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부소산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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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 [[사적]] 제5호
|종목 = [[사적]] 제5호
|명칭 = 부여 부소산성
|명칭 = 부여 부소산성
|한자 = 扶餘 扶蘇山城
|한자 = 扶餘 扶蘇ㅗ城
|그림=부소산성.jpg
|그림=부소산성.jpg
|그림설명=반월루 방향으로 본 부소산성 남쪽 성벽
|그림설명=반월루 방향으로 본 부소산성 남쪽 성벽

2020년 10월 3일 (토) 23:05 판

틀:문화재

개요

부여군의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 백제의 도성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에서는 사비성, 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대에는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축성시기

백제가 웅진(지금의 공주시)에서 사비(지금의 부여군)로 수도를 옮기던 시기인 백제 성왕 16년(538년)에 왕궁을 방어하기 위하여 이중의 성벽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전에 동성왕 22년(500년)경에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있던 것을 무왕 6년(605년)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어 백제 성곽 발달사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성

전체 성곽은 흙을 판축법으로 다져넣은 전형적인 백제식 토성에 해당한다. 전체적인 형식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싼 테뫼식과 다시 그 주위를 감싸게 쌓은 포곡식이 혼합된 내성과 외성이 결합된 복합구조의 산성이다. 동문, 서문, 남문의 3개 문의 터가 남아 있으며, 북문터에는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물을 빼는 수구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 안에는 군창터 및 백제 시대의 건물터와 영일루, 사비루, 고란사, 낙화암 등이 남아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