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도 낚싯배 침몰 사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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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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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발생한 [[돌고래호 전복 사고]]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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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 낚싯배 침몰 사고는 {{날짜/출력|2017-12-3}} 오전 6시 9분,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 진두항을 출항하여 목적지로 항해중이던 9.7톤급 소형 선박인 선창 1호가 항구에서 남방으로 약 1.6 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336톤급 급유선인 명진 15호와 충돌한 후 침몰한 사고이다.
영흥도 낚싯배 침몰 사고는 [[2017년]] [[12월 3일]] 오전 6시 9분,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 진두항을 출항하여 목적지로 항해중이던 9.7톤급 소형 선박인 선창 1호가 항구에서 남방으로 약 1.6 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336톤급 급유선인 명진 15호와 충돌한 후 침몰한 사고이다.


==사고 경과==
==사고 경과==
; 12월 3일
; 12월 3일
: 오전 6시 : 출항 허가를 받은 선창 1호가 진두항을 출항하여 항해를 시작하였다.<ref>출항 허가는 오전 5시 55분에 내려졌다.</ref>
: 오전 6시 : 출항 허가를 받은 선창 1호가 진두항을 출항하여 항해를 시작하였다.<ref>출항 허가는 오전 5시 55분에 내려졌다.</ref>
: 오전 6시 9분 : 남방으로 항해를 하던 선창 1호가 진두항에서 약 1.6 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명진 15호와 충돌 후 침몰하였다.
: 오전 6시 5분 : 남방으로 항해를 하던 선창 1호가 진두항에서 약 1.6 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명진 15호와 충돌 후 침몰하였다.(항무인천 보고) <ref>[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559738&pDate=20171206 사고 직후 위치 파악하고도…VTS 기록서 드러난 구멍들], JTBC, 2017.12.06.</ref>
: 오전 6시 8분 : 항무인천에서 경비정으로 사고 통보
: 오전 6시 9분 : 해경 신고전화 접수
: 오전 6시 13분 : 신고를 접수한 인천해경은 사고지점과 가장 가까운 영흥도 파출소에 고속단정 출동을 지시하였다.
: 오전 6시 13분 : 신고를 접수한 인천해경은 사고지점과 가장 가까운 영흥도 파출소에 고속단정 출동을 지시하였다.
: 오전 6시 26분 : 사고 직후 바다로 떨어져 표류하던 승객 4명이 명진 15호 선원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 오전 6시 26분 : 사고 직후 바다로 떨어져 표류하던 승객 4명이 명진 15호 선원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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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5일
; 12월 5일
: 오전 9시 40분 : 인천해경은 영흥도 해변에서 선창 1호의 탑승자로 추정되는 실종자 1명을 발견하여 수습했다고 밝혔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05/0200000000AKR20171205058100065.HTML?input=1195m 인천 영흥도 해상서 시신 1구 발견…신원 확인 중], 연합뉴스, {{날짜|2017-12-5}}</ref> 발견된 실종자의 신원은 선창 1호 선장으로 확인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05/0200000000AKR20171205070400065.HTML?input=1195m 영흥도 갯벌서 선창1호 선장 시신 발견…아들이 확인], 연합뉴스, {{날짜|2017-12-5}}</ref>
: 오전 9시 40분 : 인천해경은 영흥도 해변에서 선창 1호의 탑승자로 추정되는 실종자 1명을 발견하여 수습했다고 밝혔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05/0200000000AKR20171205058100065.HTML?input=1195m 인천 영흥도 해상서 시신 1구 발견…신원 확인 중], 연합뉴스, [[2017년]] [[12월 5일]]</ref> 발견된 실종자의 신원은 선창 1호 선장으로 확인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05/0200000000AKR20171205070400065.HTML?input=1195m 영흥도 갯벌서 선창1호 선장 시신 발견…아들이 확인], 연합뉴스, [[2017년]] [[12월 5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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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원인==
==사고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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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시 선창 1호는 정상적으로 해경의 출항 허가를 받았으며, 승선 정원인 22명을 준수하였으므로 출항 과정에서 뚜렷한 법적인 하자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당시 선창 1호는 정상적으로 해경의 출항 허가를 받았으며, 승선 정원인 22명을 준수하였으므로 출항 과정에서 뚜렷한 법적인 하자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애초에 [[영흥대교]]쪽 수로는 영흥대교의 교각 사이 폭이 겨우 200m정도에 불과한 협수로인지라 소형선박 이외에는 사실상 통항이 제한되는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300톤이 넘는 중형선박인 명진15호가 이쪽 수로로 들어온 것 자체가 무리한 운항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이쪽 항로를 이용할 경우 인천항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서쪽의 중대형선박용 항로인 약 영흥도-자월도 사이 항로에 비해 15~30분정도 줄어들기는 하지만 워낙 수로가 좁아터진데다 곳곳이 뻘밭이어서 만조시간대 이외에는 운항 자체가 제한됨에도 불구하고 여기로 들어온 것 자체가 무리한 운항이었던 것.


==인명 피해==
==인명 피해==
생존자 7명중 4명은 사고 직후 바다로 튕겨져나가 표류하였고, 사고 직후 현장에서 구조에 나선 명진 15호의 선원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나머지 3명은 천만다행으로 전복된 선창 1호 내부에 형성된 에어포켓<ref>선창 1호의 재질이 강화플라스틱이라서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동안 바다위에 떠있을 수 있었고, 내부에 에어포켓이 형성되기에 유리한 조건이었다.</ref>을 통해 호흡을 유지하면서 해경 수중구조대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에어포켓 내부의 생존자들은 휴대전화를 통해 해경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렸다고 한다.<ref>[http://news.donga.com/3/all/20171205/87581888/1 차디찬 바닷물 목까지 차올라… “말 그만해, 산소 없어져”], 동아일보, {{날짜|2017-12-5}}</ref>
생존자 7명중 4명은 사고 직후 바다로 튕겨져나가 표류하였고, 사고 직후 현장에서 구조에 나선 명진 15호의 선원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나머지 3명은 천만다행으로 전복된 선창 1호 내부에 형성된 에어포켓<ref>선창 1호의 재질이 강화플라스틱이라서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동안 바다위에 떠있을 수 있었고, 내부에 에어포켓이 형성되기에 유리한 조건이었다.</ref>을 통해 호흡을 유지하면서 해경 수중구조대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에어포켓 내부의 생존자들은 휴대전화를 통해 해경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렸다고 한다.<ref>[http://news.donga.com/3/all/20171205/87581888/1 차디찬 바닷물 목까지 차올라… “말 그만해, 산소 없어져”], 동아일보, [[2017년]] [[12월 5일]]</ref>


인양된 사망자들은 총 13명으로 인명피해가 컸는데, 해상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6명중 2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였고, 선창 1호 내부에서 발견된 14명중 생존자 3명을 제외한 11명은 저체온증 혹은 익사가 사망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명진 15호와 선창 1호의 체급차이가 워낙 심하였기 때문에 충돌시 충격으로 객실 내부에서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이 기절하는 등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바닷물이 객실내로 흘러들어와 미쳐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경은 사망자들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인양된 사망자들은 총 13명으로 인명피해가 컸는데, 해상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6명중 2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였고, 선창 1호 내부에서 발견된 14명중 생존자 3명을 제외한 11명은 저체온증 혹은 익사가 사망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명진 15호와 선창 1호의 체급차이가 워낙 심하였기 때문에 충돌시 충격으로 객실 내부에서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이 기절하는 등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바닷물이 객실내로 흘러들어와 미쳐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경은 사망자들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사망자와 생존자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은 밤샘 수색작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었으나 12월 5일 오전 영흥도 해변에서 실종상태였던 선창 1호의 선장이 발견되고 같은 날 오후 12시 5분 마지막 실종자였던 이모씨의 시신이 사고 지점으로부터 남서방 2.2㎞지점에서 수색중이던 헬기에 의해 발견되면서 사망 15명, 생존 7명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사고 당일 발견되지 않은 나머지 2명은 12월 5일 오전 영흥도 해변에서 실종상태였던 선창 1호의 선장이 발견되고 같은 날 오후 12시 5분 마지막 실종자였던 이모씨의 시신이 사고 지점으로부터 남서방 2.2㎞지점에서 수색중이던 헬기에 의해 발견되면서 사망 15명, 생존 7명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문제점==
===무리한 협수로 운항===
선창 1호를 들이받은 명성 15호가 운항한 [[영흥대교]]쪽 수로는 영흥대교의 교각 사이 폭이 겨우 200m정도에 불과한 협수로인지라 소형선박 이외에는 사실상 통항이 제한되는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300톤이 넘는 중형선박인 명진15호가 이쪽 수로로 들어온 것 자체가 근본적인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쪽 항로를 이용할 경우 인천항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서쪽의 중대형선박용 항로인 약 영흥도-자월도 사이 항로에 비해 15~30분정도 줄어들기는 하지만 워낙 수로가 좁아터진데다 곳곳이 뻘밭이어서 만조시간대 이외에는 운항 자체가 제한됨에도 불구하고 여기로 들어온 것 자체가 무리한 운항이었던 것.<ref>[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822203.html “사고난 곳, 수로 좁아 급유선 운항 자제” 2년전 경고 있었다], 한겨레신문, [[2017년]] [[12월 5일]]</ref> 이 해역에 중형급 이상 선박의 운항을 자제하라는 권고가 있지만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말 그대로 권고사항일 뿐이어서 운항거리를 단축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선박들은 이 협수로를 통과했다고 한다.
 
===해경의 초동대처===
사고 발생후 해경에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매우 빠른 편이었고, 초동대처를 위해 가장 가까운 거리의 해양경찰 소속 영흥파출소에 긴급출동 지시가 하달되었으나, 초기 구조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고속단정의 출발 과정에서 다소간 시간이 지체되어 골든타임을 놓친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다.<ref>[http://news.jtbc.joins.com/html/037/NB11559037.html CCTV에 잡힌 해경 고속단정 '허둥지둥 늑장 출동'], JTBC, [[2017년]] [[11월 5일]]</reF> 해경측은 해당 비판에 대해 고속단정의 야간항법장치 미비 및 영흥도 파출소 소속 고속단정은 전용 부두가 아닌 어항에 정박하는 관계로 결박된 어선들과 연결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영흥파출소에 긴급출동 지시는 6시 13분에 내려졌으나, 실제로 파출소 소속 고속단정이 사고해역에 도착한 시각은 약 30분이 지난 6시 42분이므로 출동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낭비로 희생자가 늘어났을 개연성이 높다.
 
또한 당시 무전상황은 녹음되지 않아서 책임회피 논란이 일었고, 해경은 바뀐 규정에 따른 조치였다고 해명했으나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미숙한 초동대처로 많은 비판을 받고도 여전히 바뀐게 없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부실한 낚시용 선박 관리체계===
이번 사고와 유사한 [[돌고래호 전복 사고]] 역시 10톤 미만의 소형 어선을 개조한 낚싯배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소형 낚싯배는 어선을 개조하여 비수기 수익보전 차원에서 영업하는 경우가 많고, 신고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안전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선장의 음주운항이라던가, 탑승자들의 구명조끼 미착용, 좋은 낚시 포인트를 선점하기위한 무리한 운항 등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어서 보다 근본적인 낚싯배 관리가 요구되는 실정이다.<ref>[http://www.jnilbo.com/read.php3?aid=1512486000537522332 낚싯배 안전불감증… 인천 참사 남일 아니다], 전남일보, [[2017년]] [[12월 6일]]</ref>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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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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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17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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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7일 (목) 04:09 기준 최신판

사건 정보
날짜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도 인근 해상
장소 2017년 12월 3일
원인 급유선과 해상 충돌
인명피해 사망 : 15명
생존 : 7명

개요[편집 | 원본 편집]

2015년 발생한 돌고래호 전복 사고의 반복.

영흥도 낚싯배 침몰 사고는 2017년 12월 3일 오전 6시 9분,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 진두항을 출항하여 목적지로 항해중이던 9.7톤급 소형 선박인 선창 1호가 항구에서 남방으로 약 1.6 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336톤급 급유선인 명진 15호와 충돌한 후 침몰한 사고이다.

사고 경과[편집 | 원본 편집]

12월 3일
오전 6시 : 출항 허가를 받은 선창 1호가 진두항을 출항하여 항해를 시작하였다.[1]
오전 6시 5분 : 남방으로 항해를 하던 선창 1호가 진두항에서 약 1.6 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명진 15호와 충돌 후 침몰하였다.(항무인천 보고) [2]
오전 6시 8분 : 항무인천에서 경비정으로 사고 통보
오전 6시 9분 : 해경 신고전화 접수
오전 6시 13분 : 신고를 접수한 인천해경은 사고지점과 가장 가까운 영흥도 파출소에 고속단정 출동을 지시하였다.
오전 6시 26분 : 사고 직후 바다로 떨어져 표류하던 승객 4명이 명진 15호 선원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오전 6시 42분 : 영흥도에서 출동한 해경 고속단정이 사고해역에 도착하였다.
오전 7시 1분 : 문재인 대통령은 위기관리비서관으로부터 사고 상황을 보고받고 대책을 지시하였다.
오전 7시 17분 : 평택에서 출발한 평택해경 소속 수중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여 선박 내부 수색을 시작하였다.
오전 7시 42분 : 기상 상황으로 출동이 지연되었던 해경소속 구조헬기가 사고해역에 도착하였다.
오전 7시 43분 : 수중 구조대에 의해 선창 1호 내부에 형성된 에어포켓에서 버티던 생존자 3명이 구조되었다.
오전 9시 6분 : 이 시각까지 선창 1호 탑승자 22명중 총 7명의 생존자와 13명의 사망자가 구조/인양되었다. 나머지 2명은 실종상태.
12월 4일
오전 5시 40분 : 3일 오후부터 인양작업이 진행되어 바지선에 올려진 선창 1호가 인천해경 부두에 도착하였다.
12월 5일
오전 9시 40분 : 인천해경은 영흥도 해변에서 선창 1호의 탑승자로 추정되는 실종자 1명을 발견하여 수습했다고 밝혔다.[3] 발견된 실종자의 신원은 선창 1호 선장으로 확인되었다.[4]
오후 12시 5분 : 마지막 실종자인 이모씨의 시신이 수색작업에 참가한 헬기에 의해 발견되었다.[5]

사고 원인[편집 | 원본 편집]

사고원인을 조사중인 인천해경은 명진 15호의 선장 전모씨와 갑판원 김모씨 등 2명에 대하여 업무상과실치사상 협의로 입건하여 체포하였다. 해경 조사에 따르면 선장 전씨는 충돌 직전 선창 1호를 발견하였으며 대형 선박인 명진 15호의 존재를 알아보고 알아서 피해갈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또한 사고 해역이 평소에도 조류가 빠른 협수로였고, 사고 당시 명진 15호의 속력이 상당히 빠른 13노트 수준으로 파악되어 앞서가던 선창 1호에 대해 추월의사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고 그대로 항해도중 선창 1호를 충격하였고, 체급 차이로 인해 선창 1호는 순식간에 전복되어 침몰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사고 당시 선창 1호는 정상적으로 해경의 출항 허가를 받았으며, 승선 정원인 22명을 준수하였으므로 출항 과정에서 뚜렷한 법적인 하자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명 피해[편집 | 원본 편집]

생존자 7명중 4명은 사고 직후 바다로 튕겨져나가 표류하였고, 사고 직후 현장에서 구조에 나선 명진 15호의 선원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나머지 3명은 천만다행으로 전복된 선창 1호 내부에 형성된 에어포켓[6]을 통해 호흡을 유지하면서 해경 수중구조대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에어포켓 내부의 생존자들은 휴대전화를 통해 해경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렸다고 한다.[7]

인양된 사망자들은 총 13명으로 인명피해가 컸는데, 해상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6명중 2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였고, 선창 1호 내부에서 발견된 14명중 생존자 3명을 제외한 11명은 저체온증 혹은 익사가 사망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명진 15호와 선창 1호의 체급차이가 워낙 심하였기 때문에 충돌시 충격으로 객실 내부에서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이 기절하는 등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바닷물이 객실내로 흘러들어와 미쳐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경은 사망자들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사고 당일 발견되지 않은 나머지 2명은 12월 5일 오전 영흥도 해변에서 실종상태였던 선창 1호의 선장이 발견되고 같은 날 오후 12시 5분 마지막 실종자였던 이모씨의 시신이 사고 지점으로부터 남서방 2.2㎞지점에서 수색중이던 헬기에 의해 발견되면서 사망 15명, 생존 7명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문제점[편집 | 원본 편집]

무리한 협수로 운항[편집 | 원본 편집]

선창 1호를 들이받은 명성 15호가 운항한 영흥대교쪽 수로는 영흥대교의 교각 사이 폭이 겨우 200m정도에 불과한 협수로인지라 소형선박 이외에는 사실상 통항이 제한되는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300톤이 넘는 중형선박인 명진15호가 이쪽 수로로 들어온 것 자체가 근본적인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쪽 항로를 이용할 경우 인천항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서쪽의 중대형선박용 항로인 약 영흥도-자월도 사이 항로에 비해 15~30분정도 줄어들기는 하지만 워낙 수로가 좁아터진데다 곳곳이 뻘밭이어서 만조시간대 이외에는 운항 자체가 제한됨에도 불구하고 여기로 들어온 것 자체가 무리한 운항이었던 것.[8] 이 해역에 중형급 이상 선박의 운항을 자제하라는 권고가 있지만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말 그대로 권고사항일 뿐이어서 운항거리를 단축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선박들은 이 협수로를 통과했다고 한다.

해경의 초동대처[편집 | 원본 편집]

사고 발생후 해경에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매우 빠른 편이었고, 초동대처를 위해 가장 가까운 거리의 해양경찰 소속 영흥파출소에 긴급출동 지시가 하달되었으나, 초기 구조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고속단정의 출발 과정에서 다소간 시간이 지체되어 골든타임을 놓친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다.[9] 해경측은 해당 비판에 대해 고속단정의 야간항법장치 미비 및 영흥도 파출소 소속 고속단정은 전용 부두가 아닌 어항에 정박하는 관계로 결박된 어선들과 연결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영흥파출소에 긴급출동 지시는 6시 13분에 내려졌으나, 실제로 파출소 소속 고속단정이 사고해역에 도착한 시각은 약 30분이 지난 6시 42분이므로 출동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낭비로 희생자가 늘어났을 개연성이 높다.

또한 당시 무전상황은 녹음되지 않아서 책임회피 논란이 일었고, 해경은 바뀐 규정에 따른 조치였다고 해명했으나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미숙한 초동대처로 많은 비판을 받고도 여전히 바뀐게 없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부실한 낚시용 선박 관리체계[편집 | 원본 편집]

이번 사고와 유사한 돌고래호 전복 사고 역시 10톤 미만의 소형 어선을 개조한 낚싯배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소형 낚싯배는 어선을 개조하여 비수기 수익보전 차원에서 영업하는 경우가 많고, 신고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안전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선장의 음주운항이라던가, 탑승자들의 구명조끼 미착용, 좋은 낚시 포인트를 선점하기위한 무리한 운항 등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어서 보다 근본적인 낚싯배 관리가 요구되는 실정이다.[10]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