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언

具奇彦.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84년 5월 3일 경상남도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에서 출생했다. 1924년 7월 말 고성군에서 김찬규(金燦奎)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 명의의 군자금 모집 지령서 40여 매를 교부받고 군정서(軍政署) 총무국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사령서를 자택에 숨겨두고 김찬규에게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하다 1925년 2월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1926년 3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증빙인멸 혐의가 적용되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1] 그러나 검사 측이 불복하여 공소했고, 1926년 5월 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개월(미결구류일수 40일 본형에 산입)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2] 1958년 10월 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구기언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21년 5월 11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유해를 안장했다.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