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상

부산 출신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내야수이며 주 포지션은 2루수다. 그러나 롯데 이적 후 1군 출장이 없으며(...) 그의 1군 출장 기록은 거의 다 한화 이글스 시절의 일이다.

프로 경력[편집 | 원본 편집]

2002~2005년 동국대 야구부에서 활동했으나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하여 2006년에 동국대 시절 은사인 한대화 당시 삼성 라이온즈 수석 코치의 추천으로 입단했다. 입단 후 성적을 못냈으면 인맥빨이라고 까였겠지만 입단 직후인 2007시즌에 2군 남부리그 타격왕을 차지할 정도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삼성의 선수층은 두꺼워서 2군 타격왕정도로는 1군에 명함을 내밀 수가 없었다. 07시즌 잠깐 1군에 콜업되어 4게임동안 7타수 1안타(0.143)에 삼진 3개와 실책 1개를 기록했으니 1군에서 써먹기도 애매했다.

그러던 2008시즌, 삼성이 백업 포수 부재로 신음하는 것을 본 김인식 당시 한화 감독이 삼성에 트레이드를 제의, 심광호와의 맞트레이드로 한화로 이적했다. 이후 오선진을 밀어내고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차면서 시즌의 절반 이상을 소화했다. 수비나 타격 양쪽 모두 주전급은 아니었지만 1군 백업으로는 충분한 성적이었다.

  • 2009 : 79경기 199타수 50안타(0.251) 6홈런 28타점 6실책

그러나 은사인 한대화 감독이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2010시즌에는 허리통증으로 14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고, 결국 시즌아웃되어 허리수술을 받았다. 다만, 이때의 허리수술로 최종적으로 병역면제 혜택을 받아 군필 유망주가 거의 없는 빈약한 한화 뎁스에 보탬이 되었다.

이후 2011~2012시즌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는데, 2011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내야수로 기용, 시즌 중반부터 3루수의 중책을 맡아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다만 3루수 치고는 수비범위가 좁아서 파올라인에 붙어 있다가 3유간으로 빠지는 공 상당수를 놓치는 문제가 있긴 했는데, 이는 2루수만 보던 그의 내야 경험과 함께 주전 유격수 이대수 역시 수비범위가 좁다보니 생기는 문제였다. 이는 차차 훈련과 경험을 쌓으며 해결할 문제였는데 2012시즌 이후 오선진이 다시 부활하고 본인은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부진해지면서 다시 백업으로 밀려난채 시즌을 끝마쳤다.

  • 2011 : 120경기 320타수 71안타(0.222) 3홈런 38타점 9실책
  • 2012 : 86경기 182타수 43안타(0.236) 3홈런 19타점 4실책

2012시즌 하반기부터 찾아온 부진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2013시즌에는 겨우 14경기에 출장, 1안타만을 기록한 채 2군으로 사라지며 사실상 전력 외 판정을 받았다. 2군에서도 옛날 남부리그 타격왕의 영예는 어디로 가고 2할 초반대의 저조한 타율을 보여주었으니 아무리 뎁스가 빈약한 한화라도 1군으로 콜업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믿어주던 한대화 감독이 팀에서 입지를 잃다 경질된 것이 심리적으로 부담이 된 듯.

이후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나 했지만 2013년 말 2차 드래프트에서 난데 없이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아 이적했다. 그러나 롯데에서도 2015년 5월 26일 현재까지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양준혁이 주최하는 희망더하기 자선 야구대회에는 매년 꼬박꼬박 참가하며 온갖 개그소스를 양산하고 있다. 박한이의 타격 버퍼링, 마해영, 장성호, 양준혁의 타격폼, 배영수, 서재응, 윤성환의 투구폼까지.(...) 이런걸 보면 성격은 참 시원하고 유쾌한 듯.
  • 한화 이적 후인 2008년 여름 2008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한 올림픽 브레이크 기간동안 팀 동료 연경흠과 함께 여자친구를 대동하고 부산 해운대로 놀러갔다가 KBS 9시 뉴스로 전국방송을 탔다.(...) 전설적인 대전시 용전동 이영상씨 사건. 참고로 용전동엔 한화 이글스 독신자 숙소가 있다. 본인은 끽해야 부산 지역방송에나 나가겠지 하는 심정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전국방송에 떠서 당황했다고.(...)같이 놀러간 연경흠은 묻혔다. 이후 이영상은 대표적인 별명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여상과 연경흠은 이때 동행한 여자친구와 결혼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