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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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明仁.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9년 4월 2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부내면 법상동(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대석동)에서 안동 김씨 김계한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개신교 신자로, 계명학교를 재학한 뒤 1907년 설립된 안동의 근대 중등교육기관인 협동학교를 졸업했으며, 20세 때 대구 교남학원 고등과에 재학, 졸업하였다.

1919년 3월 18일 부친 김계한이 주도한 안동면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였고, 1921년 1월 안동 계명학교 교사로 부임한 뒤 학생들에게 '망향가', '소년행진곡', '용진가' 등 애국 창가를 가르치고 일제의 침략행위를 성토하며 독립정신을 고취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1921년 2월 3일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1년 3월 14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1] 공소했으나, 1921년 4월 11일에 공소를 취하하여 형이 확정되었다.[2] 이후 안동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3년 3월 1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김명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