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194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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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朴智元, {{날짜/출력|1942-6-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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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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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과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2004년]]에 SK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1억원 가량의 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해 [[11월]] 최후진술에선 "입으로는 변화를 부르짖으며 관행에 젖어 잘못한 것은 처벌받겠다."고 진술하였다. 그는 부패사건 말고도 대북 송금 문제로 처벌을 받기도 했었다. 의정활동으로는 14대 [[국회의원을]] 거쳐 [[2008년]] 전남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당화합을 위하여 민주당으로 복당을 결심하고, 민주당 복당 1년 만에 정책위의장이 됐다. {{날짜/출력|2010-5-7}} 당 2인자인 원내대표에 당선되며 입지를 빠르게 굳혔다. {{날짜/출력|2012-1-15}}에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에 선출되었고, {{날짜/출력|2014-12-28}}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 경선에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문재인 의원에게 패배하였다.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과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2004년]]에 SK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1억원 가량의 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해 [[11월]] 최후진술에선 "입으로는 변화를 부르짖으며 관행에 젖어 잘못한 것은 처벌받겠다."고 진술하였다. 그는 부패사건 말고도 대북 송금 문제로 처벌을 받기도 했었다. 의정활동으로는 14대 [[국회의원을]] 거쳐 [[2008년]] 전남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당화합을 위하여 민주당으로 복당을 결심하고, 민주당 복당 1년 만에 정책위의장이 됐다. {{날짜/출력|2010-5-7}} 당 2인자인 원내대표에 당선되며 입지를 빠르게 굳혔다. {{날짜/출력|2012-1-15}}에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에 선출되었고, {{날짜/출력|2014-12-28}}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 경선에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문재인 의원에게 패배하였다. 2015년 [[국민의당]] 창당에 동참한 이후 2016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 2016년 7월 현재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 특이사항 ==
* [[짝눈]]이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퍼온문서|박지원 (1942년)}}
{{퍼온문서|박지원 (1942년)}}

2016년 7월 24일 (일) 15:47 판

정치인 박지원

박지원(朴智元, 틀:날짜/출력 ~ )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과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2004년에 SK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1억원 가량의 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해 11월 최후진술에선 "입으로는 변화를 부르짖으며 관행에 젖어 잘못한 것은 처벌받겠다."고 진술하였다. 그는 부패사건 말고도 대북 송금 문제로 처벌을 받기도 했었다. 의정활동으로는 14대 국회의원을 거쳐 2008년 전남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당화합을 위하여 민주당으로 복당을 결심하고, 민주당 복당 1년 만에 정책위의장이 됐다. 틀:날짜/출력 당 2인자인 원내대표에 당선되며 입지를 빠르게 굳혔다. 틀:날짜/출력에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에 선출되었고, 틀:날짜/출력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 경선에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문재인 의원에게 패배하였다. 2015년 국민의당 창당에 동참한 이후 2016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 2016년 7월 현재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특이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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