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랜 캠벨

문장
클랜 캠벨의 본거지던 現 아가일 뷰트

클랜 캠벨(Clan Campbell)은 스코틀랜드의 유명 가문(씨족)이다. 과거 스코틀랜드의 유력 가문으로, 아가일(현 아가일 뷰트 언저리)을 본거지로 활동했다. 표어는 『Ne Obliviscaris』. 라틴어로 "잊지 말라,"라는 뜻이다. 가문의 문장인 멧돼지 머리통 주변에도 적혀 있는 문구다.

기원[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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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편집 | 원본 편집]

1314년 스코틀랜드 독립을 결정지은 배넉번 전투로버트 브루스가 이끄는 스코틀랜드군으로 참전했다.

1642년 발발한 영국 내전 당시, 당시 서약파(Covenanter)라고 불리던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지지자들은 찰스 1세에 맞서 의회파를 지원하기로 한다. 클랜 캠벨의 가주였던 아가일 후작 아치볼드 캠벨 또한 서약파의 주요 인물이었다. 클랜 캠벨의 본거지였던 인버러레이 성 일대가 왕당파의 침공을 받아 쑥대밭이 되었지만, 의회파는 왕당파를 깨부수고 제1차 영국 내전에서 승리한다.

하지만 찰스 1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남아있던 왕당파들을 모으고 스코틀랜드의 서약파를 회유한 다음 의회파에 대한 저항을 또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제2차 영국 내전이라고 불릴 이 시도는 의회파에 의해 진압되었고, 결국 찰스 1세는 참수형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찰스 1세가 사망하자 아가일 후작을 비롯한 스코틀랜드인들은 찰스 1세의 아들인 찰스 2세를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임명, 대관식을 벌인 다음 망명시킨다. 이때 찰스 2세에게 왕관을 씌워준 사람이 아가일 후작이었다.

1661년, 영국을 지배하던 광신도 올리버 크롬웰이 사망하고 공화정이 무너지며 찰스 2세가 영국의 왕이 된다. 아가일 후작은 찰스 2세가 보상을 해주길 바랬지만, 돌아온 것은 참수형이었다.

1685년, 제9대 아가일 백작 아치볼드 캠벨이 국왕 제임스 2세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다. 이 반란은 같은 시기 몬머스 반란과 함께 벌어진 것이었지만 결국 진압 되었고, 제9대 아가일 백작 또한 처형된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제임스 2세가 쫓겨나고 윌리엄 3세메리 2세가 영국을 통치하게 된다. 당연히 모두가 명예혁명을 지지하는 건 아니었고, 자코바이트라고 불리는 명예혁명 반대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제10대 아가일 백작 아치볼드 캠벨은 윌리엄 3세메리 2세를 지지하며 자코바이트들을 때려잡기 시작한다. 글렌코에서 클랜 맥도널드 소속 사람들 38명을 죽인 글렌코 학살도 이 때 이야기.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인버러레이 성 홈페이지에서는 캠벨 가문의 역사를 다룬 책을 팔고 있다. 그런데 그 책이 세권으로 이루어진데다가 한 권 당 60파운드(대략 85,000원).
  • 관련 음악으로 《The Campbells are Coming》이 있다.

참고문헌[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