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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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奎燮. 창씨명은 우미모토 케이쇼(海本奎燮).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28년 5월 13일 경상남도 진주군 내동면 귀곡동(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귀곡동)에서 출생했다. 1943년경 경남 진주군 소재 진주공립중학교에 재학하던 중 하익봉(河益鳳), 김상훈(金相勳), 강필진(姜必鎭) 등과 광명회(光明會)를 조직하였다. 광명회는 독서써클로 한국 역사를 공부, 토론하고 일제에 저항할 수 있는 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한 단체였다. 이들은 평소 절친한 친구 사이로, 특히 박노근의 아버지와 하익봉의 삼촌이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졸업 후에는 모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군에 가담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던 1944년 9월 진주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진해비행장(鎭海飛行場) 건설공사 현장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이들은 천막으로 지은 막사에서 공동숙식을 하며 온갖 중노동에 시달렸다. 이때에도 정규섭을 포함한 광명회 회원들은 학생들에게 우리말 사용을 생활화할 것과 독립군의 활약상을 전파하는 등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활동하다가 9월 23일 동지들과 함께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정규섭은 진해헌병대 영내에서 약 40일 동안 구금된 채 학교 내외에 퍼져 있는 항일운동과 조선독립을 위한 써클 활동의 사실 유무 등의 자백을 강요받으며 갖은 체벌과 고문을 당하였다. 1944년 11월 7명의 동지들과 함께 군용트럭으로 부산지검에 송치되어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부산형무소에 투옥되어 9개월간 옥고를 치르다 8.15 광복 직전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광복 후 30여 년간 교직에 몸담았고, 진주향교 전교를 역임하면서 인재 육성에 힘썼다. 201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은 그는 "이제야 당시 학우들의 항일운동이 정부 공인을 받게 돼 무척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세상을 떠난 동지들이 많아 아쉽기도 하다"라고 소회를 밝혔다.[1] 2012년 8월 14일 이창희 진주시장의 위문을 받았다.[2]

2016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에서 별세했다. 2016년 11월 11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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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