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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8일 (화) 20:11 판

틀:학술


ICRC의 국제인도법 홍보영상

개요

국제인도법(國際人道法. IHL,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은 무력충돌 상황에서 무력사용수단을 제한하거나 무력충돌의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련의 국제법들을 말한다. 국제인권법과는 다르다! 국제인권법과는! 일반 국제법상의 강행규범(jus cogens)으로 인정받고 있다.

군대에서는 전쟁법이나 무력충돌법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제네바협약이 국제인도법에 포함된다.

역사

기원

인류역사에서 전쟁은 빼놓을 수 없는 단골사건 이었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전쟁에서 패배한 군인들은 노예가 되거나 처형, 심지어는 식인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는 인류역사가 진행되면서 점점 완화되었지만 19세기 초가 되도록 부상당하거나 포로가 된 적군에 대해 최소한의 인권을 지켜주고자 하는 노력은 미미했다. 그리고 1859년. 사업차 나폴레옹 3세를 알현하기 위해 롬바르디아의 솔페리노를 지나가던 앙리 뒤낭솔페리노 전투로 인해 부상당한 병사들이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부상자들이 어떻게 될지 몹시 걱정됐다. (······) 나는 한낱 여행객에 불과했지만, 인간애에 대한 질문들로 머릿속이 복잡한 여행객 이었다.
-앙리 뒤낭의 회고록 중.

그가 도착한 카스틸리오네에는 프랑스가 세운 유일한 야전병원이 위치해 있었는데, 그는 도착하자마자 구호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곧 카스틸리오네 마을의 부녀자들의 도움으로 구호대를 조직하고 부상자들에게 물과 식량을 나눠주고 상처에 붕대를 감아주는 일을 시작했다. 부상자의 국적은 상관 없었으며 이를 알리기 위해 "Tutti fratelli (모든 이들은 형제다)"라고 외쳤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전장에 버려진 부상병들을 구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양측에 부상병들의 치료를 위해 억류된 의무병들의 석방을 요구했고, 유럽의 박애주의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그러나 도움은 일시적 이었고 항구적인 구호활동에 대한 구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에 앙리 뒤낭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솔페리노의 회상(Un souvenir de Solferino)>을 집필하기 시작해 1862년 출판했다. 이 책에서 앙리 뒤낭은 구호를 위해 자원봉사자들로 이뤄진 평시 단체를 만들고 이 구호요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협약에 근거해 구속력을 가진 신성불가침의 국제원칙'을 국가들이 채택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 같은 주장은 여러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나 정작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선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지어 나이팅게일은 서기를 시켜 반대이유를 열거했다.

제네바공익협회

국제인도법의 분류

1977년 추가의정서 채택에 의해 현재는 무의미해졌지만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국제인도법 배울 때면 한 번은 나오는 분류이다.

제네바법

제네바법 혹은 제네바협약(Geneva Conventions)으로 불리는 국제법체계로 교전의지를 상실한 군인(부상자, 포로등)과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제네바 협약을 보자.

헤이그법

헤이그법(The Law of Haegue)은 군사작전을 수행함에 있어서 교전자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공격수단을 제한하고 규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국제인도법에 속하는 항목

같이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