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 두 판 사이의 차이

잔글 (봇: 자동으로 텍스트 교체 (-\[\[(File|file): +[[파일:))
 
(사용자 10명의 중간 판 21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토막글}}
[[파일:역사는 반복된다.gif|섬네일|"역사는 반복된다."<br />(History repeats itself)]]
[[File:Download_2015_12_22_22_52_40.gif|400px]]
영미권의 [[관용구]]로, [[역사]]의 순환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역사의 순환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del>[[폴아웃 시리즈|War, war never changes]]</del>


== 개요 ==
{{인용문|역사라는 책은, 그 두께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페이지로 되어 있다.|[[조지 고든 바이런]]}}
{{인용문|역사라는 책은, 그 두께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페이지로 되어 있다.|[[조지 고든 바이런]]}}
같은 역사가 반복된다는 역사의 순환성(Historic recurrence)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폴리비우스]]부터가 우주란 같은 역사를 돌고 도는 것이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서양 철학의 관념에 있어서 발전론(역사는 전진한다.)과 순환론은 돌아가며 주류를 차지해 왔는데, 사실 이것부터가 순환성을 보여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르네상스]]부터가 "고대 그리스 등의 과거에서 배우자"는 운동이었고, 이 시기를 거쳐 다시 [[계몽주의]]와 [[모더니즘]]의 발전론 시기가 왔으며, 모더니즘이 한계에 달하자 다시 [[포스트 모더니즘]]이 대두하는 것 역시 순환적 현상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인용문|국가가 과거로부터 무언가 배우는 일은 흔치 않다. 게다가 그 배움으로 올바른 결론을 얻는 일은 더욱 흔치 않다.|[[헨리 키신저]]}}
{{인용문|국가가 과거로부터 무언가 배우는 일은 흔치 않다. 게다가 그 배움으로 올바른 결론을 얻는 일은 더욱 흔치 않다.|[[헨리 키신저]]}}


== 개요 ==
== 두 개의 시각 ==
'''History repeats itself.'''또는 '''Historic recurrence'''
역사의 순환성에 대한 시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 첫 번째는 역사상의 큰 사건들이 정말 순환적으로 일어난다고 보는 시각으로, 이는 주로 국가나 사상, 체제의 흥망성쇠를 일반화 혹은 공식화하려는 이들이 선호하는 종류의 시각이다.
 
{{인용문|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카를 마르크스]]}}
 
 
* 두 번째는 역사의 교훈을 강조하려는 시각이다. 즉,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면 같은 일이 그대로 반복되리라는 경고를 위해 역사의 순환성을 언급하는 경우라 말할 수 있다.
 
{{인용문|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아갈 수밖에 없다|작자미상}}


서양 [[속담]] 혹은 [[격언]] 중 하나. 역사의 순환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del>[[폴아웃 시리즈|War, war never changes]]</del>


== 사례 ==
== 같이 보기 ==  
* [[제 1차 세계 대전]] - [[제 2차 세계대전]]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 유럽의 유대인 혐오 - [[나치]] - [[네오 나치]]를 위시한 제노포비아성 행위
* 세계 곳곳에 등장하는 [[독재자]]들.


== 유사한 항목 ==  
== 여담 ==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 이와는 별도로, 패션이나 유행은 정말로 역사를 반복한다. [[복고풍]], [[레트로패션]] 등이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각주}}
{{각주}}
[[분류:속담]]
[[분류:속담]]
[[분류:역사]]
[[분류:역사]]

2022년 8월 29일 (월) 00:59 기준 최신판

"역사는 반복된다."
(History repeats itself)

영미권의 관용구로, 역사의 순환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역사의 순환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War, war never changes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역사라는 책은, 그 두께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페이지로 되어 있다.
조지 고든 바이런

같은 역사가 반복된다는 역사의 순환성(Historic recurrence)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폴리비우스부터가 우주란 같은 역사를 돌고 도는 것이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서양 철학의 관념에 있어서 발전론(역사는 전진한다.)과 순환론은 돌아가며 주류를 차지해 왔는데, 사실 이것부터가 순환성을 보여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르네상스부터가 "고대 그리스 등의 과거에서 배우자"는 운동이었고, 이 시기를 거쳐 다시 계몽주의모더니즘의 발전론 시기가 왔으며, 모더니즘이 한계에 달하자 다시 포스트 모더니즘이 대두하는 것 역시 순환적 현상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국가가 과거로부터 무언가 배우는 일은 흔치 않다. 게다가 그 배움으로 올바른 결론을 얻는 일은 더욱 흔치 않다.
헨리 키신저

두 개의 시각[편집 | 원본 편집]

역사의 순환성에 대한 시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 첫 번째는 역사상의 큰 사건들이 정말 순환적으로 일어난다고 보는 시각으로, 이는 주로 국가나 사상, 체제의 흥망성쇠를 일반화 혹은 공식화하려는 이들이 선호하는 종류의 시각이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카를 마르크스


  • 두 번째는 역사의 교훈을 강조하려는 시각이다. 즉,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면 같은 일이 그대로 반복되리라는 경고를 위해 역사의 순환성을 언급하는 경우라 말할 수 있다.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아갈 수밖에 없다
— 작자미상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이와는 별도로, 패션이나 유행은 정말로 역사를 반복한다. 복고풍, 레트로패션 등이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