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주산성


죽주산성
죽주산성.jpg
건축물 정보
주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양대로111-71(매산리)
문화재 정보
종목 경기도 기념물 제69호
지정일 1973년 7월 10일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죽주산성 현황도

삼국시대 쌓은 것으로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곽으로 형식상으로 2개의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포곡식 산성에 해당한다. 고려시대에는 안성시 죽산면 일대의 지명을 죽주라고 하여 죽주성, 또는 매성으로도 불렸던 성곽이다. 이 일대는 현재도 인근에서 17번 국도38번 국도가 십(十)자 형태로 교차하고 있으며 바로 동편에 중부고속도로일죽 IC가 자리한 교통상 중요한 지점에 해당한다.

내성, 중성, 외성의 3중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현재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부분은 내성 북측부와 외성 겸 중성의 남측부에 해당하며 성벽이 겹치는 구간에서 중성과 내성의 흔적이나 기초가 되는 모습의 확인이 일부 가능하다.

  • 내성 : 가장 먼저 지어진 1,125m길이의 테뫼식 산성이다. 산 능선부를 "ㅏ"자 모양으로 좁게 감싸고 있으며 남문 2개와 북문 1개의 성벽이 있었다.
  • 중성 : 내성 북쪽 계속 일부와 현재 정문 역할을 하는 동문쪽 계곡을 포함하는 1,336m의 포곡식 산성이다.
  • 외성 : 성 북쪽 북쪽 능선부 3개 방향으로 뻗어나간 618m길이의 성으로 능선길 위쪽으로 석축의 흔적이 남아있다.

죽주산성 전투[편집 | 원본 편집]

고려 고종 23년(1236년) 몽고의 3차 침공 당시 이곳 죽주산성에 이르러 고려군에게 항복을 강요하면서 공격하였으나 당시 지휘관(죽주방호별감)으로 있던 송문주 장군이 막아냈다. 송문주 장군은 이전 몽고 1차 침공 당시 귀주(구주)성 전투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어서 몽고군의 공격법을 알고 대비하여서 이길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채제공이 쓴 송장군묘비명에서는 몽고군이 죽주산성을 포위하고 성 내부의 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전술을 쓰자 송문주 장군은 몽고군에게 "멀리서 왔으니 너네 배고프지? 이 생선 줄테니 먹고 힘내서 싸워러"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성 내 연못에서 잡은 잉어를 몽고군에게 보냈고 이에 몽고군이 성을 포위해봤자 소용이 없음을 알고 포위를 풀고 물러갈 때 후미를 공격하여 크게 이겼다고 한다.

기타 특성[편집 | 원본 편집]

  •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는 1605년 이 죽주산성을 개보수할 당시 일본 성을 모방하여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죽주산성은 외성, 중성, 내성으로 이루어진 3중성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성 밖에는 해자 역할을 했던 도랑의 흔적이 있으며 성 남쪽과 동쪽, 서쪽 끝부분의 치성(雉城) 인근에서는 추춧돌과 기와 등이 발견되어 주요 지점에 방어를 위한 건축물을 쌓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성 내 발굴 조사 결과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되는 집수시설 6기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집수시설 2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죽주산성이 이전부터 물이 풍부하게 나는 성임을 알려주는 것으로 위의 송문주 장군 묘비명의 일화도 이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성 내는 아직도 샘물이 나고 있으며 갈수기에도 샘이 끊어지지 않고 용출하고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