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붉은악마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3월 23일 (수) 16:10 판 (새 문서: 분류:사적 파일:종묘.jpg {{문화재 |종목 = 사적 제125호 |명칭 = 종묘 |한자 = 宗廟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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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jpg 틀:문화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1-2번지에 위치한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실의 사당. 1995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흔히들 종묘 정전을 세계 최대의 단일 목조건축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종묘는 동시대의 단일 목조건축물 중 최대이다.[1] 세계 최대는 일본의 절인 도다이지이다.[2]

유교 교리에 따라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니만큼 건축 양식도 유교 양식을 충실하게 따라서 이 엄청난 규모에도 화려함 없이 검소하게 지어서 자연스러운 느낌과 경건한 마음이 들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의 종묘 관리도 굉장히 경건한 마음으로 행하고 있으며 따라서 들어가보면 신비로운 느낌마저 든다. 어느 정도냐 하면 평소에 침을 찍찍 뱉던 사람도 침을 그냥 삼키게 되고 발걸음을 조심하게 될 정도.

종묘의 신성한 분위기를 진짜로 제대로 느끼고 싶으면 안개가 껴있거나 안개비가 내리는 새벽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새벽에 안개가 낀 상태에서 종묘로 들어가는 관문의 매표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새벽부터 와서 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일본인들이 맞이한다.

참고로 이상하게 일본인들이 유독 한국인보다 종묘에 많이 오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 관광객들이 일본의 지역별 신사를 방문하고 가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 최대 규모의 신사[3]라고 할 수 있는 종묘에 많이 모이는 게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신로(神路)와 어로(御路)

신로.jpg
표를 구입하고 관문을 들어가면 돌아가신 선왕의 혼령이 걷는 길인 신로(神路)와 왕이 걷는 길인 어로(御路)가 있는데 원래 경복궁에서는 어로가 가장 높게 위치하지만 여기 종묘에서는 길이 2단 계단처럼 되어서 가장 높은 길이 신로이고 2번째로 높은 길이 어로이다. 이 신로는 왕도 함부로 밟아서는 안되었으며어느 미친 왕이 선왕에게 노여움사서 천벌받으려고 신로를 밟을까 이 암묵의 룰은 현재에도 이어져 신로에는 위 사진과 같이 신로를 밟지 말라고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로도 표기된 표지판이 놓여져 있고 현장학습 나온 철없는 꼬맹이들이 아무 생각없이 신로 위로 걸어다니면 교사가 못하게 막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신로 옆의 어로를 걸으면서 안개가 낀 종묘로 가는 길로 쭉 뻗은 신로를 보면 신비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여담이지만 신로, 어로를 신도(神道), 어도(御道)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틀린 표기라고 한다. 도(道)는 추상적인 길을 뜻하고 로(路)는 구체적인 개념의 길을 말하기 때문.[4]

정전

종묘1.jpg 종묘2.jpg
종묘를 옆에서 본 모습.

비록 상술했듯이 종묘 정전은 세계 최대의 단일 목조건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시대 세계 최대의 단일 목조건물인 것은 변함이 없다. 맨 위의 사진만 보아도 이미 충분히 거대하지만 실제로 가 보면 그냥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웅장하다. 실제로 가 보면 그 엄청난 규모에 압도당하는데 길이가 토탈 101m에 육박하기 때문에 천벌받을 각오하고 저 복도에서 100m 달리기를 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

너무 거대한지라 어지간한 전문가용 렌즈로도 정전의 전체 모습 촬영이 불가능하다. 건물 길이가 너무 긴 것도 있지만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거리가 내삼문까지로 한정되어 있어서 그런 것. 위의 사진처럼 건물 전체가 나와 있는 사진용자은 따로 찍어서 이어 붙인 것이다.

저 정전 앞에 펼쳐진 단도 진짜 넓은데 자세히 보면 중앙이 살짝 볼록하게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비가 내렸을 때 빨리 배출하기 위해서인데 맨 위의 사진을 보면 오른쪽 부분에 배수구(?) 비슷한 게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원래는 11칸의 건물이었다. 그런데 영조 때 왕이 계속 죽으면서 신주가 계속 늘어서(...) 종묘가 꽉 차게 되는 바람에 4칸을 증축면서 15칸으로 늘게 되었고 이후 헌종 때 또 꽉 차서 또 4칸을 증축하면서 19칸이라는 미친 건물이 되었다.[5] 이렇게 건물을 증축하는 방식은 우리나라 건축 양식 중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방식이다. 종묘의 정전의 기둥들을 잘 보면 기둥마다 오래된 정도가 다른데 서쪽이 새로 지은 건물들이다.

영녕전

추가바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