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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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 폭발, '4·23 뱅크런' 사태 (4월 23일 ~ ) ===
=== 4차 폭발, '4·23 뱅크런' 사태 (4월 23일 ~ ) ===
4월 23일 오전7시 현재 위키 수정이 가능하며, 수많은 위키러들이 기여 철회를 외치며 문서를 기여 이전 버전으로 되돌리거나 삭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반달러도 개입해 그야말로 폭풍삭제가 진행되고 있으며 문서의 숫자도 '''역주행'''을 달렸다. 오후 2시경에는 기어이 28만 고지를 '''역달성'''했다! <s>어휴 쌤통</s>
4월 23일 오전7시 현재 위키 수정이 가능하며, 수많은 위키러들이 기여 철회를 외치며 문서를 기여 이전 버전으로 되돌리거나 삭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반달러도 개입해 그야말로 폭풍삭제가 진행되고 있으며 문서의 숫자도 '''역주행'''을 달렸다. 여기에 편집 요약에 기여 철회 등을 적을 경우 바로 차단되거나 이유도 없이 차단되는 등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오후 2시경에는 기어이 28만 고지를 '''역달성'''했다! <s>어휴 쌤통</s>
 
위키게시판이 폭발하면서, 위키러들은 진짜로 [http://rigvedawiki.net/r1/wiki.php/%EC%9C%84%ED%82%A4%20%EA%B0%A4%EB%9F%AC%EB%A6%AC 위키 겔러리], [http://rigvedawiki.net/r1/wiki.php/%EC%9C%84%ED%82%A4%20%EA%B0%A4%EB%9F%AC%EB%A6%AC2 위키 겔러리2]를 만들고 대화를 하고 있다.


여담으로 4월 23일은 '''저작권의 날'''이다.
여담으로 4월 23일은 '''저작권의 날'''이다.

2015년 4월 23일 (목) 18:17 판

2015년 한국 인터넷 서브컬쳐계에 닥친 전무후무한 사건

2015년 3월 8일 리그베다 위키의 한 사용자가 영문 위키백과의 한 글을 무단으로 번역해서 긁어온 것[1]에서부터 촉발된 리그베다 위키-위키백과 분쟁이 씨앗이 되어, 4월 8일 리그베다 위키의 외부운영자인 '사채꾼'의 "속살 글"[2]에서부터 불거진 리그베다 위키의 영리화 문제가 밝혀지면서 사용자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다. 이것이 진행되어 리그베다 위키 4·17 무정부 사태의 여파로 퍼지게 되었다. 이 일로 리그베다 위키는 존속위험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위키가 생긴 가장 큰, 그리고 유일하다고 할 정도의 원인.

이 사태에 대해 위키 사용자들은 기여 철회, 게시판에서의 항의, 미래부공정위 등에 고발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역사

발단 (3월 8일 ~ 4월 8일)

약관 무단 변경이라는 이 사태의 원인 중 하나는 2013년부터 조금씩 제기되어 온 문제였다. 그 동안은 조용히 지나왔으나 2015년 3월 8일, 리그베다의 한 다크 나이트유저가 영문 위키백과의 네버랜드 문서를 무단으로 가져오면서 시작되었다.[1] 이러한 문제를 알게 된 위키백과 유저들은 3월 15일에 사랑방에 한 유저가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저작권 침해라고 항의했으며[3] 리그베다 위키에서 위키백과 문서를 불펌했다는 저작권 문제가 나오게 되었다. 또한, 리그베다 위키의 기부 간주 약관, 영리 여부 문제 등이 나오게 되었다. 이 외에도 위키미디어 공용의 사진에 대한 CCL 문제도 불거지게 되었다.

이 때 당시 반응은 단순한 저작권에 대한 이의제기로, 위키백과 내에서 처음으로 리그베다 위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 사용자는 다중 계정으로 차단되었기 때문에 별 것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이렇게 리그베다 위키에 대한 여러 문제가 제기되자, 관리자 청동은 4월 4일 오프라인 모임을 열자고 제안한다.[4]

이 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평범한 저작권 논쟁으로 그칠 줄 알았다.

1차 폭발 (4월 8일)

4월 4일 오프라인 모임 이후, 리그베다 위키의 외부 운영자라고 밝힌 '사채꾼'은 오프라인 모임 결과를 발표한다며 "속살 글"[2]을 올린다. 그런데,

2차 폭발, 4.15 대란 (4월 15일)

3차 폭발 및 무정부 사태 (4월 17일 ~ 18일)

리그베다 위키에서 생성된 틀:영리 활동 문서

4월 17일 오후 4시, 위키 게시판의 유저들이 리그베다 위키의 영리화를 알리기 위해 '틀:영리 활동'을 각 문서의 최상단에 수작업으로 달기 시작했다. 수많은 위키러들은 틀을 달거나, 편집을 취소하는 등의 행위로 영리화에 대해 극렬한 반대 의사를 피력하였다.

이후 관리자의 잠적이 지속되자, 반달꾼들이 몰려와서는 '틀:영리 활동' 문서를 공격하였다. 해당 틀이 더 많은 문서에 달릴 수록, 수정만 하면 피해 범위가 넓어진다는 점을 파고든 것. 처음에는 틀에 헛소리 몇 문장 써놓고 마는 것이 다였으나, 시간이 지날 수록 반달 행위들은 지능적으로 변해 틀의 링크를 테러 사이트 링크로 바꿔버리는 등 낚시까지 이루어졌다. 결국 반달꾼들과 선의의 유저들 사이에 '틀:영리 활동' 문서를 사이에 두고 수정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당일 오후 10시 30분까지 무려 1300회의 편집과 롤백을 주고 받았다. 이 전쟁으로 인해 엔하위키 미러는 갱신을 멈추고 만다.

위키 게시판은 일간베스트디시인사이드에서 온 병력들에게 농락당했고, 오후 7시에 이르자 'FrontPage'는 물론이고 리그베다 위키의 웬만한 문서들이 모조리 테러 당했다.

리그베다 위키의 FrontPage가 해킹당한 이후 남은 메시지.

그리고 오후 11시 10분이 되자, 'FrontPage'에 인코딩이 깨진 채로 의문의 메시지가 남기도 했다.

익일 오전 10시부터는, 리그베다 위키에 접속하면 "위키 데이터 복구중입니다. 멀리 있던 백업본을 끌어오는 중이라 좀 시간이 걸리니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뜬다. 그리고 오전 11시 10분에 FrontPage가 복구되었다. 서버가 4월 15일 새벽으로 롤백되었으며, 편집이나 소스 보기 등이 모두 막혔다.

서버 롤백 이후 편집 금지기간 (4월 18일 ~ 4월 22일)

위키 게시판의 경우, 개드립의 끊임 없는 범람으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디시인사이드위키게가 아니라 위키갤이라 카더라에 가까워졌다.(...) 4월 18일, 오후 10시 40분에는 위키 게시판이 막혀버린다. 이후 의외로 오래 가지 않고 2시간 만에 복구되었다. 이후, 시간이 경과하며 관리자가 게시판을 눈팅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4월 20일에는 날이 바뀐지 1분도 안 되어 기다렸다는 듯 관리자인 청동이 등판해 '공감버전업 프로젝트'에 대해 공지했다. 위키 게시판의 글 리젠이 새벽 내내 폭발했으며, 청동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로 폭발하였다.(...) 애초에 믿음을 주지 못한 관리자에게 어울리는 반응.

4월 22일에는 리그베다 위키 자체는 접속이 가능하나 게시판 접속이 되지 않는다.

4차 폭발, '4·23 뱅크런' 사태 (4월 23일 ~ )

4월 23일 오전7시 현재 위키 수정이 가능하며, 수많은 위키러들이 기여 철회를 외치며 문서를 기여 이전 버전으로 되돌리거나 삭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반달러도 개입해 그야말로 폭풍삭제가 진행되고 있으며 문서의 숫자도 역주행을 달렸다. 여기에 편집 요약에 기여 철회 등을 적을 경우 바로 차단되거나 이유도 없이 차단되는 등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오후 2시경에는 기어이 28만 고지를 역달성했다! 어휴 쌤통

위키게시판이 폭발하면서, 위키러들은 진짜로 위키 겔러리, 위키 겔러리2를 만들고 대화를 하고 있다.

여담으로 4월 23일은 저작권의 날이다.

문제가 제기된 부분

불공정 약관

저작권 문제

영리화 문제

여파

지금 보고 있는 리브레 위키나무위키를 탄생시킨 기폭제

이 사태로 인해 리그베다 위키는 사실상 풍비박산이 나게 되었다. 덩달아 위키 갤러리까지 탄생했다. (...) 자세한 내용은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 항목 참조.

패러디

이 영리화 사태에 대해서 누군가 몰락 패러디 합성 동영상을 제작했다.

각주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