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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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信元.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차경신의 모친이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72년생이며 평안도 선천도호부(현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시골 선비 박취호의 딸로 태어났다. 그후 3대 독자인 차기원과 혼인한 뒤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여섯을 낳아 연안 차씨 문중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그녀는 이러한 정신적 어려움을 겪던 중 기독교가 주장하는 남녀평등관에 매력을 느껴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반면 남편 차기원은 딸만 여섯을 낳은 부인을 저버리고 황해도로 떠나버렸고, 차경신은 홀어머니 밑에서 길려졌다.

그녀는 이러한 사회적 냉대와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개신교 신앙에 전념했다. 1905년, 그녀는 정용경과 함께 가물남에 교회를 세우고 선천북교회를 다니면서 양전백 목사로부터 신앙 공부를 했다. 이후 딸 차경신과 함께 독립운동에 뛰어든 그녀는 선천에서 독립단의 통신연락을 담당하면서, 독립자금을 임시정부에 보내는 일, 평양감옥에서 탈출한 독립지사를 만주로 도피시키는 일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4월 중순엔 흥경에서 동지 27명과 함께 민족교육과 여성권익향상을 목적으로 여자교육회(女子敎育會)를 조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그녀는 점점 고달픈 처지로 내몰렸다. 차경신의 여동생 차경수의 회고록 <호박꽃 나라사랑>은 박신원이 당해야 했던 수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언니와 어머니가 독립운동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왜경은 어머니의 뒤를 조사하여 체포하려 하였다. 어머니는 친척집 곳간 독 뒤에 숨어서 햇빛도 못보고 나타나지 않았으며 이웃이라도 알까봐 몰래 음식을 갖다 드렸다. (중략) 집주인이 외출하자 왜경들은 우루루 고씨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손에 잡히는 가구를 마당으로 가지고 나와 불을 질렀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불에 태워 죽이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어머니를 붙잡아 불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중략) 일제 강점기 애국지사들을 감옥에 가두고 악형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았지만 어머니처럼 때려서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일은 들어 보도 못한 극형이었다.

이렇듯 심한 수난을 겪던 그녀는 만주 관전현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조용히 살다 1946년 5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박신원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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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