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라비: 두 판 사이의 차이

(극단적 페미니즘을 신봉하는 메갈계열은 15년 여름부터 민우회와 공동 행사 및 모금 후원 진행, 민우회는 메갈계를 지속적으로 옹호하며 공생함. 여성계의 지원으로 커진 것을 무시할 수 없음)
3번째 줄: 3번째 줄:
<del>일단 맞고 시작하자 이건가</del> '''[[대안우파]]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
<del>일단 맞고 시작하자 이건가</del> '''[[대안우파]]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


[https://archive.is/399k8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밑도끝도없이 '페미니즘 정체성 정치'라고 단정하고 있는데,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기준이 사라지고, 아니 그 기준을 없애버리는 시대, 기준을 잃은 세상에서 무엇이 중요할까"라는 문장부터가 서구 선진국에서도 매우 보수주의적인 논지이지 '''결코 진보주의의 논지가 아니다'''. 그리고 미소지니 진영의 주된 논리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래디컬 페미니즘의 빈틈을 과장하여 페미니즘 전체를 까내리는]] 건데<ref>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다른 소수자(혹은 그 운동)를 끌여들여 특정 소수자를 멍석말이하는 건 실제로 대안우파들이 잘 보여주는 행태이다(이를테면 [[조던 피터슨]]처럼 신좌파를 [[문화마르크스주의]]로 엮는다던가).</ref> 저런 이슈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스트라면 관심을 보이겠지만 정작 '''래디컬 페미니스트에겐 관심 밖의 일'''이다.<ref>래디컬 페미니즘은 남-녀의 이분법에 갇혀 다른 젠더를 배제하는 모습을 띤다. 역설적인 건, '''미소지니'''와 성소수자 혐오를 위해 '''극우 세력'''이 똑같은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 <del>완벽한 [[미러링]]</del></ref>
[https://archive.is/399k8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페미니즘 정체성 정치'라고 단정하고 있는데,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기준이 사라지고, 아니 그 기준을 없애버리는 시대, 기준을 잃은 세상에서 무엇이 중요할까"라는 문장부터가 서구 선진국에서도 매우 보수주의적인 논지이지 '''결코 진보주의의 논지가 아니다'''. 그리고 미소지니 진영의 주된 논리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래디컬 페미니즘의 빈틈을 과장하여 페미니즘 전체를 까내리는]] 것이다. [[조던 피터슨]]이 신좌파를 [[문화마르크스주의]]와 엮는 것과 같이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다른 소수자(혹은 그 운동)를 끌여들여 특정 소수자를 멍석말이하는 건 실제로 대안우파들이 잘 보여주는 행태이다. 저런 이슈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스트라면 관심을 보이겠지만 정작 '''래디컬 페미니스트에겐 관심 밖의 일'''이다.<ref>래디컬 페미니즘은 남-녀의 이분법에 갇혀 다른 젠더를 배제하는 모습을 띤다. 역설적인 건, '''미소지니'''와 성소수자 혐오를 위해 '''극우 세력'''이 똑같은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 <del>완벽한 [[미러링]]</del></ref>


젠더 다양성과 성소수자의 보편인권을 "개인적인 정체성 우선,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라는 방식은 우리 사회의 공통적인 비전과 공동체 의식을 밀어내고 더욱 개개인의 자아만 중요시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ref>서구 선진국에서도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이렇게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성다수자와 성소수자의 '보편인권'을 무시하는 차별적 발상일 뿐이다. 기존의 차별적인 보수적 젠더 이분법에서 벗어나 젠더가 다양해지면, 사회적 공동체 의식을 꾸릴 수 없는가?</ref> 남·녀 갈등으로 촉발된 공동체의 분열엔 외려 한국사회에 만연한 젠더 이분법이 더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젠더 이분법의 고착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집단이 남성이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작금의 '극단적'<ref>그러니까 생물학적 여성만 중시해서 생물학적 남성과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ref> 페미니즘이 급부상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미소지니로 무장한 남성들의 [[메갈리아4 티셔츠 사태|잘못된]] [[나무위키 이퀄리즘 프로파간다 사건|비판]] 때문이 아닌가?
젠더 다양성과 성소수자의 보편인권을 "개인적인 정체성 우선,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라는 방식은 우리 사회의 공통적인 비전과 공동체 의식을 밀어내고 더욱 개개인의 자아만 중요시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서구 선진국에서도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이렇게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차별적인 보수적 젠더 이분법에서 벗어나 젠더가 다양해지면 사회적 공동체 의식을 꾸릴 수 없다는, 역시 성다수자와 성소수자의 '보편인권'을 무시하는 차별적 발상일 뿐이다. 남·녀 갈등으로 촉발된 공동체의 분열엔 외려 한국사회에 만연한 젠더 이분법이 더 큰 역할을 했다.


[https://realnews.co.kr/archives/12725 탈코르셋 운동을 비난하면서] "패션의 발전은 여성들 간의 미의 경쟁에서 발전해 왔고 미를 향한 추구와 염원은 여성들이 가진 고유의 본능"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 말은 남성들이 꾸밈을 강요했다는 국내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맥락에서 나왔다고 해석해야 하겠으나<ref>과거로 갈수록 남녀를 막론하고 여성의 꾸밈에 부정적이었다. 여성이 화장을 하는 것을 화류계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편견이 어르신들일수록 강한 것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모습을 여성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남자 어르신도 적지 않았다.</ref>, 여성들을 고객을 응대하는(그래서 꾸밈에 대한 압력을 많이 받게 되는) 서비스 산업에 많이 활용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젠더 고정관념이 알게 모르게 작용했으리라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게다가 코르셋이 원래는 남성용이었다면서, 역사적으로 남성들도 꾸밈이 많았음을 지적하여 자기 주장을 직접 뒤집어버린다.<ref>하이힐도 루이 14세가 자신의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해 신었다. <del>깔창의 원조</del> 분명히 귀족·왕족 계층은 남녀를 불문하고 복장과 장식이 화려했다(이건 한반도의 삼국 시대 유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ref><ref>이 주장에 맞추어 꾸밈이 여성 고유의 본능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게, 분명 남자들이 육체 노동에 많이 종사했으므로 남자에게 꾸밈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생겼을 수는 있겠지만, 평민이라면 여성이라고 노동을 안 하고 살았을 리가 없을텐데 평민 여성들 역시 자연히 꾸밈에 무뎌질 수밖에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ref> 현실에서도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적지 않으며, 김기수처럼 어려서부터 화장을 즐기는 성향이 있었던 남성 뷰티 유튜버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과연 꾸밈이 여성 고유의 본능일지는 의문이 든다.
[https://realnews.co.kr/archives/12725 탈코르셋 운동을 비난하면서] "패션의 발전은 여성들 간의 미의 경쟁에서 발전해 왔고 미를 향한 추구와 염원은 여성들이 가진 고유의 본능"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 말은 남성들이 꾸밈을 강요했다는 국내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맥락에서 나왔다고 해석해야 하겠으나<ref>과거로 갈수록 남녀를 막론하고 여성의 꾸밈에 부정적이었다. 여성이 화장을 하는 것을 화류계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편견이 어르신들일수록 강한 것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모습을 여성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남자 어르신도 적지 않았다.</ref>, 여성들을 고객을 응대하는(그래서 꾸밈에 대한 압력을 많이 받게 되는) 서비스 산업에 많이 활용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젠더 고정관념이 알게 모르게 작용했으리라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게다가 코르셋이 원래는 남성용이었다면서, 역사적으로 남성들도 꾸밈이 많았음을 지적하여 자기 주장을 직접 뒤집어버린다.<ref>하이힐도 루이 14세가 자신의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해 신었다. <del>깔창의 원조</del> 분명히 귀족·왕족 계층은 남녀를 불문하고 복장과 장식이 화려했다(이건 한반도의 삼국 시대 유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ref><ref>이 주장에 맞추어 꾸밈이 여성 고유의 본능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게, 분명 남자들이 육체 노동에 많이 종사했으므로 남자에게 꾸밈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생겼을 수는 있겠지만, 평민이라면 여성이라고 노동을 안 하고 살았을 리가 없을텐데 평민 여성들 역시 자연히 꾸밈에 무뎌질 수밖에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ref> 현실에서도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적지 않으며, 김기수처럼 어려서부터 화장을 즐기는 성향이 있었던 남성 뷰티 유튜버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과연 꾸밈이 여성 고유의 본능일지는 의문이 든다.

2018년 11월 10일 (토) 13:32 판

한국의 여성차별주의자로 리얼뉴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를 발표하여 미소지니가 팽배한 남초에서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비판

일단 맞고 시작하자 이건가 대안우파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페미니즘 정체성 정치'라고 단정하고 있는데,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기준이 사라지고, 아니 그 기준을 없애버리는 시대, 기준을 잃은 세상에서 무엇이 중요할까"라는 문장부터가 서구 선진국에서도 매우 보수주의적인 논지이지 결코 진보주의의 논지가 아니다. 그리고 미소지니 진영의 주된 논리가 래디컬 페미니즘의 빈틈을 과장하여 페미니즘 전체를 까내리는 것이다. 조던 피터슨이 신좌파를 문화마르크스주의와 엮는 것과 같이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다른 소수자(혹은 그 운동)를 끌여들여 특정 소수자를 멍석말이하는 건 실제로 대안우파들이 잘 보여주는 행태이다. 저런 이슈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스트라면 관심을 보이겠지만 정작 래디컬 페미니스트에겐 관심 밖의 일이다.[1]

젠더 다양성과 성소수자의 보편인권을 "개인적인 정체성 우선,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라는 방식은 우리 사회의 공통적인 비전과 공동체 의식을 밀어내고 더욱 개개인의 자아만 중요시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서구 선진국에서도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이렇게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차별적인 보수적 젠더 이분법에서 벗어나 젠더가 다양해지면 사회적 공동체 의식을 꾸릴 수 없다는, 역시 성다수자와 성소수자의 '보편인권'을 무시하는 차별적 발상일 뿐이다. 남·녀 갈등으로 촉발된 공동체의 분열엔 외려 한국사회에 만연한 젠더 이분법이 더 큰 역할을 했다.

탈코르셋 운동을 비난하면서 "패션의 발전은 여성들 간의 미의 경쟁에서 발전해 왔고 미를 향한 추구와 염원은 여성들이 가진 고유의 본능"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 말은 남성들이 꾸밈을 강요했다는 국내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맥락에서 나왔다고 해석해야 하겠으나[2], 여성들을 고객을 응대하는(그래서 꾸밈에 대한 압력을 많이 받게 되는) 서비스 산업에 많이 활용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젠더 고정관념이 알게 모르게 작용했으리라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게다가 코르셋이 원래는 남성용이었다면서, 역사적으로 남성들도 꾸밈이 많았음을 지적하여 자기 주장을 직접 뒤집어버린다.[3][4] 현실에서도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적지 않으며, 김기수처럼 어려서부터 화장을 즐기는 성향이 있었던 남성 뷰티 유튜버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과연 꾸밈이 여성 고유의 본능일지는 의문이 든다.

UNDP 통계 인용 과정에서의 왜곡

페미니스트가 말하지 않는 한국 성평등 '아시아 1위, 세계 10위'[5]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오세라비 작가 인터뷰

위 링크의 글에서 오세라비는 UNPD 성불평등 지수를 거론하며, 한국이 공식적으로 아시아 1위, 세계 10위의 성평등 국가라 주장한다.

UNDP 지수는 페미니즘 진영에서 주로 인용하는 WEF의 성격차지수 115위의 반박 용도로 자주 언급되며, UN 통계이기에 다보스포럼 통계인 WEF에 비해 좀 더 공인성 높은 자료로 취급된다. 하지만 성격차지수가 통계 자체가 아니라 그 산출 방법과 각 국가별 상황에 따라 문제점을 가지며, 이 부분에서 UNPD 수치또한 예외가 아니다. 해당 지수의 차이는 통계 기관의 권위가 아니라 통계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어떤 지수가 어떤 지수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지수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한 해석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나, 오세라비는 "통계의 권위성"을 내세우며 내용 해석을 도외시하거나 무리수를 둔다.

우선 오세라비 자신이 직접 뉴스에서 근거로 제시한 통계 자료를 보더라도, 한국은 타 국가에 비해 유난히 청소년 출산률(15~19세 청소년 1000명 당 출산수)이 낮으며, 이것이 순위에 크게 반영되어 있다. 한국은 출산율 자체가 세계 최저 수준으로 유례가 없는 정도이며, 청소년 성교육과 성관계/미혼모 등에 인식과 복지가 극히 보수적인 사회환경이란 점은 반영되지 않고 단지 전체 청소년 내에서 출산이 일어나는 수만 반영되었을 뿐이다. 또한 영국이나 미국같은 선진국이 오히려 청소년 출산률이 높다. 원래 이 통계부분이 개발도상국의 조혼이나 이른 교육기회 박탈 등의 기본적 인권 침해 사안을 점검하기 위한 항목인 목적에 반하는 것. 또한 모성사망비(10만 명 당 산모 사망수)는 11로, 미국(14)보다는 낮으나 일본이나 비슷한 유럽국가들에 비해서는 또한 높은 수치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게 측정된 여성의원 비율은 글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여성의원 비율은 여성이 국가 핵심 권력인 입법권에 어느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느냐를 측정하는 지수로, 단순히 '사회진출'을 너머 핵심 권력에 어느정도로 접근해 있는지를 측정하는 수치이다.

오세라비는 이렇게 여러 조항의 해석상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기사 본문에서 다시금 이 수치 내에서 "자신의 주장(한국은 성평등 국가다)"에 유리한 부분만을 통계가 말해주는 양, 그러한 항목들을 아예 뺀 채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생식건강: 출산 10만명당 사망하는 여성의 수
여성권한: 중등교육 이상 교육받은 여성비율. 한국은 88.8%
노동참여: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 한국 50%

오세라비는 생식건강 항목에 포함되면서도 점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청소년 출산률 항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며, 단순히 절대치가 아니라 '남녀간 비율 격차'를 통해 점수를 매기는 중등 교육 이상 인구비율, 노동참여율에 대하여 "88.8%, 50%"라는 식으로 그 자체로 높은 점수를 얻은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 물론 기사 자체에 원자료를 첨부하고 있으므로, 통계를 확인하면 상세한 사항을 알 수 있지만, 그 소개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에 불리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또한 UNDP자료와는 상관없이 아래와 같은 내용을 언급한다.

여성전용 서비스 또한 매우 다양하다. 대략 꼽아도 여성전용주차장, 지하철 여성배려칸(부산지하철 1호선), 여성전용 암병원, 여성전용 흡연실(고속도로 휴게소 대부분), 여성기업전용공단(인천 남동공단) 등이 있다. 특히 서울시 경우 여성배려정책에는 압도적이다. 예를들어 근로여성임대아파트, 여성전용기숙사형주택, 여성 안심 콜택시 호출 서비스가 포함된 여성전용 ‘여행’ 스마트앱 보급, 최근들어 여성안심택배서비스 무인보관함을 서울시 전체 190곳에 설치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여성배려서비스 시행으로 짧은 기간내에 여성권한 강화를 구축한 셈이다. 각종 여성배려정책으로 말미암아 유엔개발계획 성평등 순위가 2014년(23위)보다 13단계 상승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의 성평등은 아시아 최고이며 세계 10위다. 명실상부한 성평등 실현 국가다.

이 여성 전용 주차장, 여성배려칸, 여성전용 암병원, 여성전용 흡연실, 근로여성임대아파트, 여성 안심 콜택시 호출 서비스 등의 편의 서비스는 UNPD가 집계하는 통계 내의 '생식건강', '여성권한', '노동참여'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애초에 이러한 선심성 여성우대책이 실질적으로 여성 인권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는 마당에, 이러한 정책이 "UNDP 통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는 것은 근거 없는 비약이다.

또한 이러한 정책이 정말로 성평등 지수를 개선시켰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계속하여 시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오세라비를 비롯한 여성차별주의자들은 이러한 정책의 폐지 혹은 축소를 주장하고 있으니, 그러면서도 이러한 것이 '여성 인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 수 업삳. 거기에 한국이 '통계상 명실상부한 성평등 실현 국가'라면, 통계상 1위 국가에 비해서는 '성평등이 덜 실현된 국가'인가? 모든 지수가 1:1로 동률이 나오지 않는 이상, 무엇이 과하고 부족한지에 대해서는 필수적으로 분석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오세라비는 이 분석 과정에서 통계 과정의 자의적인 취사선택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은 성평등 국가"라는 단정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을 "강단 페미니스트들은 WEF 자료를 인용하면서 UNDP 자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오세라비가 인터뷰 등에서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실에 대입해 보면, 오세라비는 분석이 필요한 자료를 그저 결과 수치만을 인용하며 이를 통해 '강단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비판하는 용도로만 쓰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자료의 취사 선택과 왜곡된 선전을 펼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입맛에 맞는 자료만 써먹는다며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데 사실은 그게 자기 모습이었던 것.

사실관계 미확인

위 기사에서 오세라비는 "여성부가 있는 나라는 한국과 뉴질랜드 뿐"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안티 페미니즘 주장 중 대표적인 오류이다. 여성부가 있는 나라

지식 보부상?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저자 오세라비 인터뷰 3탄 "레즈비어니즘이 깔려있다"

오세라비는 한국의 페미니즘 열풍이 레즈비어니즘이 깔린 서구권 래디컬 페미니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메갈리아 이후의 남성 혐오를 기존 강단 페미니스트들이 영페미라 공인해주는 '지적 태만'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녀가 주장하는 '레즈비어니즘이 깔린 래디컬 페미니즘'은 결국 프랑스·미국 등지에서 한때 나타났던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해설에 불과하며, 현재의 한국 페미니즘 풍토에 레즈비어니즘 영향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아무런 논증이 없다. 워마드를 비롯한 한국 래디컬 페미니즘 세력은 퀴어 혐오로 인해 레즈비언 커뮤니티와도 상당히 분리되어 있으며, 오히려 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라는 '4B'를 내세우며,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이 표방하던 '여성 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극단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메갈리아가 단순히 기존 페미니스트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오세라비의 주장과는 달리, 메갈리아 전후를 통하여 영 페미니스트들은 기존 강단 학자들의 '인정'을 받아서 활동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운동이나 조직을 만들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서적 출간, 강연 등을 통해 스스로의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6]

'소년들이 중성화되고 있다'는 오세라비의 주장에 대한 언급

또한 오세라비는 '소년들의 중성화'를 언급하나, 이는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의 2000년에 발행된 저서 <The War Against Boys>에서 주장한 내용[7][8]이다. 오히려 교육 현장에서는 인터넷 방송 등의 영향으로 갈수록 아이들의 통제가 어려워짐#을 호소하고 있으며, 극단화되는 청소년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더 엄중한 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말할 것도 없이, 10년 전만 하더라도 무분별한 체벌과 학생 인권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도 없는 각종 교칙들,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 등 한국의 학교 환경은 오히려 과도한 폭력성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소위 '남성적인 면을 가진 아이들'에 비해 '남성적이지 못한(소심한·심약한·나약한) 아이들'은 학교 폭력에 노출되는 문제가 있었다. 오세라비는 위에 말했듯 국참 계열의 정치계 외에는 아무런 경력을 인증한 적이 없으며, 아동학이나 교육학과는 정말로 아무런 인연이 없는 연구자이다. 과연 오세라비가 주장하는 '소년의 중성화'는 실제로 학교 현장과 청소년 성장에 대한 진지한 관찰과 경험에 의한 주장인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해외의 안티페미니즘·에쿼티 페미니즘 이론을 들여와서 전파하기만 하는 것일까?

이와 같이 오세라비는 '강단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도, 그 이론적 논증은 한국의 현 페미니즘이 아니라 이미 비판 검증이 이뤄진 '실패한 외국의 사례'에 집중하며, 스스로 전문성을 책임질 수 없는 영역을 '페미니즘 비판'을 위해 끌어들이고 있다. 이는 자신이 비판하는 '비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지적 태만'을 반복하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이러한 허술한 이론과 논증의 비약에 대하여, 재야 진화심리학 연구자인 이덕하는 스스로 페미니즘 비판서[9]를 출간한 경력이 있음에도, 오세라비의 책에 대해 '수준이 낮다'고 비판하며, 세부적으로 반박하는 내용을 자신의 카페에 연재하였다.

각주

  1. 래디컬 페미니즘은 남-녀의 이분법에 갇혀 다른 젠더를 배제하는 모습을 띤다. 역설적인 건, 미소지니와 성소수자 혐오를 위해 극우 세력이 똑같은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 완벽한 미러링
  2. 과거로 갈수록 남녀를 막론하고 여성의 꾸밈에 부정적이었다. 여성이 화장을 하는 것을 화류계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편견이 어르신들일수록 강한 것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모습을 여성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남자 어르신도 적지 않았다.
  3. 하이힐도 루이 14세가 자신의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해 신었다. 깔창의 원조 분명히 귀족·왕족 계층은 남녀를 불문하고 복장과 장식이 화려했다(이건 한반도의 삼국 시대 유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4. 이 주장에 맞추어 꾸밈이 여성 고유의 본능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게, 분명 남자들이 육체 노동에 많이 종사했으므로 남자에게 꾸밈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생겼을 수는 있겠지만, 평민이라면 여성이라고 노동을 안 하고 살았을 리가 없을텐데 평민 여성들 역시 자연히 꾸밈에 무뎌질 수밖에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5. * 링크의 기사는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에도 그대로 들어 있다.
  6. 이프북스에서 출간된 '근본 없는 페미니즘'은 워마드를 포함하여 이러한 움직임에 속한 사람들의 직접적인 자기 서술이며, 텀블벅 펀딩을 통해 출간된 권김현영 등의 '대한민국 넷페미史'는 한국의 페미니즘 대두가 여러 사건들이 거듭 중첩되어 일반계층에 확대되었음을 마찬가지로 연구자이자 당사자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이들 중 오세라비가 말하는 정희진 등 기존 여성학자의 '인증'을 받아 발언권을 획득한 사람은 없다.
  7. 저서에서 소머즈는 기존의 학교 교육이 한 곳에 앉아 차분하게 집중력을 유지하여야 하며, 이는 남성적인 영역의 미덕을 억제하며 여성에게 유리한 교육 방식이기에 남성의 학업 성적이 떨어지며 '문제아' 취급을 받는다 주장한다.
  8. 물론 이는 상당한 반발과 비판을 듣는 주장이다.
  9. '페미니스트가 매우 불편해할 진화심리학', 인벤션,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