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피터슨

조던 피터슨
Jordan Peterson
Jordan Peterson June 2018.jpg
2018년 6월 사진
인물 정보
출생 1962년 6월 12일 (62세)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
국적 캐나다
직업 임상심리학자, 저술가

조던 번트 피터슨(Jordan Bernt Peterson, 1962년 6월 12일~ )는 캐나다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저술가다. 주로 젊은 남성층의 지지를 받고있다.[1]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세지(2018년)

소개[편집 | 원본 편집]

피터슨은 페미니즘, 무신론을 비판하는 편이며 어투가 신중한 편이다. 대한민국에는 주로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자료가 많이 번역되어 있지만 사실 다른 주제도 다루고 있다. 종교적인 (기독교적인) 면이 많이 가지고 있는 학자이다.

원래 피터슨은 청년기에 좌파였지만 좌파에 환멸을 느껴 우파로 전향했다. 이는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가 70년대에는 래디컬 페미니스트였다가 환멸을 느껴 우파 페미니스트로 전향한 계기와 같다.[2]

조던 피터슨이 극우가 아니라고 변호하는 지지자들은 사형제를 반대하고 빈자를 위한 복지정책과 의료보험의 사회화 지지, 동성결혼 지지, 대마초 합법화 지지를 내세우고 있는데 서유럽의 우파~극우들 중엔 이미지메이킹을 목적으로 사형제 반대나 친성소수자 성향을 띠기도 하며, 부유층이 아닌 백인이나 남성 대중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오히려 중도우파나 심지어 중도좌파보다 사회보장을 지향하기 때문에 극우가 아니라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3] 다만 피터슨은 도널드 트럼프헤이르트 빌더르스 같은 포퓰리스트와는 언행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조던 피터슨은 자신은 보수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평상시 그는 개인의 책임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보수주의의 입장인데도 포퓰리즘을 목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4]

성향[편집 | 원본 편집]

문화적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대안 우파 성향이다. 종교주의 성향도 있다.

물론 조던 피터슨은 자기가 대안 우파 혹은 극우파가 아니라고 하지만 대안 우파들의 상징인 개구리를 사용하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는 문화마르크스주의라고 한 것을 보면 그가 대안 우파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해 거부
  • 그는 ‘전통적 가족관’을 중요시 한다.
  • 포스트모더니즘마르크스주의와 동일시하고 문화마르크스주의를 주장[5]
    • 이는 조던 피터슨이 빼도 박도 못할 대안우파에 불과하다는 결정적인 증거이지만 나무위키에서는 절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 지구온난화 부정
  • Bill C-16이 트랜스젠더를 배려하는 인칭대명사를 부르지 않으면 처벌하는 법률이라고 거짓선동하며 유튜브를 통해 가짜뉴스를 살포
  • 서열과 위계질서 옹호[6]
  • 남녀 임금차 문제에 대해 절대 차별이 아니라며 워커홀릭이 소수의 남성에 몰려있어 그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한다.
  • 페미니즘페미나치로 일반화
  • 대놓고 "I`m a Proud ISLAMAPHOBE"라고 이슬람혐오 티셔츠를 입은 팬과 기념사진을 찍은 적이 있음.[7][8]
  • 칼 융의 이론 지지
  • 체제 비판보다 자기 성찰 지지
  • 엄벌주의
  • 남녀 차이가 있다고 하면서 워마드와 똑같이 이성을 부정적으로 설명[9]
  • 무신론이 헛된 것이라면서 전제주의 변증론[10]을 주장함
  • 불평등이 숙명이라고 하면서 가재를 예시로 들었고 불평등이 순기능한다고 설명[11]
  • 사회의 책임을 무시하고 개인의 책임'만'을 강조
  •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도 free speech로 보장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을 비난한 이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 협박한 전적이 있음.[12][13]
  • 금욕주의
    • 야동, 성매매를 반대[14]
  • '기업가 정신'을 옹호하며 그것을 진보주의라고 표현.[15]
  • 미소지니적 신화관[16]
  • 기독교가 서구문명의 바탕이라고 주장하며 '매우 위험한 포스트모던 좌파'들에 의해 기독교 문명이 근본적으로 위협당하고 있다고 주장.[17]

좋게 표현하면 미국판 김난도[18]고 나쁘게 말하면 "친근한 파시즘" 그 자체이다.

옹호자들에 대한 비판[편집 | 원본 편집]

조던 피터슨 옹호자들은 조던 피터슨이 진정성이 있는 학자이고 그를 비난하는 측이 매우 편협하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조던 피터슨이 타칭 신좌파의 레퍼토릭을 비판하는 방식은 대안우파가 써먹는 체리피킹으로 상대의 약점을 지적하는 수법이다. 과거 신우파처럼 거짓말을 대놓고 하는 것보다 상대의 사실적인 약점을 지적하는 것이 진정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에 지지자를 얻을 수가 있다.

모든 신좌파가 조던 피터슨 말과 달리 여성우월주의, 흑인우월주의, 에코파시즘, 이슬람주의같은 또 다른 우파에 빠진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신좌파 전체를 역차별을 조장하고 서양을 멸망시키려는 악의 집단이라는 레퍼토릭을 퍼트리고 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이 거짓이 아닌 체리피킹된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청중자 입장에서는 그 것이 마치 진정성이 있어 보이는 것이다.

신우파, 대안우파 인사들이 순수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수전 조지가 저술한 《하이재킹 아메리카》에서는 이들은 우경화를 위해 정부와 기업의 후원을 받는 변호사라고 나와있다.

박가분조던 피터슨이 좌파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리얼뉴스 기사에서 조던 피터슨에 대해서는 지적으로 흥미롭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성공하는 이유가 교조화된 통념에 대한 통렬한 이의제기를 주류 신좌파가 아닌 대안우파가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가분이 주류 신좌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좋았지만 신우파가 40년동안 해오던 선동때문에 대안우파가 생겼다는 것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아이러니하게도 조던 피터슨의 집에 소련 상징화가 많다.[19]
  • 2019년 4월 19일에 슬라보예 지젝과 토론에서 피터슨이 패배했다.말이 패배지 그냥 개쳐발린거다. 이를 본 대안우파는 지젝이 우위에 있던 토론 정도로 축소하거나, 둘 다 별로였다고 물타기하거나 피터슨의 준비 부족으로 일축하고 있다.
  • 해외 중도좌파 언론과 달리 국내 중도좌파 언론들은 극우파인 피터슨을 중립적으로, 심지어 부분적으로 긍정평가하는 내용으로 보도한 경우가 많다.(경향기사[20], 한겨레기사) 이는 한국에 제대로된 '진보'언론이 '전혀' 없다는 반증이다.[21] 한국 내 신우파대안우파의 궤변과 달리 친북과 반서방주의는 진보라고 할 수 없기에 사실상 한국에서는 나름 중도좌파적이라고 평가받는 경향신문, 한겨레신문의 성향이 영미의 중도좌파 언론인 New York Times, The Guardian보다 훨씬 더 우파적인 성향을 띠는 셈이다.[22]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외부 참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나무위키에서는 다른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도 그를 지지한다고 쓰여있지만 젋은 남성층과 같은 수치가 아니다. 게다가 대안우파 인사와 지지자들 중에서 주류 신좌파가 옹호하는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 의외로 있으며 이는 과거 흑인보수주의자의 심리와 다를 바가 없다. 조던 피터슨 지지자의 정체성을 보고 그가 대안우파가 아니라는 근거가 되지가 않는다.
  2. 이는 알랭 소랄과 데이비드 호로위츠(David Horowitz)가 우파로 전향한 것과 같다. 조던 피터슨은 조지 오웰의 소설을 읽고 좌파에 환멸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지 오웰의 《1984》는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를 풍자한 것이지 좌파나 사회주의가 아니다.기독교 우파가 범하는 전형적인 오류이다.
  3. 참고로 마린 르 펜은 아버지와 달리 상대적으로 친성소수자 성향이 있지만 극우 성향이다. 물론 정치적 핑크워싱을 위한 수작일 뿐이고 국민전선은 여전히 프랑스 주요정당들 중에 성소수자 권리 이슈에 소극적이거나 호모포비아적이다.
  4. 발언 출처
  5. 정작 테리 이글턴 같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반자본주의 투쟁을 와해시킨 사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슬라보예 지젝도 또라이 같은 음모론이라고 비판했다.
  6. 이건 피터슨이 (적어도 서구권 기준에선) 빼박 극우 파시스트라는 반증인데, 자본주의로 인한 재산적 계층이 아니라 아예 위계질서와 서열을 옹호한다. 이게 국내에선 이런 극우 주장이나 생각이 너무 흔해빠져서 극우라고 인식못하는데, 피터슨의 주장은 알렉산드르 두긴같은 파시스트나 할 소리다.
  7. New Zealand Retailer Pulls Jordan Peterson Book after Mosque Shootings
  8. 피터슨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뭐가 적힌지 몰랐다고 개소리하는데 저 정도 글씨 크기라면 사진 찍기 전에 못 알아챘을리가 없다.
  9. 피터슨은 남성이 폭력성향이 강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매스큘리즘 입장에서는 까이는 것이고 컬처럴 페미니스트의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 컬처럴 페미는 래디컬 페미와 연관되어 있다.
  10. 기독교가 인간의 이성의 바탕이라는 변증론이다.
  11. 가재드립은 전공자, 메이저 진화심리학자들에게 탈탈 털린지 오래이며 SJW가 아닌 대부분의 양웹에서도 조롱거리로 소비되고 있다.
  12.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8/mar/23/jordan-peterson-rage-self-help-guru-cathy-newman-twitter
  13. 피터슨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가 순수한 의도아 아님을 알 수 있다.
  14. 단순히 야동, 성매매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성욕을 제한하는 발언을 수도 없이 했다. 이는 한국 주류페미를 이루고 있는 안티 포르노 페미니스트와 별 다를거 없는 입장이다.
  15. https://youtu.be/vUgr_CMi2J8 이 동영상의 2분 23초부터 피터슨이 "기업가적인 성향은 보수주의와 거리가 멀고 진보적인 경향이 있다" 라고 발언했다.
  16. 성 게오르기우스 신화는 대표적인 기독교 신화인데 여기서 용은 대자연(Mother Nature)를 상징한다. 여성을 상징하는 대자연을 혼돈으로 정의하고 남성을 상징하는 성 게오르기우스가 그것을 물리쳐서 질서를 유지한다는 것인데 스티브 테일러도 이를 여성혐오적이라고 주장했다.
  17. 현대 서구문명은 기독교에만 바탕을 두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현대 사회 서양문명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자유주의와 계몽주의에 직접적 영향을 준 것은 제제백가사상,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로마 문명이다. 이게 왜 극우적 이중잣대인가 하면 정체성 정치를 부정하면서 서구문명을 기독교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수호해야한다는 식의 주정이기 때문이다. 즉 피터슨은 단문화주의적 정체성 정치를 한다고 볼 수 있다.
  18.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꼰대스러운 책을 서술한 그 사람 맞다.
  19. https://frieze.com/article/whos-real-ideologue-jordan-petersons-communist-art-collection
  20. 특히 경향신문 기사가 굉장히 가관인게 피터슨과 지젝의 논쟁은 양웹 전반적 분위기 뿐 아니라 대안우파인 나무위키조차도 피터슨이 개발린거라고 보고 있는데도 "지제크와 피터슨 가운데 누가 이겼는지, 누가 실망스러웠는지, 누구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었는지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토론이 토론을 낳는 경우라 해야겠다."라고 개소리하고 있다. 경향신문이 나무위키보다 더 우파
  21. 대안우파들은 과거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메갈리아에 있어 언더도그마적 입장을 취한 것만 체리피킹해서 급진좌파인것처럼 개선동을 하는데 서구권에서는 여러 사건 이후로 2019년 현재는 New York Times, The Guardian 같은 중도좌파 언론도 피터슨을 극딜하는게 현실이다.
  22. 친서방(친미, 친일)과 혐북/혐중/혐러를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친노동, 진보, 사회민주적이며 친소수자 성향을 띤다면 절대 우파적이라고 할 수 없다. 반대로 반서방과 친북/친중/친러를 하는 것도 그것이 더 진보적인 관점이라고 절대 볼 수 없다. 좌우 스펙트럼은 특정 국가나 문명에 대한 찬반 여부가 아니다. 다니엘 튜더 등 서구 외국인이 국내에서 좌우개념이 독특하게 자리잡았다고 하는 이유는 한국의 좌우파개념은 애초에 제대로된 좌우파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경향신문, 한겨레가 진보언론이였으면 극우논객을 중립적으로 평가하는거 자체가 말이 안 된다.
  23. 조던 피터슨은 대표적인 현대의 컬처럴 맑시즘 음모론자이다.
  24. 온갖 왜곡된 선동들로 학계에서 비판을 받았고 지젝과의 대담 이후 대중성은 그대로 유지할지 몰라도 사실상 학계에서는 거의 매장되었다. Currentaffairs 기사에서 케임브리지 정치학과 교수는 피터슨을 학부생 수준으로 묘사했다. 국부론 한 권 읽고 자본주의 비판한답시고 깝치는 마르크스주의자에서 성향만 바꾼 버전이라는 비유도 많이 나온다.
  25. 양웹에서는 피터슨이 쳐발렸다거나 논문 빡세게 디펜스하는 지젝교수와 탈탈탈 털리는 피터슨대학원생 이라는 반응이 압도적인 식으로 지젝의 승리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