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베다 위키 4·17 무정부 사태

이 문서에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나 사고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읽는이에 따라 불쾌감을 느낄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수정 시 사실에 입각하여 서술해주시기 바랍니다.

리그베다 위키가 처했던 가장 큰 갈림길.

그리고 이곳 리브레 위키나무위키가 만들어진 분기점.

-

청동씨 이건 아니죠. 돌아와서 얘기를 하세요.

 
— Anonymous

2015년 4월 17일,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로 촉발된 반발 여론에 대해 당시 관리자 '청동'이 회피를 목적으로 두고 부재하게 되자 관리 권한의 미비를 노린 수많은 악성 유저들이 '틀:영리 활동' 문서를 중점으로 리그베다 위키 전역의 문서들에 반달을 일으킨 사건. 아카이브에 저장된 당시의 영리화 사태 항목.어째 서로마 멸망이랑 비슷해보이니

1 경과[편집]

1.1 4월 17일[편집]

1.1.1 틀 달기 운동[편집]

'틀:영리 활동' 문서의 중기 버전

당일 오후 3시 30분 경, '틀:영리 활동' 문서가 생성되었다. 이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의 전말을 기저에 두고, 당신의 기여는 현재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편집자에게 여과 없이 알리고자 만들어졌다. 생성 초기의 디자인은 다른 틀과 큰 차이 없이 붉은 테두리의 경고문이었다. 그리고 이후 채 15분이 지나지 않아 위키 게시판에서는 이 틀을 사태의 광범위적인 공론화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으며, 당시 위키 게시판에 머무르던 유저들 사이에서 이 틀을 모든 문서의 최상단에 기재하려는 여론이 발생한다. 당일 4시 경이 되어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완전히 무르익어 주요한 문서들부터 유저들이 수작업으로 틀을 달고 다니는 것이 흐름을 타게 된다. 또 당일 오후 6시에는 "위키가 죽었다!"라는 의미가 담긴 검은 디자인으로 틀이 바뀌었으며, 틀의 헤드라인도 "리그베다 위키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로 바뀌면서 더욱 직선적이게 되었다. 이는 여타 다른 위키 사이트들이 위기를 맞았을 때 이용자들의 합심을 유도하던 방식과 크게 궤를 달리하지 않는다.

이 운동이 선량한 편집자에게 '당신의 기여는 곧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했다면, 분노한 일부 유저들은 본인의 기여를 취소시키기도 했다. 이는 편집자들의 정보가 모인 위키가 편집자를 우선하지 않았을 때,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는 사례가 되었다.

틀의 디자인이 검은색으로 굳어진 이후, 주목도가 높아져 사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 측면도 있다. 하지만, 해당 틀을 관리자 측에서 단 강제 영리화 일방 통보 격문 정도로 오해하는 외부인도 나타나는 등의 이면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후 후술할 수정 전쟁이, 바로 이 틀을 감싸돈 채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1.1.2 수정 전쟁[편집]

관리자 '청동'의 잠적이 길어지자 물을 흐리려는 반달꾼들이 리그베다 위키를 향해 기하급수적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관리자의 부재를 대체할 누군가조차 없다는 점은, 그들의 입장에서 먹잇감으로 작용하였다.

위키에서 의 형식은 정보의 더 넓은 파급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그 정보들이 단번에 손쉽게 수정된다는 취약한 면도 있었다. 트롤러들은 이 점을 비집고 들어가, ㄹ체문화어 등 엉뚱한 내용을 채워넣어 해당 틀 문서를 반달하였다. 이후 반달 방법은 더 고도화되어, 사태의 심화적 파악을 위해 달려 있던 틀의 링크들을 테러 사이트 링크로 바꿔 거는 등 즉시 확인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진화했다.

수정 전쟁 중 건진 기적의 한 장[1]

이는 곧 '틀:영리 활동' 문서에서의 대대적인 수정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틀의 목적을 온전히 지키려는 유저들과 리그베다 위키에 혼란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유저들 사이에 엄청난 양의 편집과 롤백이 오가게 된다.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 설상가상으로 틀의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는 심미주의자, 붉은 색상으로 도배해 접속자들의 눈갱을 유도하려는 시각 테러리스트 등 소수의 전투민족들까지 꼬이면서 마침내 해당 문서는 1초 단위마다 새로 쓰이기에 이른다. 결국 이 전쟁의 스케일은, 당일 오후 10시 30분에 무려 1300회에 가까운 편집 횟수를 기록한 것으로 수치화되어 나타난다. 이때의 편집이 발단이 되어, 라이트 유저들은 틀 자체를 반달 목적으로 오인하기도 했으며 엔하위키 미러의 갱신이 끊기는 등 많은 혼란이 야기되었다.

1.1.3 위키 게시판 무법화[편집]

일베저장소디시인사이드(역갤, 애갤, 야갤, 깡갤 등), 루리웹(유게), MLB파크, 트위터 등 여러 외부 커뮤니티외세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부인들이 게시판의 규정을 일체 무시하고 개드립음담패설을 드랍하거나 청동에 반발하는 위키러들을 따라 같이 항목을 반달하는 통에 위키 게시판은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고 만다.

1.1.4 테러 및 FrontPage 붕괴[편집]

당일 오후 7시부터는 FrontPage가 해킹으로 인해 통째로 날아가는 등 바람 잘 날이 없게 되었으며, 이후 20분이 지나도록 FrontPage는 정상화되지 못했다. 유튜브 동영상[2]부터 니코니코니까지, 다른 때라면 꿈도 못 꿨을 금단의 영역에 발을 들인 소스들이 많아졌다.(...) 테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야짤, 혐짤 등 이용자에게 불쾌감을 주기 위한 용도의 이미지들과 각종 쇼크 사이트로 연결되는 하이퍼 링크들이 삐라라도 된 듯 리그베다 위키 군데군데에 퍼지게 되었다. 사태를 모르는 라이트 유저들은 이에 피해를 입고 낮에 준동한 인원들을 비난하는 등 혼선을 빚게 된다.

리그베다 위키 FrontPage가 해킹당한 이후 남은 메시지.

그리고 오후 11시 10분, 마침내 누군가가 리그베다 위키를 해킹해 문을 닫아버리는 기염을 토한다. 사건 현장인 FrontPage에는 인코딩이 깨진 채로[3] "청동씨 이건 아니죠. 돌아와서 얘기를 하세요. - Anonymous"라는 메시지만이 남아 있었다. 당시 시점에서 리그베다 위키의 내용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엔하위키 미러 뿐이었으나, 그마저도 미러링 과정에서 위키 내용이 오염되었기 때문에 대체재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리그베다 위키의 관리자가 포크까지 막았기 때문에, 이전 포크 자료만이 접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내용이 되자 이에 대한 반발 작용으로 이 위키로 오는 사람들도 늘었다. 서로마 멸망후에 반달족이 깽판을 치고 프랑크가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쉽다. 역덕 아니면 이 설명이 더 알아듣기 힘들다는 게 함정 (...) 차라리 30년전쟁에 이놈저놈 종교를 핑계로 다 끼어들어서 아주 개판이 되는 것을 연상하자. 어때요, 참 쉽죠? 그래도 모르겠다면 그냥 혼돈이라고 쓰고 카오스라고 읽으면 된다.

1.2 4월 18일[편집]

2015년 4월 18일, 새벽 2시에 관리자가 드디어 침묵을 깨고 해킹 사태 수습에 대한 공지를 남겼다. 참고로 해당 공지 글은 댓글을 달 수 없게 설정되어 있다. 새 해가 뜬 이후인 오전 10시 기준, 리그베다 위키에 접속했을 때 "위키 데이터 복구중입니다. 멀리 있던 백업본을 끌어오는 중이라 좀 시간이 걸리니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라는 글만 뜬다.

저 시간의 차이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집어삼켰는가?

그리고 오전 11시 10분에 이르러서야 FrontPage가 복구되었다. 서버 자체가 4월 15일로 롤백되었고, 이후 32시간이 지났음에도 편집 행위는 할 수 없게 막혀 있다.

하지만 무정부 사태는 복구 따위로 그칠 수 있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것이었다. 여기에 여태 억압을 받았던 유동닉들이 고정닉들의 친목 등 고인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반기를 들었고, 초성체 금지와 같은 기존 규정을 비웃듯 훈민정음 해례본처럼 ''을 난사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고정닉들은 이웃 NTX 사이트로 집단 대피하는 등 보다 폐쇄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후 인륜을 거스르는 지역드립, 고인드립, 패드립 글들이 위키 게시판과 잡담 게시판을 가리지 않고 잠식했으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분위기가 디시인사이드에 가까워지고 있다.(...)

밤 10시 41분, 위키 게시판으로의 접속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당시 대다수의 유저들이 운영자의 소행으로 의심하였다.

1.3 4월 19일[편집]

이후 오전 12시 40분이 되자 접속 불능 상태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측을 깨고 위키 게시판이 복구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게시판의 질적인 측면에서 정화 작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누군가가 수위 높은 그림을 올린 지 얼마 안 되어 해당 게시글이 삭제된 후, 잡담 게시판이 회원 전용 작성으로 전환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로 인해, 관리자가 응답이 없을 뿐 지속적으로 위키 게시판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1.4 4월 20일[편집]

자정이 되자마자 리그베다 위키의 관리자인 청동이 '공감버전업 프로젝트' 진행과정에 대해서 재차 공지를 하였다. 리브레 위키에서는 제1차 회의가 종료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였으나, 위키 게시판은 그야말로 대폭발하여 새벽 내내 지속적인 글 리젠을 보여주었다. 전반적인 반응은 그리 좋지 못한 편. 이용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했다는 의견부터, 일 처리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의견 등 다양한 비판이 나왔다. 특히 신뢰를 상실한 탓에 믿지 못하겠다는 쪽이 주류(청동에게 - 향후 위키 운영에 대한 제언#(의 백업))로 굳어진 상태.

1.5 4월 22일[편집]

게시판이 황량해져서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서 위키 게시판의 글 리젠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그리고 괜찮아지나 싶더니, 오후에 위키 게시판으로의 접속이 막혔다.

1.6 4월 23일[편집]

리그베다 위키의 항목 수정이 가능해졌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여철회를 하면서 항목을 삭제하는 중. 엑소더스의 가속화로 보인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리브레 위키나무 위키의 편집빈도와 화력이 감소했다 또한 위키 게시판이 닫힌 상태인 만큼 아예 [위키 갤러리], [위키 갤러리 2]문서를 신설해서 대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고, 틀:영리활동을 달기도 하고, 괴상한 제목의 항목을 찍어내는 등 위키게의 혼돈이 리그베다 위키로 옮겨온 모습을 보인다. 트롤러에 맞서는 사람들은 매우 부족하고 무엇보다 트롤러들을 추방해야 할 관리자의 부재는 여전하다 보니..

틀:영리 활동을 모든 문서에 하나씩 다는 것을 도배 내지는 반달로 보고 막아보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틀:영리 활동에 지지에 나서는 사람들이 압도적이다 보니 소용없다.

그리고 결국 디시인사이드의 정전갤인 중계 갤러리가 점령당했다.

엔젤하이로 운영자 함장이 이번 사태에 자신이 직접적 책임이 있음을 밝혔다. ☆☆ 문제가 되는 조항은 2013년이 아니라 그전부터 결정되어 있던 사항이었다고.

그리고 기여 철회보다 반달의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졌으며 [[include()]]문법을 이용해서 반달가면항목의 내용을 항목의 상단에 띄우는 등의 창의적인 반달도 이루어졌다.

1.7 4월 24일[편집]

구 위키게시판이 터지기 전부터 요청되었던 위키 갤러리 요청이 중계 갤러리를 실북갤 2위까지 올려놓는 화력 과시를 통해 결실을 맺어 디시 위키 프로젝트 갤러리가 개설되었다.

1.8 4월 25일 이후[편집]

4월 25일 새벽 2시 42분, 청동이 위키를 의도적으로 터트렸다! 리그베다 위키의 서버가 터졌다! 접속시 FrontPage나 다른 중요 페이지는 접속 가능하나, CloudFlare의 아카이브 기능으로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사항은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항목 참고.

2 영향[편집]

2.1 대체 위키들의 출범과 성장[편집]

대한민국 인터넷 상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던 리그베다 위키가 하루 동안 처참하게 타격을 입으면서, 리그베다 위키의 완전 붕괴 이후를 대비해 수많은 대체 위키들이 등장하게 된다. 빠르게 대체 위키 수요를 선점했던 이곳 리브레 위키와, 리그베다 위키의 데이터를 이어간 나무위키가 2강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리그베다 위키가 정상화될 때까지, 어쩌면 그것이 가능한지도 물음표가 붙은 흐름에서 두 위키의 행보는 위키러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두 위키의 공생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있을 정도로, 뜨거운 화제임에는 분명하다.

한편 4월 17일 저녁부터 4월 18일 새벽까지,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에서 불판이 벌어지는 동안 당시 '대안위키'라 불리던 리브레 위키에 대한 논란도 제기되었다. 임시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던 리브레 위키의 한 유저가 면갤 DB 사건의 당사자였다는 점이 드러난 것. 이로 인해 일부 유저들이 본 위키로의 이주를 꺼리는 등 영향이 있었다. 이후, 처음부터 관리자 역할을 지속할 생각이 없었던 당사자가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관리자 직에서 물러났다.

이곳과 나무위키 외에도 '재지키'라는 대안 위키가 있었으나, 항목을 작성하려고 해도 에러로 불가능했으며 재지키 운영자가 트위터에서 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위키니트들의 반감을 샀다. 결국 재지키는 19일, 서비스 종료의 수순을 밟으면서 씁쓸하게 끝났다.[4] 재지키 운영자의 사과글.

2.2 유동과 고닉 간 갈등의 표면화[편집]

Gonik1.png Gonik2.png Gonik3.png Gonik4.png

며칠 간의 혼란을 거치면서 유동닉과 고정닉의 갈등이 재점화되었다. 지식이 많은 놈보다 시간이 많은 놈이 이기는 리그베다 위키의 토론 문화에 대해 강경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일부 고정닉들의 만행이 집중적으로 발굴되고 규탄되는 분위기다. 위키 게시판에서 과거 고정닉과 유동닉 간의 발암성 토론이 발굴, 재평가된 대표적 사례가 위 스샷으로, 고정닉은 자신의 주장만 펴면서 동명이인에 관한 자료를 들고 오기도 하고, 유동닉에 대해서는 자료 제시와 입증에 대한 책임을 지나치게 지우는 상황인데 관리자는 방관하는 키배였다. 저기서 '오현제가 로마 말기' 라 주장한 고정닉은 '기적의 역사학자' 라 불리게 되었고, 한편 이에 맞선 유동닉은 '리비 열사' 라 불리며 추앙받았다. 그는 멘붕한 나머지 '지금 이 논의는 미쳤습니다. 정상이 아니에요. 역사를 아는 사람이 이 논의를 본다면 다들 미쳤다고 할 겁니다.' 라는 절규를 남기기도 했다.

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한 열사의 감격

3 분석[편집]

3.1 관리자 1인 독재 구조의 참상[편집]

공화정 시대의 로마처럼 관리자와 고급 권한을 나누어 갖는 누군가가 있었거나, 더 나아가 관리자를 견제하는 직책이 시스템 상으로 마련되어 있었다면 이 사태는 적어도 이렇게까지 격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적 허점이 어째서 위험한지를 깨닫게 된 것은 그 위험을 체감한 후였다. 당시 시스템 위에서, 그의 공백은 또 다른 독재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3.2 유동닉 vs 고정닉 집단 극화 현상[편집]

유동닉과 고정닉의 갈등 양상 중 편 가르기의 경우,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집단 극화란 특정 사안에 대한 대립구도가 한 번 형성되면 그에 대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각자에게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본능적인 집단 소속감이 발동되는 현상이다. 이 현상으로 인한 각 집단의 주도권 다툼은 좀 더 과장된 의견 및 감정 표출을 일으키게 마련인데, 이것이 바로 유동닉과 고정닉 사이의 갈등이 급격하게 악화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4 외부 반응[편집]

트위터오늘의 유머, 네이버 블로그 등 다수의 많은 인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검색을 통해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여기에 추가하는 훌륭한 위키니트가 되자.

5 갤러리[편집]

6 같이 보기[편집]

7 각주

  1. 기적의 현장
  2. 이 동영상이다. 원래는 리그베다 위키의장비가 정지할 때서버가 점검중일 때 나오는 동영상이었다.근데 현 상황을 보면 적절하다
  3. UTF-8 인코딩으로 작성되었는데 UTF-8 인코딩 선언이 없어 브라우저가 EUC-KR로 인코딩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브라우저의 인코딩 설정만 바꾸면 제대로 나왔다. 하지만 안드로이드크롬처럼 인코딩 설정이 없는 브라우저라면... 망했어요
  4. 현재 재지키에는 운영자의 사과글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