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배관

金培寬.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85년 1월 10일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외가천리에서 출생했다. 이명은 김관백(金寬伯)이다. 1919년 4월 1일 최은식 등이 주동한 양성면, 원곡면 일대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외가천리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양성면 동항리로 향해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양성주재소와 양성우편소를 공격하여 돌을 던지고 사무실 뒤의 유리창을 부쉈다.

이후 일본인 일본인 토자 토요테(外里與手)가 경영하는 잡화점과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타카 히데토모(隆秀知)의 집을 파괴했다. 이후 양성면 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친 뒤 해산했다. 4월 2일 새벽 4시 원곡면으로 돌아와서 군중과 함께 원곡면 사무소의 건물을 파괴, 방화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 혐의로 징역 3년(구류일수 중 500일을 본형에 산입)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1] 이후 안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7년 2월 2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김배관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