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산성

Busanlibro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4월 27일 (월) 02:4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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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문화재

개요

백제가 수도를 웅진(현 공주시)으로 삼았을 때 백제를 방어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산성이다. 금강 바로 옆의 야산과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본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 돌로 쌓은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이 성의 명칭은 백제 당시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또는 공산성,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웠다.

특성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고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었는데, 1993년에 동문터에는 영동루 서문터에는 금서루를 복원하였다.

암문, 치성, 고대, 장대, 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쌍수정, 영은사, 연지, 임류각지, 그리고 만하루지 등이 있다. 또한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하여 백제 기와, 토기 등의 유물들과 고려,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꽤 오랜 세월 사용된 성인데다 국가의 수도 또는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계속해서 자리한 곳이다 보니 성의 모습도 해당 기간만큼 뒤섞여 있는 측면이 있으며, 유물도 꽤 다양하게 나오는 편이다.

이야깃거리

  • 백제의 사비성 함락 당시 의자왕이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으며, 이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운동의 중심 거점이기도 하였었다.
  • 백제 멸망 이후 세월이 한참 지난 뒤 통일신라시대인 822년에는 김헌창의 난에서 김헌창의 거점으로 사용되었었다.
  • 조선시대 이괄의 난 당시 인조가 이곳으로 피난 왔었다.
  • 2011년 10월 공주대박물관이 공산성 내부 저수조를 발굴하다 가죽제 찰갑을 발굴했다. 이 갑옷에는 "정관 19년"(貞觀十九年)이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남아있으며 이외에 식별이 가능한 글자 20여자와 갑옷 뒷면에 제작자가 한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가 발견되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