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80: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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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전차====
====모스크바의 전차====
[[File:1991 coup attempt4.jpg|250픽셀|썸네일|8월 쿠데타 당시 T-80UD]]
[[File:1991 coup attempt4.jpg|250픽셀|썸네일|8월 쿠데타 당시 T-80UD]]
1991년 당시 공산당을 비롯한 보수파가 일으킨 8월 쿠데타에서 쿠데타군으로 동참한 타만스카야 근위 기갑군은 예하에 있던 제4 칸테미로프스카야 전차사단의 T-80UD가 모스크바로 진주시키면서 옐친파 진압군의 T-72전차와 대치하였었다.
1991년 당시 공산당을 비롯한 보수파가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에 반발하며 발생한 8월 쿠데타에서, 쿠데타군으로 동참한 타만스카야 제1 근위 기갑군은 예하에 있던 제4 칸테미로프스카야 전차사단의 T-80UD 부대를 모스크바로 진주시키면서 옐친파 진압군의 T-72전차와 대치하였었다.
결국 고르바초프의 복귀로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며 양측의 교전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분노한 [[모스크바]] 시민들에 의해 투입된 T-80전차들이 포위당하고 승무원들이 끌려나오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8월 쿠데타 이후 소련이 붕괴된 다음, 1993년 러시아 연방의 탈 소련화를 추진하던 옐친 대통령에 대항한 보수파의 쿠데타로 러 공산당에게 국회의사당이 장악당하자 옐친은 모스크바 근교에 주둔한 T-80UD 운용 부대였던 타만스카야 기갑군을 모스크바로 진주시켜 진압을 개시했다.  
8월 쿠데타 이후 소련이 붕괴된 다음에도 T-80은 모스크바와의 연을 이어나갔다.


결국 모스크바에 또 투입된 T-80UD 전차는 보수파가 점거한 국회의사당을 포위하였으며 이윽고 10월 4일 아침, 직사로 국회의사당을 포격해 결국 보수파의 항복을 받아냈다.
사건은 1993년 소련 붕괴 뒤 들어선 러시아 연방의 탈 소련화를 추진하던 옐친 대통령에 대항한 보수파의 쿠데타였으며 러시아 공산당에게 국회의사당이 장악당하자 옐친은 모스크바 근교에 주둔한 T-80UD 운용 부대였던 타만스카야 기갑군의 제4 칸테미로프스카야 기갑사단을 다시 모스크바로 진주시켜 진압을 개시했다.
 
결국 모스크바에 '''''' 투입된 제4 기갑사단의 T-80UD 전차는 1991년 보수파의 편에 섰던 것과는 반대로 이번엔 옐친의 편에서 보수파가 점거한 국회의사당을 포위하였고 10월 4일 아침에 전개된 진압작전에서 직사로 국회의사당을 연속 포격해 결국 보수파의 항복을 받아냈다(...).
====1차 체첸전쟁====
====1차 체첸전쟁====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한 체첸 공화국을 침공하며 시작된 1994년 1차 체첸전에서 러시아군은 T-72와 함께 신예 전력인 T-80B와 BV형 전차를 체첸에 투입시켰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한 체첸 공화국을 침공하며 시작된 1994년 1차 체첸전에서 러시아군은 T-72와 함께 신예 전력인 T-80B와 BV형 전차를 체첸에 투입시켰다.


T-80 전차는 12월 24일 전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24일부터 31일까지 전투 기간 동안 러시아의 T-80은 체첸군 T-72와의 전차전으로 1대가 격파되고 대신 두대의 T-72를 격파하는 전과를 냈고 28일에는 체첸군이 점거한 그로즈니 공항을 탈환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그 동안 체첸 반군이 보유한 ATGM과 휴대용 대전차 화기로 지속적인 피해를 입고 있었다.
T-80 전차는 12월 24일 전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24일부터 31일까지 벌어진 전투 기간 동안, 러시아의 T-80은 [[체첸]]군 [[T-72]]와의 전차전으로 1대가 격파되고 대신 두대의 T-72를 격파하는 전과를 냈으며 28일에는 체첸군이 점거한 그로즈니 공항을 탈환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그 동안 체첸 반군이 보유한 ATGM과 휴대용 대전차 화기로 지속적인 피해를 입고 있었고 이는 곧 비극의 서막이 된다.


1994년의 마지막 날(12월 31일) 그로즈니 공방전에서 그로즈니로 진입한 러시아군은 곧 시가전이란 낯선 환경 속에서 체첸 반군의 대전차 화기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재앙이 시작되었다.
1994년의 마지막 날(12월 31일), 그로즈니 공방전에서 그로즈니로 진격한 러시아군은 전차부대를 그로즈니로 투입시켰지만, 곧 시가전이란 낯선 환경 속에서 소련 붕괴의 여파로 지휘체계 및 훈련 상태가 엉망이던 러시아군은 무작정 시가지에 전차를 투입시키는 미숙한 전술 능력을 보여주며 재앙적인 결과를 자초했다.


소련 붕괴로 지휘체계 및 훈련 상태가 엉망이던 러시아군의 미숙한 전술 능력은 무작정 시가지에 전차를 투입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로즈니로 진입한 뒤 T-80 전차들 중 하나는 지뢰에 완파되었고 다수의 T-80 전차들이 체첸 반군의 RPG 공격으로 격파되어 일부는 탄약고 피탄으로 불타올랐다. T-80 전차는 작은 포탑으로 포의 부양각이 낮은 단점으로 높은 고층건물과 저층 구역에서 가해지는 대전차 화기 공격에 무력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작약이 들어있어야 할 콘탁트5 반응장갑은 비어 나무같은 것들도 대신된 상태라 대전차 화기에 무력했다.
거기다 T-80 전차는 작은 포탑으로 포의 부양각이 낮은 단점으로 높은 고층건물과 저층 구역에서 가해지는 대전차 화기 공격에 무력했고 설상가상으로 작약이 들어있어야 할 콘탁트5 반응장갑은 비어 나무같은 것들도 대신된 상태였다.
결국 T-80은 같이 투입된 T-72보다도 생존성이 떨어진다는 악평까지 들어야 했다.


그 결과 그로즈니로 진입한 T-80 전차들 중 하나는 지뢰에 완파되었고 다수의 T-80 전차들이 체첸 반군의 RPG 공격으로 격파되었고 불타올랐고 몇몇은 승무원들이 피격으로 오인하여 멀쩡한 전차를 유기하고 도주하는 모습까지 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T-80은 같이 투입된 T-72보다도 생존성이 떨어진다는 악평까지 들어야 했다.
심지어 승무원들이 피격후 전차가 격파당한 것으로 오인하여 멀쩡한 T-80전차를 유기하고 도주하는 모습까지 보이기까지 하면서 소련 붕괴 후 러시아군의 실상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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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소련===

2020년 12월 20일 (일) 02:49 판

{{{무기이름}}}
ParkPatriot2015part2-31.jpg
무기 정보
종류 주력전차
길이 7(차체)/9.9m
3.4m
높이 2.2m

T-80소련러시아주력전차다.

동구권의 첫 3세대 전차이자 소련에서 개발된 마지막 전차인 T-80은, 냉전 말 소련군과 90년대 러시아군에서 운용된 전차로서 트란스마쉬 T-64의 계보를 잇는 후계 전차이다.

개발

소련이 T-80을 개발한 계기는 당시 엉망으로 꼬여버린 소련군의 전차 운용 방식 때문이었다.

그 원인을 거슬러 가면 있는 게 바로 T-64인데, 첫 125mm 주포와 자동장전장치 같은 신기술이 적용된 T-64는 소련군의 차세대 전차로서 동구권 전차전력을 개편할 신기종으로, 당국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었던 전차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야심차게 개발한 자동장전장치는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악평과 함께 잦은 결함을 일으켰고 함께 적용된 신기술들 역시도 낮은 신뢰성에 한몫했다. 여기까지면 그래도 울겨먹기로 쓸만 했을지 모르나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문제를 일으켰으니 바로 너무 비싸다는 것. 양산된 초기형은 개발도 늦은데다 신뢰성은 구더기가 따로없고 거기다 단가마저 비싸니 양적 우위를 기갑 전력의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던 소련군으로서는 이런 애물단지가 따로 없었다.

그래도 소련군은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T-64의 개발이 실패할 경우 열화판으로 개발이 진행중이던 땜빵용 계획이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오비옉트 172란 이 계획은 우랄바곤자보드가 제시한 계획으로 T-64에게 밀리긴 했지만 지지부진한 개발, 생산에 소련군은 우랄바곤자보드에 172의 개발을 명령하여 정식으로 전차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T-90으로 이어지는 T-72다.

일단 여기까진 좋았다. T-72의 성능이 좀 딸려도 어차피 T-64의 기능을 가진 전차를 싼 값에 왕창 뽑아 굴리면 T-64의 문제 개선에 들어가는 시간은 벌 수 있고 T-64의 하위 전력으로 운용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문제는 T-64와 T-72가 같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불거졌다. T-64와 양산형으로 개발했더니 이 땜빵 전차는 보조에 만족하지 않고 또 하나의 정식 주력전차가 되어버렸으며 아직 T-55,T-62까지 현역에서 운용중인 상황에서 T-64와 T-72까지 투트랙으로 끼얹으니 새로운 전차 생산(그리고 운용)에 힘을 두배나 쏟게 된 것이다. 여기엔 정치적인 문제와 항께 생산 공장들의 사이좋은 일감 나눠먹기가 성행하던 사회주의 체제 하의 문제까지 얽혀 있었지만 운용자인 소련군 입장에서는 남들의 그딴 사정 알바 없고 기갑 전력이 둘 이상으로 나뉜다는 사실에 골머리를 썩혀야 했다.

결국 참다 못한 소련군은 T-64나 T-72보다 강력한 전차를 개발해 애물단지들을 싹 밀어버리고 주력전차를 한 종으로 통합하기 위해 오비옉트 219를 승인하고 개발을 지시한다.

당시 오비옉트 219를 설계하였던 키로프 공장은 T-10이후, 중전차가 전장에서 퇴출당하며 전차 설계를 놓았던 상태였지만 오비옉트 219로 전차 개발에 복귀하는 계기가 됐고 T-64를 개발한 모로조프 설계국의 기술을 바탕으로 신형 전차의 윤곽을 잡아 간다.

성능

개요

공격력

2A46 125mm 활강포

T-80의 포탑에는 주포인 125mm 활강포와 T-64에서 비롯된 코르지나식 자동장전장치를 중심으로 사격을 지원하는 사격통제장비가 포탑에 배치되어 있다. 포탑 전면의 125mm 2A46 주포는 포구초속 1,700m/s로 음속 대비 5배에 근접하는 고속탄을 발사하기 때문에 2km 내 까지 곧은 탄도를 보이며 최대 4km~5km(포발사 미사일 포함)의 유효 사거리를 가진다.

주포는 포탑 아래에 위치한 자동장전장비에서 탄을 수급하며 바구니를 닮았다 하여 코르지나식 자동장전장치라고 불리고 있는 이 장치는 28발의 탄을 'ㄴ'자 모양으로 둥글게 배치하는데, 포탄은 세우고 추진 장약은 탄약고 밑에 눕힌 상태로 배치된다. T-80의 코르지나 장전장치는 날탄과 대탄, 그리고 동구권 전차의 특징인 포발사 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탄들이 탄약대에 수납되며 포수의 선택에 따라 해당 탄이 있는 탄약대를 회전시켜 최대 6초의 속도로 장전할 수 있다.

9K112 코브라

탄은 3VBM3탄과 3VBM6 날탄을 운용하며 대탄(대전차고폭탄)은 3VBK7탄과 3VBK10을 운용된다. 여기서 포의 성능과 직결되는 날탄은 T-80의 주포에서 발사될 시 2km에서 450mm의 관통력을 보여 당대 모든 서방 전차들의 장갑을 뚫는 게 가능했고 현대 개발된 최신 탄을 쏠 경우 650mm 까지 증가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빔 라이딩 유도방식의 포발사 미사일 9M112 코브라로는 5km 밖의 적 전차의 뚜껑을 딸 수 있었으니 동시대 서방권 3세대 전차들의 공격력을 상회하는 성능을 지녔었다.

방호력

블록 모양의 반응장갑

T-80의 둥글넓적한 포탑은 주조 포탑으로, 3세대 전차답게 포탑 전면 내부에는 복합장갑재가 충진되어 유효한 방호력을 제공하며 초기형 T-80은 반응장갑을 장착하지 않았으나 B형부터는 콘탁트5 활성 반응장갑(ERA)를 장착하기 시작하며 탄 저지력을 크게 높혔다.

T-80은 T-72에서 사용된 복합장갑을 개량해 고경도 강철과 알루미나 세라믹, 티타늄 합금으로 구성된 적층형 장갑을 포탑과 차체 전면에 삽입했다. 그 결과 반응장갑을 장착하지 않은 순수 장갑만의 방어력은 B형이 기준 400~500mm의 방어력을 내, 40톤이란 체급에 비해 동시대 서방 전차와 근소 열세의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U형부터는 콘탁트5를 장착하기 시작해 서방 3세대 전차들을 앞서는 방어력을 갖추면서 날탄에 대해선 600~700mm 중,후반(650~780mm)의 방어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40톤이라는 중량에 서방 전차와 동등한 전면방어력을 갖추기 위해 장갑 대부분이 전면에 집중된 만큼, 측면이 빈약한 것은 T-72이나 T-80이나 매한가진지라 피격이라도 되는 날에는 측면에 위치한 탄약고의 피탄으로 유폭+포탑사출은 확정이었다.

기동력

40톤의 차체에 1000마력 급 고출력 가스터빈 엔진을 장착한 T-80 전차는 가속력과 속도 면에서 호평받았다.

초기형 T-80은 1000마력 GTD-1000 가스터빈 엔진을 탑재했고 개량형인 U형부터는 출력이 증가한 GTD-1250으로 교체되었다. 그 덕에 T-80은 최대 시속 70km의 빠른 속력을 낼 수 있었고 야지에서도 48km 까지 가속할 수 있다. 그 대신 가스터빈 특유의 낮은 연비로 항속거리는 타 기종 대비 짧은 편인 335km[1]이이며 보조연료탱크 장착 시 415km 까지 증가한다.

다만 가속력과 최고속도 면에서는 출중한 편이나, 자체 변속기 기술의 부재로 피봇 턴 같은 섬세한 전술기동은 불가능하고 후진 속도도 느리다는 것 역시 단점으로 꼽히는 사항 중 하나이다.

러시아 전차답게 수중 도하 기능을 갖추고 있어 얕은 하천이나 강에서는 가스터빈 엔진의 흡입구에 스노켈을 다는 것 만으로도 부교 가설같은 복잡한 도하 절차 없이 바로 도섭이 가능하다. 때문에 도하로 인한 진격속도 저하를 막을 수 있다.

종합

운용

1990년 소련군은 4,800여대의 T-80을 보유하고 있었고 붕괴 이후 러시아군은 감축된 3,000대의 T-80과 1,400여대의 치장물자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T-72와 T-90에 밀려 지속적인 감축이 진행되면서 현용 450대를 제외한 나머지는 치장물자화 되었다.

한편 우크라이나도 소련이 붕괴되자 기존 소련군의 T-80을 포함해 생산 라인을 입수하였고 트란스마쉬의 부도로 T-64,80 계열의 명맥은 우크라이나에서 이어지게 된다.

러시아군은 2017년부터 치장된 구형 BV형을 BVM형으로 개량하는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2020년까지 그 댓수를 꾸준하게 늘려왔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군의 판단이 T-80의 탄생 원인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T-14의 양산을 우려하고 있지만 러시아군은 3종의 전차 운용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국군의 운용

소련에게 빌려준 차관의 현물 상환 방식으로 시작된 무기 도입사업인 불곰사업으로 1996년부터 33대의 T-80U 전차가 BMP-3 장갑차와 함께 도입되었다.

처음에 국군은 이 전차들을 적성병기 평가 및 대항군 용으로나 굴릴 생각이었고 걸프전 등 실전에서 졸전을 보인 러시아 전차들의 이미지 탓에 그리 기대는 하고있지는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배치된 곳도 장성 기갑학교였고 도색과 일부 부품마저 도입때와 달라진것 없이 유지되었다.

실전

모스크바의 전차

8월 쿠데타 당시 T-80UD

1991년 당시 공산당을 비롯한 보수파가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에 반발하며 발생한 8월 쿠데타에서, 쿠데타군으로 동참한 타만스카야 제1 근위 기갑군은 예하에 있던 제4 칸테미로프스카야 전차사단의 T-80UD 부대를 모스크바로 진주시키면서 옐친파 진압군의 T-72전차와 대치하였었다. 결국 고르바초프의 복귀로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며 양측의 교전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분노한 모스크바 시민들에 의해 투입된 T-80전차들이 포위당하고 승무원들이 끌려나오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8월 쿠데타 이후 소련이 붕괴된 다음에도 T-80은 모스크바와의 연을 이어나갔다.

사건은 1993년 소련 붕괴 뒤 들어선 러시아 연방의 탈 소련화를 추진하던 옐친 대통령에 대항한 보수파의 쿠데타였으며 러시아 공산당에게 국회의사당이 장악당하자 옐친은 모스크바 근교에 주둔한 T-80UD 운용 부대였던 타만스카야 기갑군의 제4 칸테미로프스카야 기갑사단을 다시 모스크바로 진주시켜 진압을 개시했다.

결국 모스크바에 투입된 제4 기갑사단의 T-80UD 전차는 1991년 보수파의 편에 섰던 것과는 반대로 이번엔 옐친의 편에서 보수파가 점거한 국회의사당을 포위하였고 10월 4일 아침에 전개된 진압작전에서 직사로 국회의사당을 연속 포격해 결국 보수파의 항복을 받아냈다(...).

1차 체첸전쟁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한 체첸 공화국을 침공하며 시작된 1994년 1차 체첸전에서 러시아군은 T-72와 함께 신예 전력인 T-80B와 BV형 전차를 체첸에 투입시켰다.

T-80 전차는 12월 24일 전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24일부터 31일까지 벌어진 전투 기간 동안, 러시아의 T-80은 체첸T-72와의 전차전으로 1대가 격파되고 대신 두대의 T-72를 격파하는 전과를 냈으며 28일에는 체첸군이 점거한 그로즈니 공항을 탈환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그 동안 체첸 반군이 보유한 ATGM과 휴대용 대전차 화기로 지속적인 피해를 입고 있었고 이는 곧 비극의 서막이 된다.

1994년의 마지막 날(12월 31일), 그로즈니 공방전에서 그로즈니로 진격한 러시아군은 전차부대를 그로즈니로 투입시켰지만, 곧 시가전이란 낯선 환경 속에서 소련 붕괴의 여파로 지휘체계 및 훈련 상태가 엉망이던 러시아군은 무작정 시가지에 전차를 투입시키는 미숙한 전술 능력을 보여주며 재앙적인 결과를 자초했다.

그로즈니로 진입한 뒤 T-80 전차들 중 하나는 지뢰에 완파되었고 다수의 T-80 전차들이 체첸 반군의 RPG 공격으로 격파되어 일부는 탄약고 피탄으로 불타올랐다. T-80 전차는 작은 포탑으로 포의 부양각이 낮은 단점으로 높은 고층건물과 저층 구역에서 가해지는 대전차 화기 공격에 무력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작약이 들어있어야 할 콘탁트5 반응장갑은 비어 나무같은 것들도 대신된 상태라 대전차 화기에 무력했다. 결국 T-80은 같이 투입된 T-72보다도 생존성이 떨어진다는 악평까지 들어야 했다.

심지어 승무원들이 피격후 전차가 격파당한 것으로 오인하여 멀쩡한 T-80전차를 유기하고 도주하는 모습까지 보이기까지 하면서 소련 붕괴 후 러시아군의 실상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변형

소련

T-80B
T-80BV
T-80U

T-80

최초기형으로 외형은 기반이 된 T-64와 흡사하나, 차체 보기륜의 크기 차이로 구별할 수 있다.

T-80B

치체에 복합장갑이 삼입되었으며 콘탁트1 폭발 반응장갑을 장착해 성작탄에 대비하였고 9K112 코브라 포발사 미사일 운용능력을 획득하였다.

T-80BV

B형의 개량형으로 폭발 반응장갑을 개량했다.

T-80U

T-80의 개량형으로 콘탁트5 폭발 반응장갑을 달아 방어력을 대폭 증가시켰고 사통장비의 개량으로 신형 9K119 포발사 대전차 미사일 운용능력을 획득하며 공격력 면에서도 앞선 사항들보다 우수한 사항이었다. 엔진 역시 GTD-1250 1250마력 가스터빈 엔진으로 교체되어 증가된 중량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속 성능을 유지하였다. 지휘형인 UK형과 수출형인 UE형이 있고 이 밖에 열상 장비를 개량한 현대화 사항인 UM형이 러시아군에서 운용되는 중이다.

국군 제3기갑여단 불곰대대의 T-80이 이 형식이다.

냉전 이후

오플롯
오플롯-M

T-84 오플롯

T-80의 우크라이나 개량 생산분으로 포탑을 주조에서 용접형으로 바꾼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T-80BVM

2010년 중반부터 양산되어 2017년 공개된 T-80BV의 현대화 형식으로 특이하게도 원 제조사[2]가 아닌 T-72,90의 생산자인 우랄바곤자보드가 양산한다.

BVM은 신형 2A46M-4 활강포 교체로 화력이 강화되었고 신헝 반응장갑 렐릭트의 장착으로 적탄의 침투를 최대 50% 까지 저지시키는 것이 가능할 만큼 이전 사항들 대비 화력, 방어력 면에서 큰 발전이 있었다. 구형 사통장비들도 소스나U 다중채널 광학조준경과 디지털 탐지장비로 구성된 45M 사통장비로 교체되며 기존 T-80의 아날로그 장비들 상당부가 디지털화 되었다.

운용국가

각주

  1. 자체 연료 및 도보 주행 기준.
  2. 트란스마쉬는 부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