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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비 설계안 ====
==== 예비 설계안 ====
당시, 네덜란드는 대형 군함의 건조를 한 경험이 없었으며 근대적인 함선 설계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안도 없다시피 했다. 결국, 네덜란드는 외국으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대형 군함을 만든 경험이 없었으며, 근대적인 함선 설계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안도 (제인 연감과 같은 공개된 자료말고는) 없다시피 했다. 결국, 네덜란드는 외국으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원래 네덜란드는 [[됭게르크급 전함]]을 만드는 것에 맞춰 프랑스로부터 설계를 받아오기를 희망했지만, 실제 협상은 독일과 진행하였다. 1939년 4월 24일에서 25일에 걸쳐 베를린에서 협의가 진행되었고 독일이 [[사른호르스트급 전함]] 계획을 완료하는 것에 맞춰 양국은 순양전함 제작에 있어 필수적인 장비들은 전적으로 독일이 제작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1939년 7월 11일에는 네덜란드에서 독자적으로 진행된 설계가 완성되었지만, 해당 설계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군함 제작과 관련된 개선점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으며 특히 장갑 구조에 있어서는 빈약한 갑판 장갑과 수중 방호력을 지닌 구식 구조에 해당됐다. (당시 선진설계가 반영된 전함과 비교하면 20~25년 가량 뒤쳐진 것이었다.)
 
독일은 네덜란드의 순양전함 건함 계획에 호의적이었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두 가지 부분이 존재하였다. 이에 대해 독일 대표단은 주문 지역을 독일내 조선소로 하는 것과 네덜란드측에서 건조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독일 회사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하였고 그에 맞춰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설계 공개를 거부하였다. 네덜란드 당국은 협상 조건을 맞추기 위해 1939년 여름 내내 어떠한 협의도 개최하지 못하였다.
 
공식적인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네달란드는 좀 더 앞서나가기로 하여 Ferrostaal A.G. Essen사의 계획안을 계약하고, 1939년 5월 15일에는 독일 측에서 제출한 청구서를 지불하였다. 약 2개월 뒤, 브레멘(7월 13일)과 베를린(7월 31일)에서 진행된 협상을 통해 독일로부터 자국의 전함 계획안과 설계도의 공개를 확인받았다. 비록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설계를 그대로 받아오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네덜란드보다 훨씬 선진적인 독일의 건함 지식과 기술이 반영된 순양전함의 설계에 해당되었다. 독일의 설계안은 당해 8월 21일에 네덜란드로 양도 되었다. 1939년 10월 4일, 양국 해군간의 연락 담당으로 임명된 독일 해군 제독으로부터 독일 당국이 납품일을 지키는 것은 보장하기 어려우며, 이는 네덜란드에 있어
 
[[작성중]]


==== 새로운 설계 구상 ====
==== 새로운 설계 구상 ====

2016년 3월 4일 (금) 18:05 판

밥알입니다.

연습장1 - 설계안 1047 순양전함

Wikipedia-ico-48px.png이 문서에는 영어판 위키백과의 Design 1047 battlecruiser 문서를 번역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설계안 1047(Design 1047) (또는 1047 계획(Project 1047)) 순양전함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네덜란드에서 설계된 순양전함으로 일본 제국의 동인도 제도 식민지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설계가 시작되었다. 당시 네덜란드의 정보요원들은 일본 해군이 적국인 미국영국에 대응하기 위해 군함 배치의 변경이 있을 것이라는 첩보를 얻고 그에 맞춰 함대를 이뤄 싸울 수 있는 순양전함을 설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에 맞춰 네달란드 국방부장관은 2~3가지의 순양전함 설계를 주문하였지만, 네덜란드는 이전까지 근대적인 주력함을 설계한 적이 없었기에 순양전함의 설계는 전적으로 공개된 문헌과 제인연감(Jane's Fighting Ships) 같은 간접적인 방식에 의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고 동시에 구상한 예비 설계안이 1939년 7월 11일에 완성이 되었다. 하지만, 예비 설계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적인 전함의 설계방식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었고 특히 장갑구조에 있어서는 매우 뒤처진 설계였다.

결국, 네덜란드는 독일과 협정을 체결하여 독일의 순양전함 개념을 반영시킨 설계안을 받는 대신, 모든 장비의 제작은 독일 회사가 맡게끔 하였다. 1940년 2월에는 구체적인 설계안에 등장했고, 이탈리아에 방문한 이후인 1940년 4월 19일에는 함선 내부 설계를 재구상하였다. 해당 설계안은 독일의 네덜란드 침공과 점령기간 동안 설계가 이루어졌지만 실제 건조로 이어지지 않았다.

제원

  • 배수량 : 27988톤
  • 전장 : 241.2m
  • 선폭 : 30.85m
  • 흘수 : 7.8m
  • 출력 : 4축 기어터빈, 보일러 8기로 추정 (160,000마력 또는 180,000마력)
  • 속도 : 최대 34노트
  • 무장
    • 3연장 283mm 포탑 3기
    • 2연장 120mm 45구경장 포 6기
    • 2연장 40mm 보포스 대공포 7기
    • 20mm 오리콘 대공포 8기
  • 장갑
    • 선측
      • 주선측 : 9인치(225mm), 72도 경사
      • 상부 : 1.6인치(40mm)
    • 세로방뢰격벽 : 1.6인치(40mm)
    • 갑판
    • 상갑판 : 0.79인치(20mm)
    • 장갑갑판 : 0.59인치(15mm) + 4인치(100mm)
    • 하갑판 : 1인치 (30mm)
    • 보일러실 상부
      • 주갑판 : 8.9인치(225mm) 격자
      • 하갑판 : 3인치(75mm)
    • 사령탑 : 5.9인치(150mm)
    • 조타실 : 5.9인치(150mm)
    • 주포탑 바벳 : 10인치(250mm)
    • 부포탑 바벳 : 3인치(75mm)

배경

1931년, 일본이 만주 침략을 감행하게 되면서 네덜란드 당국은 동인도 제도 식민지의 방어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동인도 제도 식민지로 자바, 수마트라, 보르네오, 그리고 뉴기니 제도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해당 식민지에는 네덜란드인 5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고무와 석유 같은 천연자원의 공급지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동인도 제도에 있었던 원양항해가 가능한 군함은 HNLMS Soerabaja로 함명을 변경한 드 지벤 프로시비엔급 연안방위함, 세 척의 순양함과 여러 척의 구축함 그리고 섬의 방어를 위해 존재한 잠수함 함대뿐이었다.

네덜란드 당국은 전쟁이 발발하면 일본의 주력함들은 미국영국의 견제를 위해 빠지게 되면서 일본이 동인도 제도를 공격할 때에는 순양함들로만 공격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하지만, 순양함들만 남았다 하더라도 일본의 전력은 네덜란드가 이기기에는 화력과 물량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1944년을 기준으로, 네덜란드 순양함 5척으로 일본의 중순양함 18척과 경순양함 27척을 상대해야할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네덜란드 해군에 더 강력한 군함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 일본의 순양함 전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3척의 Super Cruiser를 건조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체결된 워싱턴 해군 조약과 런던 해군 조약에 따르면 조약 체결 이후 건조되는 순양함은 1만톤 이하의 배수량과 8인치 미만의 함포 구경을 지니게 제한이 가해졌는데 비교적 규모가 작은 네덜란드 해군에 있어서 조약의 내용에 간섭 받을 일은 없었다. 이후, 네덜란드 해군 소속의 정보요원은 일본의 순양함이 주력함 함대에 합류하는 대신 수상기 모함과 함께 움직인다는 정보를 전했다.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네덜란드 당국은 순양전함에 대한 함재기의 공습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게다가 새로운 순양전함을 통해 동인도 제도의 네덜란드 함대를 지원하여 적들의 강습상륙이나 적군 구축함의 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설계

1938년, 네덜란드 해군의 고위관료는 해군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였고 논의 끝에 네덜란드 국방부는 1939년 2월 18일, 2척 또는 3척의 순양전함 설계를 주문하였다.

설계 조건으로는 12시간동안 32노트로 항해가 가능해야하며, 20노트에서 4500해리 수준의 항속거리, 흘수선 높이는 9m 이하, 20노트에서 30노트로 속도를 변경하는데 15분 이내로 걸려야하며 엔진실이 피격되어도 속도에 변화가 없을 정도의 방호력을 내세웠다. 무장으로는 280mm 함포 9문을 3연장 포탑에 장비하고 각 함포별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부무장으로 2연장 120mm 양용포 4기, 대공무장으로는 집중형 사격통제장치를 장비한 40mm 보포스 대공포 14기를 배치하였다. 함재기로는 전투기 2기와 정찰기 2기를 장비하게 하였고 방호에 있어서는 어뢰와 기뢰 방어에 신경쓰고, 28cm 함포 포탄과 300kg의 포탄을 방호할 수 있었다.

예비 설계안

당시, 네덜란드는 대형 군함을 만든 경험이 없었으며, 근대적인 함선 설계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안도 (제인 연감과 같은 공개된 자료말고는) 없다시피 했다. 결국, 네덜란드는 외국으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원래 네덜란드는 됭게르크급 전함을 만드는 것에 맞춰 프랑스로부터 설계를 받아오기를 희망했지만, 실제 협상은 독일과 진행하였다. 1939년 4월 24일에서 25일에 걸쳐 베를린에서 협의가 진행되었고 독일이 사른호르스트급 전함 계획을 완료하는 것에 맞춰 양국은 순양전함 제작에 있어 필수적인 장비들은 전적으로 독일이 제작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1939년 7월 11일에는 네덜란드에서 독자적으로 진행된 설계가 완성되었지만, 해당 설계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군함 제작과 관련된 개선점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으며 특히 장갑 구조에 있어서는 빈약한 갑판 장갑과 수중 방호력을 지닌 구식 구조에 해당됐다. (당시 선진설계가 반영된 전함과 비교하면 20~25년 가량 뒤쳐진 것이었다.)

독일은 네덜란드의 순양전함 건함 계획에 호의적이었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두 가지 부분이 존재하였다. 이에 대해 독일 대표단은 주문 지역을 독일내 조선소로 하는 것과 네덜란드측에서 건조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독일 회사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하였고 그에 맞춰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설계 공개를 거부하였다. 네덜란드 당국은 협상 조건을 맞추기 위해 1939년 여름 내내 어떠한 협의도 개최하지 못하였다.

공식적인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네달란드는 좀 더 앞서나가기로 하여 Ferrostaal A.G. Essen사의 계획안을 계약하고, 1939년 5월 15일에는 독일 측에서 제출한 청구서를 지불하였다. 약 2개월 뒤, 브레멘(7월 13일)과 베를린(7월 31일)에서 진행된 협상을 통해 독일로부터 자국의 전함 계획안과 설계도의 공개를 확인받았다. 비록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설계를 그대로 받아오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네덜란드보다 훨씬 선진적인 독일의 건함 지식과 기술이 반영된 순양전함의 설계에 해당되었다. 독일의 설계안은 당해 8월 21일에 네덜란드로 양도 되었다. 1939년 10월 4일, 양국 해군간의 연락 담당으로 임명된 독일 해군 제독으로부터 독일 당국이 납품일을 지키는 것은 보장하기 어려우며, 이는 네덜란드에 있어

작성중

새로운 설계 구상

최종 설계안

무장

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