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급 항공모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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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급 순양전함은 미국 최초의 순양전함으로 미국은 순양전함이란 함급이 가진 잠재력과 타국의 1차 대전기 운용등을 보며1916년 전간기 순양전함 건조를 계획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미뤄졌고 1920년 즈음해서 렉싱턴급 건조가 승인되고 건조가 진행되게 된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나고 순양전함이란 함급 자체기 사양세에 접어들자 해군 조약으로 톤수 쿼터만 차지할 뿐 실질적인 전력으로는 회의적인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 점차 항공모함이 차후 해군의 주력이 될 것으로 점쳐지던 당대 시기, 미 해군은 순양함 등을 개장해서 항공모함을 건조할 계획을 세우며 각종 설계안 등을 검토하던 중 마침 앞으로 대형화 될 함재기를 수용가능한 선체에 이미 건조가 꽤 진행되어 버리기도 아까웠던 렉싱턴급 순양전함 렉싱턴과 새러토가가 미 해군의 눈에 들어왔고 렉싱턴급 순양전함을 기반으로 한 항공모함 건조 계획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이 두 렉싱턴급 자매는 항공모함으로의 개장에 들어가게 된다.
렉싱턴급 순양전함은 미국 최초의 순양전함으로 미국은 순양전함이란 함급이 가진 잠재력과 타국의 1차 대전기 운용등을 보며1916년 전간기 순양전함 건조를 계획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미뤄졌고 1920년 즈음해서 렉싱턴급 건조가 승인되고 건조가 진행되게 된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나고 순양전함이란 함급 자체기 사양세에 접어들자 해군 조약으로 톤수 쿼터만 차지할 뿐 실질적인 전력으로는 회의적인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 점차 항공모함이 차후 해군의 주력이 될 것으로 점쳐지던 당대 시기, 미 해군은 순양함 등을 개장해서 항공모함을 건조할 계획을 세우며 각종 설계안 등을 검토하던 중 마침 앞으로 대형화 될 함재기를 수용가능한 선체에 이미 건조가 꽤 진행되어 버리기도 아까웠던 렉싱턴급 순양전함 렉싱턴과 새러토가가 미 해군의 눈에 들어왔고 렉싱턴급 순양전함을 기반으로 한 항공모함 건조 계획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이 두 렉싱턴급 자매는 항공모함으로의 개장에 들어가게 된다.
===비행갑판 개장===  
===비행갑판 개장===  
   
  ==군비==
==군비==
===항공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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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체 성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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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양전함을 개량했기에 일반적인 항모로 건조된 선체들과 달리 닫힌 구조의 격납고를 채택할수밖에 없었고 결국 [[산호해 해전]]에서 폭격을 받은 상태에서 내부 유폭이 발생했는데 이때 폭발 분산이 외부로  이루어지지 않아 선체에 큰 타격을 입었고 렉싱턴은 전투 불능상태가 되어 후에 미 해군에서 자침시킨다.
순양전함을 개량했기에 일반적인 항모로 건조된 선체들과 달리 닫힌 구조의 격납고를 채택할수밖에 없었고 결국 [[산호해 해전]]에서 폭격을 받은 상태에서 내부 유폭이 발생했는데 이때 폭발 분산이 외부로  이루어지지 않아 선체에 큰 타격을 입었고 렉싱턴은 전투 불능상태가 되어 후에 미 해군에서 자침시키며 침몰한다. 자매함인 [[CV-3]] 세러토가는 전후까지 살아남았지만 기억하는 이는 적다. 후에 [[에식스급 항공모함]]중 하나가 렉싱턴의 이름을 이어받으며
==실전==
==실전==
===태평양 전쟁===
1941년, 일본이 미국 하와이 주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전쟁을 도발했을 당시 태풍 때문에 입항이 늦어졌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세 자매처럼 진주만 공습이 진행되고 있을 때 렉싱턴과 새러토가도 항구를 떠나 있었고 그중 렉싱턴은 미드웨이 섬으로 항공기를 수송하는 임무를 맡아 한창 태평양을 항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피할수 있었다. 그러나 렉싱턴의 임무는 진주만 공습 직후 취소되었고 렉싱턴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박살난 하와이 진주만으로 귀항해 탄약을 보급하고 다시 재출격 준비를 하게 된다.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렉싱턴에게 부여된 첫 임무는 마샬 제도를 공격해 고립된 미군 수비대를 구조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였으며 결국 수비대가 항복하면서 이 임무는 취소되었다. 자매함 새러토가도 웨이크 섬 수비대를 구원하기 위해 급히 샌디에이고항 에서 태평양으로 투입되어 웨이크 섬으로 급속 항주하였으나 함락 소식을 받고는 도로 회항했다. 이후 41년에 렉싱턴급의 활약은 없었고 그렇게 해는 42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1941년, 일본이 미국 하와이 주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전쟁을 도발했을 당시 태풍 때문에 입항이 늦어졌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세 자매처럼 진주만 공습이 진행되고 있을 때 렉싱턴과 새러토가도 항구를 떠나 있었고 그중 렉싱턴은 미드웨이 섬으로 항공기를 수송하는 임무를 맡아 한창 태평양을 항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피할수 있었다. 그러나 렉싱턴의 임무는 진주만 공습 직후 취소되었고 렉싱턴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박살난 하와이 진주만으로 귀항해 탄약을 보급하고 다시 재출격 준비를 하게 된다.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렉싱턴에게 부여된 첫 임무는 마샬 제도를 공격해 고립된 미군 수비대를 구조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였으며 결국 수비대가 항복하면서 이 임무는 취소되었다. 자매함 새러토가도 웨이크 섬 수비대를 구원하기 위해 급히 샌디에이고항 에서 태평양으로 투입되어 웨이크 섬으로 급속 항주하였으나 함락 소식을 받고는 도로 회항했다. 이후 41년에 렉싱턴급의 활약은 없었고 그렇게 해는 42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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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해 해전에서 렉싱턴이 짧은 함생을 마감한 것과 달리 새러토가는 1942년, 운없게도 새해를 맞은지 12일 만에 어뢰에 맞아 다시 귀항해 수리해야 했고 새러토가는 그 해 7월에 전선으로 복귀해 치열한 과달카날 전역에 참전한다. 새러토가는 2차 솔로몬 해전에서 일본 항공모함 류조를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렸는데 엔터프라이즈와는 달리 운이 지지리 없는 건지 잠수함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건지는 몰라도 8월 31일에 l-26으로부터 어뢰공격을 받아 약 한달여 만에 또 강제퇴장 당한다. 렉싱턴이 격침당하고 남은 새러토가는 11월 22일에야 전선에 복귀했고 홀로 싸우던 엔터프라이즈와 임무를 교대한다.  
산호해 해전에서 렉싱턴이 짧은 함생을 마감한 것과 달리 새러토가는 1942년, 운없게도 새해를 맞은지 12일 만에 어뢰에 맞아 다시 귀항해 수리해야 했고 새러토가는 그 해 7월에 전선으로 복귀해 치열한 과달카날 전역에 참전한다. 새러토가는 2차 솔로몬 해전에서 일본 항공모함 류조를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렸는데 엔터프라이즈와는 달리 운이 지지리 없는 건지 잠수함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건지는 몰라도 8월 31일에 l-26으로부터 어뢰공격을 받아 약 한달여 만에 또 강제퇴장 당한다. 렉싱턴이 격침당하고 남은 새러토가는 11월 22일에야 전선에 복귀했고 홀로 싸우던 엔터프라이즈와 임무를 교대한다.  
새러토가는 애식스급이 배치되고 전황이 일방적으로 미국이 일본을 줘팸을 시전하기 시작한 1943년에는 인도양 방면으로 배속되었으며 에식스급이 마리아나 제도 공격전을 벌이던 때, 새러토가는 인도양에서 일본군 공격 작전과 지상 폭격 임무를 수행하였다. 새러토가의 마지막 작전은 이오지마 전투였고 여기서 카미카제 공격을 받아 대파되어 전선에서 이탈한 새러토가는 도크에서 종전을 맞는다.
===최후===
비록 전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엔터프라이즈와 함께 전장을 누볐던 새러토가였지만 본국의 반응은 사뭇 싸늘했다. 구형 순양전함 개조 항공모함이라 24척이나 건조된 에식스급보다 항공모함으로서 성능도 떨어졌고 선체의 노후화 문제도 있었기에 미 해군은 비싼 운용비용을 쓰면서 새러토가를 운용할 마음이 없었고
역시 엔터프라이즈와 같이 기념함으로 남기고자 하는 노력도 있었으나 결국 폐기가 결정되었다.
새러토가의 최후는 스크랩 처리된 엔터프라이즈의 마지막보다 비참했다. 새러토가는 비키니 환초에서 실시한 핵실험인 크로스로드 작전에서 원자폭탄 베이커의 수중폭발로 격침되었는데 최근 환초 바닥에서 그 선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참 여러모로 안쓰러운 함생을 살다 간 함급
==여담==
[[분류:항공모함]]
[[분류:항공모함]]

2018년 10월 4일 (목) 17:54 판

Lexington class aircraft carrier

렉싱턴급 항공모함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항공모함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한 미 해군 정규항모이다. 사실상 미 해군의 첫 정규항모라고 할수 있으며 진주만 공습 당시 살아남아 항모만 남은 미 해군태평양에서 버틸수 있게 한 군함중 하나이다. 기존에 건조되던 순양전함의 개발을 취소하면서 그 선체로 건조해서 렉싱턴급 순양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이름이 변경되고 CV-2 렉싱턴과 CV-3 새러토가가 개장되어 취역한다. 렉싱턴급 항공모함은 태평양 전쟁에서 초반기 요크타운급과 분리한 상황에서 분투하였고 결국 산호해 해전에서 렉싱턴이 격침되고 후에 새러토가도 큰 피해를 입기도 했으나 전후 수훈함으로 이름을 남겼다.

틀:군함 정보

건조

렉싱턴급 순양전함

렉싱턴급 순양전함은 미국 최초의 순양전함으로 미국은 순양전함이란 함급이 가진 잠재력과 타국의 1차 대전기 운용등을 보며1916년 전간기 순양전함 건조를 계획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미뤄졌고 1920년 즈음해서 렉싱턴급 건조가 승인되고 건조가 진행되게 된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나고 순양전함이란 함급 자체기 사양세에 접어들자 해군 조약으로 톤수 쿼터만 차지할 뿐 실질적인 전력으로는 회의적인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 점차 항공모함이 차후 해군의 주력이 될 것으로 점쳐지던 당대 시기, 미 해군은 순양함 등을 개장해서 항공모함을 건조할 계획을 세우며 각종 설계안 등을 검토하던 중 마침 앞으로 대형화 될 함재기를 수용가능한 선체에 이미 건조가 꽤 진행되어 버리기도 아까웠던 렉싱턴급 순양전함 렉싱턴과 새러토가가 미 해군의 눈에 들어왔고 렉싱턴급 순양전함을 기반으로 한 항공모함 건조 계획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이 두 렉싱턴급 자매는 항공모함으로의 개장에 들어가게 된다.

비행갑판 개장

==군비==

항공 능력

함체 성능

순양전함을 개량했기에 일반적인 항모로 건조된 선체들과 달리 닫힌 구조의 격납고를 채택할수밖에 없었고 결국 산호해 해전에서 폭격을 받은 상태에서 내부 유폭이 발생했는데 이때 폭발 분산이 외부로 이루어지지 않아 선체에 큰 타격을 입었고 렉싱턴은 전투 불능상태가 되어 후에 미 해군에서 자침시킨다.

실전

태평양 전쟁

1941년, 일본이 미국 하와이 주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전쟁을 도발했을 당시 태풍 때문에 입항이 늦어졌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세 자매처럼 진주만 공습이 진행되고 있을 때 렉싱턴과 새러토가도 항구를 떠나 있었고 그중 렉싱턴은 미드웨이 섬으로 항공기를 수송하는 임무를 맡아 한창 태평양을 항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피할수 있었다. 그러나 렉싱턴의 임무는 진주만 공습 직후 취소되었고 렉싱턴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박살난 하와이 진주만으로 귀항해 탄약을 보급하고 다시 재출격 준비를 하게 된다.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렉싱턴에게 부여된 첫 임무는 마샬 제도를 공격해 고립된 미군 수비대를 구조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였으며 결국 수비대가 항복하면서 이 임무는 취소되었다. 자매함 새러토가도 웨이크 섬 수비대를 구원하기 위해 급히 샌디에이고항 에서 태평양으로 투입되어 웨이크 섬으로 급속 항주하였으나 함락 소식을 받고는 도로 회항했다. 이후 41년에 렉싱턴급의 활약은 없었고 그렇게 해는 42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1942년 5월 8일, 산호해 해전에서 렉싱턴은 요크타운과 같이 일본 뇌격기의 습격을 받았고 렉싱턴은 14대의 뇌격기의 습격을 받아 4발의 어뢰를 맞고 대파된다. 렉싱턴은 대파당한 상태에서도 쇼카쿠에게 반격을 날렸고 쇼카쿠의 엘리베이터를 파괴하고 일시적으로 전투불능 상태로 만드는 성과를 냈으나 어뢰에 맞으면서 누출된 연료에서 나온 유증기와 탄약이 중앙관리실 인근 모터에서 발생한 스파크로 유폭하여 결국 큰 피해를 입게 되었고 다시 진주만으로 회항해서 수리를 하려 했으나 피해의 정도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자 뇌격 처분으로 자침시킨다.

산호해 해전에서 렉싱턴이 짧은 함생을 마감한 것과 달리 새러토가는 1942년, 운없게도 새해를 맞은지 12일 만에 어뢰에 맞아 다시 귀항해 수리해야 했고 새러토가는 그 해 7월에 전선으로 복귀해 치열한 과달카날 전역에 참전한다. 새러토가는 2차 솔로몬 해전에서 일본 항공모함 류조를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렸는데 엔터프라이즈와는 달리 운이 지지리 없는 건지 잠수함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건지는 몰라도 8월 31일에 l-26으로부터 어뢰공격을 받아 약 한달여 만에 또 강제퇴장 당한다. 렉싱턴이 격침당하고 남은 새러토가는 11월 22일에야 전선에 복귀했고 홀로 싸우던 엔터프라이즈와 임무를 교대한다.

새러토가는 애식스급이 배치되고 전황이 일방적으로 미국이 일본을 줘팸을 시전하기 시작한 1943년에는 인도양 방면으로 배속되었으며 에식스급이 마리아나 제도 공격전을 벌이던 때, 새러토가는 인도양에서 일본군 공격 작전과 지상 폭격 임무를 수행하였다. 새러토가의 마지막 작전은 이오지마 전투였고 여기서 카미카제 공격을 받아 대파되어 전선에서 이탈한 새러토가는 도크에서 종전을 맞는다.

최후

비록 전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엔터프라이즈와 함께 전장을 누볐던 새러토가였지만 본국의 반응은 사뭇 싸늘했다. 구형 순양전함 개조 항공모함이라 24척이나 건조된 에식스급보다 항공모함으로서 성능도 떨어졌고 선체의 노후화 문제도 있었기에 미 해군은 비싼 운용비용을 쓰면서 새러토가를 운용할 마음이 없었고 역시 엔터프라이즈와 같이 기념함으로 남기고자 하는 노력도 있었으나 결국 폐기가 결정되었다.

새러토가의 최후는 스크랩 처리된 엔터프라이즈의 마지막보다 비참했다. 새러토가는 비키니 환초에서 실시한 핵실험인 크로스로드 작전에서 원자폭탄 베이커의 수중폭발로 격침되었는데 최근 환초 바닥에서 그 선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참 여러모로 안쓰러운 함생을 살다 간 함급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