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린

최린
崔麟
인물 정보
다른이름 아호 고우(古友)
도호 여암(如庵)
일본명 가야마 린(佳山麟)
출생 1878년 1월 25일
조선 함경도 함흥부
사망 1958년 12월 4일 (79세)
북한 평안북도 선천군
국적 북한
학력 메이지대학 법학과 학사
종교 천도교
배우자 밀양 박씨
가족 아버지 최덕언(崔德彦)
어머니 청주 김씨

최린일제강점기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으로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전향한 인물이다. 보성학교 교장, 천도교 도령,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매일신보 사장 등을 지냈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학(漢學)을 배웠다. 1895년 상경하였으나 을미사변단발령으로 말미암아 인심세태가 흉흉하자 서울을 떠나 각지를 유람하였다. 이때 승려가 되려 하였으나 낭패하였고 이듬해 3월에 귀향하였다. 1901년에 다시 상경하여 박영효가 부호들의 재물을 모아 가난한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려 조직한 활빈당(活貧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듬해인 190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유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 일심회(一心會)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자 3월에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망명 기간에 동학 3대 교주 손병희를 만나 그이의 사상과 인품에 감복하여 훗날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망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국이 일심회에 깊숙이 가담하지 않은 자는 사면한다는 소식을 듣고 7월에 귀국하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