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해호 침몰 사고

Pikabot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4월 7일 (목) 03:09 판 ('틀:사건 정보' 표준화 v1.0)
{{{이름}}}
[[파일:[[파일:|150px]]|336px|alt=]]

개요

1949년 10월 5일, 인천광역시 인천항을 출발하여 강화도로 운항하던 발동기선 '평해호'가 인천시 해역 작약도(현 물치도) 인근에서 침몰하여 71명이 숨진 사고이다.

사고 내용

평해호는 당시 추석을 하루 앞둔 날이었던 10월 5일, 마침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던 귀성객 200여명을 싣고 오후 12시 10분쯤, 인천항을 출항하여 목적지인 강화도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40분이 지난 12시 50분경, 평해호는 인천시 해역의 작약도 인근을 지나고 있었는데, 이 때 갑작스럽게 배가 기울며 작약도 100m 인근 해상에서 그대로 전복되어 버렸고, 이 때 많은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다로 추락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전복되어버린 배에 놀란 승객들은 혼비백산하기 시작했고, 그 영향으로 배가 바다를 향해 완전히 뒤집히면서 침몰, 결국 평해호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배와 함께 그대로 바다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사고 발생 이후, 근처를 지나가던 '갑제환호'라는 배가 이를 목격, 해양구조대에 신고 및 96명의 승객을 구출하였으며, 이후 해양구조대가 인양 및 구조 작업을 실시했지만, 하필이면 그 곳이 조류가 매우 강한 지점이었던지라,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승객 중에서 71명이 익사하는 대참사를 낳게 되었다.

사고 원인

당시 운항하던 평해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객선이 아닌, 최대 정원이 고작 5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17톤급의 발동기선이었다. 그런데 당시 평해호는 정원을 무려 4배나 초과한 200명을 싣고 운항하였고, 결국 배의 하중에 무리가 생겨 전복된 것으로 원인을 추측하고 있다. 또한 선장의 태도도 참사를 낳는데 한몫 했는데, 당시 평해호의 선장은 무려 만취 상태로 음주운전을 한 것이 드러났다. 배를 책임지고 안전하게 운행해야 할 선장이 만취 상태로 운항을 하였으니, 평해호가 안전하게 운항을 마칠 리가 만무했다.

사고 이후 과정

약 4주 후인 11월 3일, 인천지방검찰청 측은 선장과 선원을 업무상과실치사혐의로 법정에 기소하였으며, 12월 9일, 검사는 이들에게 각각 3년의 금고형을 구형하였다. 최종적으로, 12월 22일, 판사는 선주에게 금고 2년과 집행유예 3년, 선장에게는 금고 2년을 선고하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