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만

金學滿.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이며, 1883년생이다. 이명은 '복주어부'이다. 1907년 5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계동학교 교당으로 활동했고, 1908년 1월 이강년 의병장의 부대에게 군자금을 지원했다. 1908년 명동학교, 동흥학교, 선흥의숙 등 학교 설립과 운영을 후원하였고, 1910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거류민회 회장으로 당선되어 1914년까지 활동했다.

1910년 8월 한일병합 소식을 듣고 이상설, 유인석, 이범윤 등 6명과 함께 성명회를 조직해 한일병합의 부당함을 각국에 호소하는 내용의 취지서를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이범윤의 독립군부대 편성에 필요한 자금을 적극 후원했다.

1911년 5월 한일운동단체인 권업회가 창립되자 이에 가담하여 그해 12월 총재로 선임되었다. 1911년부터 1918년까지 이승희와 함께 중국 밀산형 봉밀산 일대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하고자 한인 정착촌인 한흥동 건설 사업을 추진했다. 1919년 2월 중국 길림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1921년 노인동맹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동아일보 1936년 4월 1일자 기사에 따르면, 김학만은 1931년경 사망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김학만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021년 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되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