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옥성

姜玉成.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2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4년생이며, 평안북도 창성군 청산면 출신이다. 그는 1920년대 초 대한독립단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참의부에 가담해 제2중대 상등병을 맡았다. 1924년 5월 차경훈(車京勳), 이서흥(李瑞興), 권영식(權永植), 문화준(文華俊), 이명룡(李明龍)[1] 등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여 평안북도 초산군에서 일경 6명을 사살하고 장총 4정, 탄환 70개, 군복 다수를 노획했다.[2] [3]

이후 1926년 평북 근방에서 참의부 제2중대 참사를 맡았으며, 이후네는 국민부 산하의 조선 혁명군에 가담하였다. 1929년 11월 하순, 만주의 대표적인 친일 단체인 한교 동향회의 본부가 위치한 통화현을 장도백(張道白)과 함께 야간에 기습 공격하여 한교 동향회 본부 건물에 수류탄을 투척해 다수 인원을 사살했다.[4] 1931년 2월 통화, 환인현에서 국민부 중앙집행위원 및 조선혁명군 제4중대장으로 활동했다.

1933년 중순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및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32년부터 1933년까지 통화, 집한, 환인현 등지에서 조선혁명군 제1중대장으로서 만주국 및 평북 일대의 관공서를 공격하고 군자금 모집을 주도했다. 그러나 1933년 4월 일경에게 체포된 것을 마지막으로 그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1년 강옥성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각주

  1.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이명룡과 동명이인이다.
  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3. 독립신문 1924년 7월 26일자 기사에는 참사 정원일(鄭元日), 상등병 이태선(李泰善), 김성필(金成弼), 김화수(金化守) 등과 함께 초산군 직리에서 일경 8명과 교전하여 4명을 사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고 기술되었다.
  4. 세계한민족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