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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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인물 정보
출생 1740년 6월 2일
프랑스 파리
사망 1814년 12월 2일 (74세)
직업 소설가, 극작가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는 사디즘의 어원이 된 각종 성애 작품을 쓴 프랑스귀족이다. 통칭 사드 후작.

생애

1740년, 프로방스의 귀족 집안 일원인 아버지와 콩데 가의 인척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프로방스 식 이름인 루이 알동즈 도나시앵이었지만 성당 교적이 이름이 실리는 과정에서 루이 알퐁스 도나시앵으로 이름이 바뀐다.

어린 시절을 프로방스의 친척들과 보내다 1750년 파리의 루이 드 그랑 중등학교에 입학한다. 1754년 근위 경기병 예비 학교에 입학 1755년 왕립 보병 연대에 무보직 소위로 임관 1757년 프로방스 백작의 기병 연대의 기수가 된다. 7년 전쟁이 발발해 프로이센으로 가게 된다. 1759년 부르고뉴 기병 연대의 대위로 복무한다. 이때 매우 방탕한 장교였지만 용맹한 군인이었다는 평을 듣는다.

전쟁이 끝난 후 기병 대위로 전역해 후작에 봉해지지만 가문의 재정 상태는 극도로 열악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가문 사람들은 사드와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시키려 했는데, 열애중이던 여인이 있었음에도 결국 1763년 5월 17일 당시 조세법원장의 딸인 르네 펠라지 드 몽트뢰이와 결혼한다.

작품 목록

  • 쥐스틴 혹은 미덕의 불행
  • 소돔의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 규방철학

소돔의 120일 머리글

머리글. 루이 14세는 비할 데 없는 전쟁광으로, 70년에 걸친 재위 기간 동안 열강을 상대로 수없이 싸움을 벌이느라 국고도 국민의 주머니도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와 같은 재앙을 기다리는 거머리 같은 인간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가운데 으뜸인 자가 징세청부인들인데, 그들은 국가의 어려움을 해결해나갈 의무가 있음에도 그 혼란을 틈타 거둬들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거둬들일 생각만 하고 있었다. 즉 계속되는 전쟁 덕에 어이없게 그런 자들만 사리사욕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루이 14세 시대 끝무렵에는, 프랑스 역사를 통틀어 숨은 부자들이 번영을 이루어 은밀하게 터무니없는 사치를 즐기면서 마음껏 방탕한 세월을 보냈던 가장 끔찍한 시대이기도 했다. 그 뒤 동생인 오를레앙공 필립이 그 유명한 징세청부인 사문재판소를 설치하여 악덕이 극에 달한 징세청부인들이 부정 소득을 토해내게 하려 했는데, 4명의 도락자가 이제부터 내가 이야기하려는, 참으로 기괴한 음락의 향연을 계획하는 것도 바로 그 무렵의 일이었다. 징세 업무를 맡은 건 평민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으로, 상류 계급 사람들도 징세를 통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그 주범이었다. 무엇보다 블랑지스 공작과 동생인 주교가 징세청부에 관여하여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이 두 명사가 앞으로 내가 이야기할 방탕한 계획을 생각해낸 장본인으로, 그들은 일찍부터 도락과 소송사건으로 유명한 징세청부인인 뒤르세, 법원장인 퀴르발과 절친한 사이여서 곧바로 그 친구들에게 계획을 털어놓음으로써, 결국 이 네 사람이 터무니없는 향연의 주역을 맡게 되었다. 돈이 많고 취미가 같다는 인연으로 가까워진 이 네 도락자들은 6년 전부터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서로 인척관계를 맺고 싶어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