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유나이티드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소속 축구단. 한국인들에게는 리즈시절이라는 밈으로 잘 알려져 있는 팀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초창기[편집 | 원본 편집]

1919년 창단, 이듬해 풋볼리그 정회원으로 가입한다. 이 후 1부리그와 2부리그를 오가는 존재감 없는 요요클럽으로 수십년을 보낸다.

돈 레비와 함께 한 첫번째 전성기[편집 | 원본 편집]

3부리그 강등 위기에 처한 1961년, 노장 선수 돈 레비가 감독대행에 취임하는데, 이 때부터 팀이 바뀐다. 레비 대행은 잔여경기에서 선전해 팀의 3부 강등을 막아내며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고, 레비의 지휘 하에 차근차근 팀 순위를 끌어올려 1963-64 시즌 2부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다시 1부리그로 복귀한다.

그리고 그들은 승격 첫 시즌인 1964-65 시즌에 골득실 차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1973-74시즌까지 잉글랜드는 물론이요, 전 유럽을 뒤흔드는 시대의 강팀이 된다. 그들의 눈부신 업적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 67-68시즌: 풋볼리그컵, 인터-시티 페어스 컵[1] 우승
  • 68-69시즌: 리그 우승
  • 69-70시즌: 채리티 실드 우승
  • 70-71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 71-72시즌: FA컵 우승
  • 73-74시즌: 리그 우승

레비와의 이별, 그리고 암흑기(1975-1990)[편집 | 원본 편집]

그러나 74-75시즌을 앞두고 레비 감독이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영전하면서 리즈는 다시 침체기에 빠진다. 후임 감독으로 더비 카운티의 71-72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브라이언 클러프가 취임했지만, 레비 감독과 소문난 견원지간이었던 클러프는 선수단과 겉돌면서 개막 이후 6경기 동안 불과 1승만 기록하며 44일 만에 경질되었다. 이 후 팀을 재정비해 1부리그 잔류 및 74-75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바이에른 뮌헨과의 유러피언컵 파이널에서 석연찮은 심판 판정 때문에 0-2로 분패하고, 이에 극대노한 응원단이 유혈극을 일으키는 바람에 향후 2년 간 국제대회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는다. 이를 기점으로 황금기를 이끌었던 선수들이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서 전력이 급하락, 81-82시즌에 다시 2부리그로 떨어진다.

다시 1부 복귀, 그리고 리즈시절(1990-2002)[편집 | 원본 편집]

1988년 10월, 하워드 윌킨슨 감독이 취임하고, 이듬해 3월에 알렉스 퍼거슨과의 불화로 맨유를 나온 고든 스트라칸을 영입하면서 전력이 급상승, 89-90시즌 2부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1부에 복귀한다. 그리고 91-92시즌을 앞두고 프랑스 축구의 풍운아 에릭 칸토나를 영입하며 스트라이커 문제까지 해결, 18년 만에 1부리그 우승컵을 탈환한다.

기나긴 암흑기[편집 | 원본 편집]

16년 만의 프리미어리그 복귀[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