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철 (작곡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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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목록 ==
== 곡목록 ==


* [[공장에서 권력까지]]
* 잘린 손가락
* 단순조립공
* [[단결투쟁가]]
* 포장마차


*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
* [[들불의 노래]]


* [[진짜 노동자]]






* [[장애해방가]]
* [[이동권연대투쟁가]]


=== 1980년대 ===


=== 1980년대<ref>1988년 발표된 몇몇 곡은 1987년이전에 작곡된 것도 있다고 김호철 자신이 인터뷰를 통해 밝혔으나 정확히 언제 작곡되었는지는 불명확하기 때문에 발표기준으로 적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jinbo_media_23&nid=44493]</ref> ===
* [[단결투쟁가]] (1988)
* [[단순조립공]] (1988)
* [[잘린 손가락]] (1988)
* [[전노협 진군가]] (1989)
* [[전노협 진군가]] (1989)
* [[진짜 노동자]] (1989)
* [[파업가]] (1988)
* [[파업가]] (1988)
* [[포장마차 (민중가요)]] (1988)
* [[현대중공업노동조합가]] (1989)
* [[현대중공업노동조합가]] (1989)
=== 1990년대 ===
=== 1990년대 ===
* [[각성의 노래]] (1992)
* [[각성의 노래]] (1992)
* [[깃발가]] (1991)
* [[깃발가]] (1991)
* [[골리앗의 그림자]] (1990)
* [[골리앗의 그림자]] (1990)
* [[들불의 노래]] (1991)
* [[민중권력쟁취가]] (1990)
* [[민중권력쟁취가]] (1990)
* [[민중의 노래]] (1995)
* [[민중의 노래]] (1995)
* [[장애해방가]] (1994)
=== 2000년대 ===
=== 2000년대 ===
* [[공장에서 권력까지]] (2001)
* [[이동권연대투쟁가]] (2002)


=== 2010년대 ===
=== 2010년대 ===

2016년 3월 15일 (화) 21:41 판

개요

노동해방의 나팔수

김호철은 1980년대를 풍미한 민중가요 작곡/작사가로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본명은 김수호. 한국 민중/노동가요의 대부로 "노동해방의 나팔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트럼펫연주를 하기도 한다. 민중가요 가수인 박준과 인연이 깊은편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노동현장에서 불리는 수많은 곡들을 작곡한데 비해 실제로 들어오는 수입은 없는데, 문예운동이 일종의 "운동"으로 인식되기도 했고, 저작권 인식도 희박했을 무렵에 더해 실제로 판매하더라도 곡당 5만원을 넘기기 어려워 그냥 공유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라고 한다. 앨범을 내려고해도 한 앨범에 2천만원 정도가 드는데, 이걸 앨범당 1만원에 팔아도 다 팔리려면 3~4년은 족히 걸린다고(...)[1] 그외에 1980년대의 왕성한 활동에 빗대 자판기라는 별명도 붙어있다. 김호철의 노래는 멜로디가 강렬하고 군가풍의 곡이 많은데, 2000년대 들어와서는 학교에서 세상으로와 같이 부드러운 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또 노동해방, 투쟁을 강조하는 곡들이 많은 편이다.

생애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한 적은 없으며 중학교 1학년 때 중학교 음악선생에게 음감이 좋다는 칭찬을 들은 후 음악과 가까워 졌다고 한다. 김호철은 한국체육대 태권도학과에 입학 했으며 그가 2학년이 된 해에 부마항쟁이 일어났고 부산과 마산출신 체고생들을 통해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호철은 "부산과 마산 학생들은 다들 고향으로 돌아가서 정권과 한판붙자"라는 대자보를 붙였다가 수배되었고, 10·26 사건이후 복학해 곧 학생회에 출마해 학생자치회장에 당선되었다. 그렇게 학생운동을 시작한 김호철은 1980년대 계엄해제 운동에 참여했고, 서울역 회군에 반대하였으나 관철시키지 못했고, 계엄군 합수부에서 고문당한 후 투옥되었다.

그리고 당시 학생운동한 학생을 군대에 보내는 심히 막장스러운 정책에 의해 군에 끌려갔고 군에서 군악대로 복무하였다. 제대후 신원조회에 걸려 복학이 거절당한 후(...)에는 밤무대 가수를 전전하였다.

1985년 구로공단에서 일하기 시작한 김호철은 구로공단에서 기타반을 조직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여기서 <잘린 손가락>, <단결투쟁가>같은 곡이 작곡되었다. 그러나 그는 1987년 해고되었고 복직투쟁을 하다 민주정의당 당사점거 사건 중 구속되기도 하였다. 1988년 노동절 전야제에서는 당시 큰 파급을 몰고온 파업가를 발표하였다.

곡목록

1980년대[2]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각주

  1. 울산저널
  2. 1988년 발표된 몇몇 곡은 1987년이전에 작곡된 것도 있다고 김호철 자신이 인터뷰를 통해 밝혔으나 정확히 언제 작곡되었는지는 불명확하기 때문에 발표기준으로 적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