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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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유목민은 가축 등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상업 활동을 하거나 약탈을 하는 사람들이다.

원인

일단 유목민은 생산력이 부족하여 그들만으로는 다양한 물품을 제작하기 힘들다. 따라서 물건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상업을 하거나 아니면 남들로부터 원하는 물건들을 빼앗는 수밖에 없었다. 유목민들이 검소하다고 알려진 원인도 근본적으론 생산력 부족이 원인으로 유목민들 역시 기회만 있으면 사치스럽게 살려고 했다.

이들은 아무 장소나 돌아다니는 유목과 정해진 장소들을 돌아다니는 이목이 있으며 전자가 훨씬 약탈민족의 성격이 컸다. 몽골 역시 몽골 지역과 만주 등을 돌아다니던 시절에는 약탈이 일상이었으나 점차 몽골 지역에서 이목을 하게 되자 약탈보단 상업을 선호하기 시작한다.

특징

이들은 일반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남들을 만나고 다녔고 그들과 수많은 전쟁 혹은 갈등을 겪기 때문에 엄청나게 호전적이었다. 중동 지역에서는 고작 수백, 수천 명으로도 소국들은 물론 심지어 중동 지역의 강대한 제국을 침략하거나 정복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몽골과 만주는 유목계의 중국 같은 지역이었기에 몽골과 튀르크 등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유목민들을 배출하였으며 넓은 지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동아시아에서는 머나먼 고대의 몽골인들이 북방계 동북아인의 조상이기에 중화 문명의 영향을 덜 받은 몽골이 동북아인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그 중화 문명도 물론 남방 문명의 영향도 받았으나 직접적인 조상이 고대 몽골인들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사냥과 말에 익숙하고 따라서 농경민들보다 전투 병력의 비중이 극도로 높다. 또한 돌아다니면서 갈등이 많았기에 군사 훈련이 자연스러운 민족들도 많았다. 그로 인하여 권위가 발생했고 문명 수준이 낮아도 자연스럽게 군사 귀족들이 탄생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자체적인 문명 수준이 낮기에 귀족들이 탄생하지 않은 민족들도 있었다. 또한 유목민들에겐 학문이 잘 발달하지 않았기에 주변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근본적인 부분인 혈통을 매우 중시했다. 혈통을 제외하곤 대단한 정당성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명적인 것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약탈[1]을 위해 정보 수집을 상당히 중시하는 면이 있으며 따라서 권위가 있거나 쓸모가 있는 손님을 친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격하게 환대하는 전통이 있다.

농경민들과 달리 유목을 위해 주변의 토지를 고의적으로 황폐화시키는 특징도 있다. 이것은 농경민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유목민들의 힘을 강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이들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농경 문명을 만나면 그들을 철저히 파괴해서 문명의 파괴자란 명성을 얻기도 했다.

유목적 특성과 다른 저장 기술의 미발달로 이들은 보존 식품이 발전하였으며 의외로 농경민의 특성으로만 생각하기 쉬운 한중일에도 조상의 영향으로 인하여 일찍부터 유목민식 음식들이 발달하였다. 사실 유럽이나 중동, 인도[2]와 비교하더라도 동북아는 이상할 정도로 유목민들이 잘 동화되는 편[3]인데 조상들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1. 특히 약탈이 완전한 생업인 경우 손해가 발생하면 수지가 맞지 않기에 아예 농경민들의 지도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방비를 약화시킨 후 약탈을 하기도 했다.
  2. 인도에 유입된 유목민들은 고대부터 유입되어도 근대는 물론 현대까지 동화가 안 된 사람들도 있다.
  3. 항상 잘 풀리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농경민들에게 역동화를 시전한 튀르크는 물론 이란계 유목민만 해도 이란인들에게 반대로 그리스어 등을 강하게 강요하기도 했다. 아랍인들도 딱히 동화가 되진 않았다. 그러나 동북아는 유목과 관계가 있던 고구려, 발해는 물론 농경민적 특징을 최대화한 중국까지도 동화력이 상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