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스베친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 스베친(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Андре́евич Све́чин, 1878년 8월 17일 ~ 1938년 7월 28일)은 제정 러시아, 소련의 군사이론가이자 군인이다. 《전략》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소련군의 작전술 개념을 고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78년 러시아 제국 헤르손현 오데사군 오데사에서 러시아군 장교인 안드레이 스베친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인 미하일 스베친도 기병장교로 러일전쟁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 알렉산드르 스베친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유년군사학교를 수료한 후 미하일 포병학교(Михайловское артиллерийское училище)를 졸업하였다. 이후 니콜라이 참모대학(Николаевская академия Генерального штаба)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러일전쟁에 참전해 22 동시베리아연대 중대장을 역임하였다. 러일전쟁 이후에도 16군단 참모 및 제3만주군 참모임무를 수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베친은 제5핀란드소총수연대 연대장, 제7보병사단 참모장, 독립 흑해 해안사단장, 제5군 참모장을 역임했다. 전쟁이 끝날 때 즈음에 스베친은 소장까지 올라가 있었다.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스베친은 제정러시아 장교진을 영입하던 볼셰비키에 의해 적군에 가담하였다. 처음에는 스몰렌스크 군관구 정치위원이 되었으나 1918년 전러시아 참모본부의 참모장이 되었다. 동년 11월에는 노동자 농민 붉은군대 군사대학의 교관직에 임명되었다. 군사대학에 재직하며 1923년 《전략》을 집필하여 발표하였다. 1931년 2월 구체제 장교진 숙청당시 체포되어 유형 5년에 처해졌으나 1932년 2월 복권되어 붉은군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1937년 2차 숙청때 다시 체포되어 소비에트 최고법원 군사법정에서 반혁명 및 테러 음모로 사형이 언도되었다. 1938년 7월 28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모스크바주 크라스노파호르구 콤무나르카 사격연습장(Расстрельный полигон «Коммунарка»)에서 처형당했으나 스탈린 사후인 1956년 복권되었다.

이론[편집 | 원본 편집]

저작[편집 | 원본 편집]

  • 전략(Стратегия)

각주

  1. 그러나 미하일은 적백내전에서 백군으로 복무했고 후일 프랑스로 망명해 1969년 프랑스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