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대첩

부여 연방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2월 7일 (목) 22:14 판

神策究天文

귀신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깨달았고

妙算窮池理

신묘한 셈은 땅의 이치를 다하였도다.

戰勝功旣高

싸움에 이겨 공이 높으니

知足願云止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길 바라노라

-을지문덕, 여수장우중문시


살수대첩 薩水大捷

살수대첩한민족과 중원 왕조간의 전투 중 하나로 제2차 고구려.수 전쟁에서 고구려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전쟁을 종결시킨 대첩이다. 고구려와 중국 통일왕조가 벌인 전쟁 중 가장 규모가 큰 전투로 세계적으로도 고대 최대의 전투이자 근대 이전까지 가장 거대한 규모의 전투다. 여수전쟁의 일환으로 영양왕 23년 살수[1]에서 벌어진 회전會戰으로서 살수에서 퇴각하는 30만 수나라 별동대를 불과 2천7백명만 남기고 격파한 대규모 전투이며 수 고구려가 대승을 거두며 수 제국의 침략을 저지한다.

배경

한민족의 4대 대첩이자 민족을 수호한 전투

제2차 여수전쟁

제1차 여수전쟁에서 수나라는 고구려 침공에 실패하고 패퇴하지만 양제는 침공을 단념하지 않았고, 결국 영양왕 23년, 서기로는 612년에 실 전투병력만 약 114만에 달하는 역사상 유래없는 대군을 소집한 후 고구려를 재 침공한다.

적국 고구려의 영토로 진입한 수나라 군대는 고구려의 요동성을 비롯한 요동-압록강 방어선을 넘어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향해 그대로 진격을 개시한다. 그러나 요동-압록강 방어선에서 고착상태에 빠진 수나라 군대는 별도의 병력으로 30만 별동대를 조직하여 평양을 향해 그대로 전진하는 진격전을 펼친다. 이때 보급 문제는 해상 수송을 통한 보급을 계획하였고 평양에 도달한 지상군에게 서해를 통과해 대동강 연안에서 수나라 수군이 보급을 할 계획이였다. 이 작전은 한 가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작전 자체로는 상당히 정교한 작전이였다. 문제는 한 가지 위험성이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편 수나라 지상군은 별 간섭 없이 평양으로 고속진군 하며 남하하였고 한반도 북부지역에 각각 배치되있던 고구려 지상군 부대들은 전력을 그대로 보존 한 채로 현 위치에서 고립상태로 들어갔다.

그렇게 평양에 도달한 수나라 지상군은 평양성을 포위했으나 이미 작전계획에는 심각한 차질이 발생했는데, 해상 수송작전의 위험성 이였던 적국 수군에 대한 차단이 현실화 되면서 고구려 수군과의 전투에서 수나라 수군이 격파되어 수나라 수군은 본토로 철수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상륙 지점들을 고구려군이 점령하고 있어,당연히 보급품을 전달받을수 없었고 오히려 보급품들 일부는 고구려군 수중에 들어가기도 한 상황이었다.

평양으로 쾌속진군하는 동안 별동대가 보유하였던 대부분의 보급품은 이미 소진된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평양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수나라 지상군 돈좌되었고 궤멸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을지문덕의 방문

전개

결과

각주

  1. 청천강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