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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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9일 (일) 20:13 판

틀:문화재

개요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조선 정조시기 축성된 성곽이다. 한국 성곽 건축의 끝판왕. 실제로 이후로 지어진 성곽을 보아도 수원화성의 건설 개념에서 더 이상 발달하거나 진보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제원

성둘레 5,744m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조선시대에 쉽게 볼 수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砲)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수문 1,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이 소실되었다. 남수문은 2012년 6월 복원이 완료되었으나 팔달문에서 남수문에 이르는 구간은 현재 팔달시장이 성곽 자리에 정확하게 들어서 있는지라[1] 성곽이 있었던 위치만 바닥에 표시해 놓고 있는 상황이며, 이 때문에 나머지 소실구간은 복원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주요 시설물

  • 성문
    • 장안문
    • 팔달문
    • 창룡문
    • 화서문
    • 암문
  • 공심돈
    • 동북공심돈
    • 서북공심돈
  • 장대
    • 동장대
    • 서장대
  • 노대
  • 포(鋪)루
  • 포(砲)루
  • 각루
    • 방화수류정
  • 봉돈
  • 수문
    • 화홍문
    • 남수문
  • 방화수류정
  • 적대

특성

  • 당시 도시계획이 워낙에 잘 된 편에 속하였기 때문에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21세기인 현재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물론 성 내부 동네는 문화재 보호법 때문에 개발 자체는 지연되고 있어서 조금 애매해진 상황이긴 하지만...
  •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사실 축조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까지 겪으면서 성곽이 상당부분 파손되고 사라지고 엉망이 되었었지만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 의거하여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게 된 것. 이 화성성역의궤의 존재로 이론상 수원화성은 완전히 다 박살이 나더라도 다시 원형대로 재건이 가능한 성이다. 현대에 복원된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화성성역의궤에 의한 복원을 하였기 때문.
  • 화성성역의궤를 보면 정말 깨알같이 기록이 되어있다. 각 구간별로 사용된 돌이나 물자 이외에도 공사 책임자나 담당자의 이름까지 기록되어 있는 수준. 그야말로 기록덕후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수준이다.
  • 성곽 자체의 방어력도 상당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냉병기 시대에 외침을 당한적이 없는 성인지라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일단 약 300~400미터 간격으로 치와 포루, 각루, 공심돈 등의 방어시설이 서로의 사각을 메워주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약점이라고 할만한 부분을 찾기가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지형적 이점을 가지는 산성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읍성과 비교할 경우 수원화성은 거의 난공불락의 요새에 가까운 방어력을 자랑한다.

각주

  1. 팔달시장 골목이 딱 성곽이 있던 자리이다. 만일 복원을 한다면 시장을 통째로 옮겨야 할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