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必鎭.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27년 6월 6일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봉곡동에서 출생했다. 창씨명은 오오야마 요시히로(大山芳弘)이다. 그는 진주공립중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43년 친구 하익봉(河益鳳), 김상훈(金相勳), 박노근(朴魯瑾) 등 3명과 함께 광명회(光明會)를 조직했다.[1]네 사람은 조선인으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을 잃지 않을 목적으로 광명회를 조직한 뒤 동지를 포섭하여 11명까지 늘렸다. 기회가 될 때마다 3~4명씩 나눠 하숙집에 모여 조선의 역사에 대해 공부 및 토론했는데, 특히 김좌진과 김일성[2]등의 만주에서의 군사 활동을 전해들으며 중국에 건너가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할 것을 맹세했다고 한다.[3]
그러던 1944년 9월 일제의 강압으로 동창생들과 함께 진해비행장 건설공사에 징집되었다. 강필진을 비롯한 광명회 회원들은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천막에서 공동 숙식을 하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독립군의 활약상을 전했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면서 헌병대에 체포되었고, 진해평무소에 끌려가 수십일간 심문받으며 가혹한 고문에 시달렸다. 광명회 멤버 중 하익봉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지만 병원에 입원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이후 1944년 11월 부산지검에 송치되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부산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1945년 6월 병보석 석방되었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 2006년 7월 1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강필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