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병영

嚴棅永.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엄진영의 친동생이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2년 6월 8일 경상도 동래부 칠산동(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에서 의관을 맡고 있던 엄석찬의 5남매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이명은 '엄정우(嚴正友)'이다. 1919년 당시 친형 엄진영과 함께 동래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던 그는 1919년 3월 초 기미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형이 학생들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시위 준비에 착수하자 이에 가담하였다.

1919년 3월 13일 동래읍 장날에 형 엄진영이 동래군청 앞 망미루에 올라 대한독립만세 선창하자, 40여 명의 학생과 장꾼들이 호응하여 거리를 행진했다. 이때 엄병영은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그러나 출동한 기마경찰과 일본군에 의해 그를 비롯한 22명의 학생들이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그는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동래고등보통학교 선배인 최현배의 권유로 1927년 종성부용초성(終聲復用初聲)을 이용한 속기 방식을 개발하고 한글 보급에 투신했다. 8.15 광복 후 형과 함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 활동했으며, 뒤이어 한국독립당에 입당해 좌우 합작 및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1974년 12월 15일 부산에서 사망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엄병영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