부실 공사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대형 참사로 502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되었으며, 937명이 부상을 입었다.

삼풍백화점이란?

삼풍백화점은 1987년 착공해 1989년 개장했다. 건설 당시 단일 매장 기준으로 전국 2위 규모의 초대형 백화점으로서 고급 명품과 수입품을 주로 진열해 강남 부유층을 끌어모았다. 매출액 기준 업계 1위 자리로 오르기도 했다.[2] 사고 당시 삼풍 백화점은 전국 2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었다.[3]

붕괴 원인

부실시공

삼풍백화점 붕괴의 요인으로 1차적으로 '부실시공'이 지적된다. 애초에 삼풍아파트에 딸린 근린상가로서 4층으로 설계된 건물을 5층으로 불법증축 하였고, 기둥의 두께도 기준치보다 얇았다.[4] 그 외에 무량판 공법(대들보 없이 기둥으로만 지붕판을 받치는 공법)이 사용된 것도 붕괴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5]

불법 개조 등

삼풍백화점 측은 물건을 더 많이 진열할 계획으로 일부 기둥을 제거하였고, 나머지 기둥도 굵기를 25%나 줄였다.[6] 또한 5층을 식당으로 사용하면서 온돌까지 놓아 그 무게가 가중되었고, 옥상에 있던 29톤 가량의 에어컨 3대를 민원 때문에 반대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중기를 사용하면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직접 끌어서 옮겼고, 이는 옥상에 상당한 무리를 주었다.[7]

전조

삼풍백화점은 붕괴 며칠 전부터 금이 가고 천장에서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며 건물이 기우는 등 붕괴와 관련된 여러 징조를 보였다.[8] 더욱이 참사 당일 오전 8시 5분쯤 A동 5층 바닥이 갈라지면서 붕괴 조짐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진 측은 영업을 계속하였다.[9]

붕괴

1층 중앙로비 가운데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 당시 생존자 정복실 씨의 증언

사고 당시 백화점 안에는 고객 1000여명과 직원 500여명이 있었다.[10] 붕괴 직전, 간부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도 종업원과 고객을 대피시키지 않았으며, 그저 5층만 폐쇄하였다.[11] 그리고 자신들은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결국 직원들과 고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백화점 내부에 있었으나 결국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경 삼풍백화점 A동 전체가 약 20초 만에 붕괴되었다.[12]

구조작업

계속해서 붕괴가 이어진 탓에 기계 장비의 도입은 제한적이었고, 구조요원들이 직접 나서야 했다. 구조작업을 위하여 소방관들 외에 공수부대까지 직접 투입되었다. 배우 김상경은 공수부대로 군복무를 하던 도중 삼풍백화점 구조 작업에 투입된 바 있다고 밝힌 적 있다. 그는 2013년 12월 방송된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구조요원들이 손으로 돌을 날렸다. 시끄러우니까 '전 구조요원 동작 그만'이라고 하면 조용해진다. '생존자 계십니까?' 하고 조용하면 다시 작업을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사후 조치

삼풍백화점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이준 전 삼풍건설 산업 회장과, 당시 삼풍백화점의 사장이었던 그의 차남 이한상, 뇌물을 받고 건물의 설계변경을 승인한 이충우, 황철민 전 서초구청장 등 25인이 기소되었다.

참사 직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책임을 지고 이준 전 회장은 업무상 과실치사, 업무상 과실치상, 뇌물공여, 업무상 횡령 등 4가지 혐의로 기소되었다.[13] 전 국민을 분노하게 한 사건인 만큼 아무도 변호를 하려고 하지 않았고, 결국 국선 변호사가 이준 전 회장의 변호를 맡았다. 1심은 4가지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년 6개월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항소심은 업무상 횡령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7년 6월로 감형했고, 대법원은 그대로 형을 확정했다. 이준 전 회장은 출소 수개월 후 당뇨 등 지병으로 사망하였다.[14]

당시 삼풍백화점 사장에게는 징역 7년형이 선고됐고, 이충우, 황철민 전 서초구청장은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하여 502명이 숨지고, 937명이 다친 참사의 책임자들이 받은 처벌로는 미미하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이후 1998년 삼풍백화점 터 인근 양재동 시민의 숲에 참사 위령탑이 세워졌고, 삼풍백화점 터에는 2004년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다.

관련 창작물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