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대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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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대첩'''은 '''[[한민족]]과 중원 왕조간의 전투 중 하나로 제2차 고구려.수 전쟁에서 [[고구려]]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전쟁을 종결시킨 대첩이다'''. 고구려와 [[중국]] 통일왕조가 벌인 [[전쟁]] 중 가장 규모가 큰 전투로 세계적으로도 고대 최대의 전투이자 근대 이전까지 가장 거대한 규모의 전투다. 여수전쟁의 일환으로 영양왕 23년 살수<ref>청천강이 유력하다.</ref>에서 벌어진 회전會戰으로서 살수에서 퇴각하는 30만 [[수나라]] 별동대를 불과 2천7백명만 남기고 격파한 대규모 전투이며 수 [[고구려]]가 대승을 거두며 수 제국의 침략을 저지한다.  
'''살수대첩'''은 '''[[한민족]]과 중원 왕조간의 전투 중 하나로 제2차 고구려.수 전쟁에서 [[고구려]]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전쟁을 종결시킨 대첩이다'''. 고구려와 [[중국]] 통일왕조가 벌인 [[전쟁]] 중 가장 규모가 큰 전투로 세계적으로도 고대 최대의 전투이자 근대 이전까지 가장 거대한 규모의 전투다. 여수전쟁의 일환으로 영양왕 23년 살수<ref>청천강이 유력하다.</ref>에서 벌어진 회전會戰으로서 살수에서 퇴각하는 30만 [[수나라]] 별동대를 불과 2천7백명만 남기고 격파한 대규모 전투이며 수 [[고구려]]가 대승을 거두며 수 제국의 침략을 저지한다.  


{{전쟁 정보
|분쟁=살수대접
|전체=
|그림=
|그림크기=
|설명=
|날짜=612년 7월
|장소=살수
|상태=
|결과='''고구려의 대승'''
|이유=수양제의 고구려 침공
|교전국1='''[[고구려]]'''
|교전국2='''수'''
|교전국3=
|지휘관1=을지문덕
|지휘관2=우중문,우문술
|지휘관3=
|병력1=불명
|병력2=30만 5000명
|사상자1=불명
|사상자2=30만 2300명 사망,실종
}}


==배경==
==배경==

2019년 2월 8일 (금) 00:13 판

神策究天文

귀신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깨달았고

妙算窮池理

신묘한 셈은 땅의 이치를 다하였도다.

戰勝功旣高

싸움에 이겨 공이 높으니

知足願云止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길 바라노라

-을지문덕, 여수장우중문시


살수대첩 薩水大捷

한민족의 4대 대첩이자 민족을 수호한 전투

살수대첩한민족과 중원 왕조간의 전투 중 하나로 제2차 고구려.수 전쟁에서 고구려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전쟁을 종결시킨 대첩이다. 고구려와 중국 통일왕조가 벌인 전쟁 중 가장 규모가 큰 전투로 세계적으로도 고대 최대의 전투이자 근대 이전까지 가장 거대한 규모의 전투다. 여수전쟁의 일환으로 영양왕 23년 살수[1]에서 벌어진 회전會戰으로서 살수에서 퇴각하는 30만 수나라 별동대를 불과 2천7백명만 남기고 격파한 대규모 전투이며 수 고구려가 대승을 거두며 수 제국의 침략을 저지한다.

{{{전쟁이름}}}
군사 충돌 정보
날짜 612년 7월
결과 고구려의 대승
교전단체
{{{단체1}}} {{{단체2}}}
을지문덕
우중문,우문술
병력:
불명
병력:
30만 5000명

배경

1차 고구려.수 전쟁에서 패배한 수나라의 수문제는 고구려 원정을 중단하고 전쟁의 피해를 수습하고 국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민심수습에 나서게 되었다. 덕분에 수문제 시기 수나라는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수나라 최고의 번영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604년, 수문재가 사망하고 문제의 아들 양광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악명높은 수양제다. 수양제는 아버지 수문재가 키운 막강한 국력을 통해 만리장성을 보수하고 그 유명한 대운하 공사를 부정적인 여론 속에서도 강행하는 것 같이 대규모 국가행사들을 벌였고 북방의 돌궐과 토욕혼을 정벌하고 베트남 까지 영향권을 확대하며 천하에 독보적인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수양제는 숙원이였던 고구려 원정을 결심한다.

607년, 수양제는 북쪽 아장으로 동돌궐의 계민가한을 만나러 친히 행차하였고 계민가한에게 입조하려던 고구려 사신과 마주하게 된다. 수양제는 고구려에 최후통첩을 날렸고 전쟁은 현실이 되었다.

전개

결국 영양왕 23년, 서기로는 612년에 실 전투병력만 약 114만에 달하는 역사상 유래없는 대군을 소집한 후 고구려를 재 침공한다.

적국 고구려의 영토로 진입한 수나라 군대는 고구려의 요동성을 비롯한 요동-압록강 방어선을 넘어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향해 그대로 진격을 개시한다. 그러나 요동-압록강 방어선에서 고착상태에 빠진 수나라 군대는 별도의 병력으로 30만 별동대를 조직하여 평양을 향해 그대로 전진하는 진격전을 펼친다. 이때 보급 문제는 해상 수송을 통한 보급을 계획하였고 병사들에게 각자 등짐을 주어 보급하게 했고 이후에 평양에 도달한 지상군에게 서해를 통과해 대동강 연안에서 수나라 수군이 보급을 할 계획이였다. 내호아가 이끄는 수나라 수군은 황해를 건너 대동강 하구에 진입했고 이후 평양성 밖 60리까지 접근해 상륙을 저지하는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4만의 병력이 상륙한다. 고구려군은 평양성으로 퇴각하면서 성 내에 병력들을 매복시켰고 평양성을 무혈점령 하게 된 걸로 착각한 수나라 수군들을 왕제 고건무[2]가 이끄는 500의 결사대로 격퇴시켜 대동강 하구로 몰아낸다.

한편 일이 이리된지 모르는 우중문의 별동대는 평양으로 진군하는 동안 등짐 상태로 운송하는 군량은 지속적으로 소모되었고 50킬로그램의 보급품을 병사 개개인이 운송해야 하니 보급품을 버리는 일이 속출했다. 이 역시 수나라 군대의 보급문제에 큰 악영향을 주었다.

전개

결과

각주

  1. 청천강이 유력하다.
  2. 영류왕